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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94 - 나의 지평을 넓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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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1   예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때에 무리가 예수께 밀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 아침에 말씀 앞에 선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것이 쉽지 않죠. 우리의 생각이 확고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소통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죠. 그런데 소통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간혹 소통을 다른 의견을 무마하는 것쯤으로 보는 이들이 있죠. 그런데 소통의 진정한 의미는 내가 다른 사람의 시선과 관점을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내 자리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본다는 의미죠. 이것이 소통입니다. 오늘 이 아침 묵상이 그렇습니다. 늘 나의 자리에서만 바라보다가 이 아침에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와 내 주변을 보는 것, 그것이 하나님과의 소통이기 때문이죠. 오늘도 말씀을 통해 나의 생각을 새롭게 하는 시간 되길 빕니다.

 

이제 5장으로 넘어왔습니다. 갈릴리에서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드디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5장에 나옵니다. 물론 그 사건만 있는 것은 아니고요. 계속해서 병자를 고치시는 사역들이 등장하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의 문제, 우리의 생각과 교리를 교정해 주시는 가르침도 시작하십니다.

 

오늘은 이 많은 이야기에 앞서 지엽적이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지명 문제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다고 기록하고 있죠. 4장에 예수께서 주로 사역하시던 곳이 어디인지 기억하시나요? 광야의 시험을 마치고 예수님은 자신의 고향 나사렛에서 사역을 시작하셨죠. 그리고 가버나움이라는 곳으로 가서 계속 가르침과 병자 고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오늘 나오는 게네사렛은 가버나움에서 갈릴리 호숫가를 따라 서남쪽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이 지역은 성경에서 많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언급된 몇 장면에서는 그곳에서 많은 병자들이 낫는 기적이 일어났던 곳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나았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조금 특이한 기록이 있죠? 게네사렛 호수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갈릴리 호수는 들어봤어도 게네사렛 호수는 낯설죠. 이쯤 해서 성경공부 한 번쯤 해 본 분들은 비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갈릴리 호수의 다른 이름들이 여럿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은 상식이라고 말하실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아는 갈릴리 호수는 때론 갈릴리 호수라고 하기도 하고, 때론 게네사렛 호수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것을 아시는 거죠. 뿐만 아니라 디베랴 호수라는 호칭도 사용되었죠. 참고로 디베랴는 게네사렛에서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맞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이렇게 여러 이름으로 불렸죠. 그러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여러 이름으로 불린 것은 맞는 말이지만 갈릴리 호수의 이름이 여러 개는 아니었다는 것이죠.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동쪽 바다 이름은 동해입니다. 그런데 강릉에 가서 그 바다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간혹 '강릉 앞바다'라고 부르죠. 그 바다는 삼척에 가서는 '삼척 앞바다'가 될 것이고, 울산에 가면 '울산 앞바다'가 되겠죠. 이렇듯이 갈릴리 호수는 이름이 하나입니다. 다만 있는 지역에 따라 자신의 방식으로 부르는 명칭이 있었을 뿐입니다.

 

왜 제가 이 말씀을 이 귀한 묵상의 시간에 말씀드리냐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는 관점이 있고 다른 이가 보는 관점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읽고 있는 복음서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네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죠. 이를 우리는 함께 보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이를 하나로 만들려고 노력하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복음서가 4개 존재하는 것은 그것을 하나로 만들어서 더 많은 기록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서로 다른 관점들을 통해 다양하고 풍부한 이해를 위해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묵상이 그렇습니다. 고정관념을 가지면 오늘 이 자리에서 묵상이 되지 않아요. 남의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믿으면 다른 이야기가 들리지 않듯이 말입니다. 혹은 제목만 보고도 내용이 무엇일지 파악하는 분들이 있죠. 당연히 이런 말일 거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남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죠. 아니 들어도 왜곡하기 쉽습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죠.

 

묵상은 잠시 나의 자리를 벗어나 하나님의 시선을 갖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이 아침에는 잠시 보는 관점을 다르게 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역지사지라고 하나요?

 

'그 사람은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이 일은 이렇게도 볼 수 있겠는데?'   

 

그때 나의 지평이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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