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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88 - 기도는 기적의 마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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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38~39   예수께서 회당을 떠나서, 시몬의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병으로 앓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 여자를 두고 예수께 청하였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다가서서 굽어보시고, 열병을 꾸짖으셨다. 그러자 열병이 물러가고, 그 여자는 곧 일어나서 그들에게 시중을 들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 월요일, 이번 한 주의 시작을 잘하셨나요? 여러분의 기분을 지키고 감정을 조절하셨나요? 좋은 마음은 여전히 잘 간직하고 계십니까? 쉽지 않죠? 나도 모르게 흐트러지고 넘어졌다고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오늘 또다시 하루의 기회를 주셨으니까요. 우리는 실수하고 넘어지는 것은 일상입니다. 그것은 죄가 아니에요. 그러나 하루 잘못했다고 포기하고, 한번 실수했다고 나를 그 자리에 방치하는 것은 죄입니다. 오늘도 다시금 마음을 추스르고 이길 약속을 받은 즐거운 전쟁을 시작하시면 좋겠습니다.

 

어제의 본문을 다시 묵상합니다. 이 본문에 대한 질문이 많거든요. 우리가 본문을 여러 번 반복해서 묵상하는 것에 지루함을 가지실 여러분께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진도를 나가려고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서 나에게 주시는 지혜를 구하는 중이니 많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어제는 좀 과한 상상력을 동원했었죠? 그러나 던져진 질문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우리 일상에는 많은 기적들이 일어나죠. 그런데 그 기적이 일어나는 이유를 모른다면 우리는 언제나 뜬 구름처럼 기적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기적이 일어나는 이유와 동기를 안다면, 그리고 그 이유와 동기로 살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 삶에는 훨씬 더 강력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은 분명하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같은 맥락의 질문을 드립니다. 

 

'왜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셨을까?'

 

이 질문은 어떻게 기적이 일어났을까? 하는 질문과 맥을 같이 합니다. 어쩌면 이 질문에 실소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눈앞에 병든 자를 무시할 분이 아님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죠. 지금 예수님 앞에 병든 여인이 있는데 어찌 예수님께서 그냥 지나치시겠습니까? 이 말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의 이적, 기적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사시는 동네, 그분이 가시는 길, 그 이웃들 속에는 병들고 아프고 심지어 악한 영혼들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이들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분명히 기적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이적을 베푸실 마음을 갖게 된 동기가 있어요. 그것을 찾는 것이 오늘 우리의 묵상입니다.

 

왜 이 묵상이 중요한지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그 동기는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죠.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일하시고, 우리의 간구를 통해 응답하시는 주님이기에 주님의 기적 또한 우리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그 동기와 이유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기적을 누릴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제와 오늘 묵상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 묻습니다. 왜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셨을까요?

 

베드로의 장모는 심한 열병에 시달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심하다는 것은 중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 기간이 길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랜 기간 아팠다는 거죠. 열병이 어떤 병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그 병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 그리고 이웃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자! 이제 예수님께서 치유의 기적을 베푸신 이유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신 또 다른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묵상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또 다른 질문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38절 마지막 부분에 이런 기록이 있죠.

 

누가복음 4:38   그런데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병으로 앓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 여자를 두고 예수께 청하였다. 

 

여기서 '사람들'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복잡하지 않게 생각하면 베드로의 집 안에 있었던 이들이겠죠. 좀 더 쉽게 말하면 베드로의 가족, 혹은 이웃들이었을 것입니다. 좀 더 넓은 의미로 보면 초대받은 이들이었겠죠. 그런데 그들이 지금 베드로의 장모를 예수님께 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청하고 있는 거죠. 그리스도인들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말하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중보기도를 말이죠. 간절하게...

 

기적이 일어나는 시작에 우리의 중보기도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간절한 바람, 이웃을 위한 극진한 사랑, 나의 마음처럼 남을 위한 기도, 그것이 주님의 기적이 이루어지는 시작입니다. 마치 우리를 사랑하사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그 간절한 중보가 우리를 구원하는 기적으로 나타났듯이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기적의 마중물입니다. 특별히 중보기도는 주님께서 기적을 베푸시는 멍석이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은 일하십니다.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다고 했죠? 우리의 중보기도를 통해 주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공동체에는 많은 중보기도가 필요합니다. 가족과 이웃의 기도가 필요하죠. 그 기도를 통해 우리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껏 많은 기적을 누렸고, 또 앞으로 더 많은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한, 우리가 중보 하는 한, 우리가 내 마음처럼 남을 위한 마음을 갖는 한, 주님의 기적은 우리에게 끊이지 않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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