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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84 - 나쁜 것을 이기는 방법은 좋은 것을 하는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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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31~34   예수께서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로 내려가셔서,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 놀랐으니, 그의 말씀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그 회당에 악한 귀신의 영이 들린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아, 나사렛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주 5일 근무라면 오늘이 딱 절반의 시간이 지나가는 자리죠. 한 주간을 끝까지 잘 지내기 위해서는 이쯤에 한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네요. 매일 이 아침에 새로운 마음과 결단으로 시작하지만 특별히 오늘 아침은 고단한 시간에 자꾸 처지는 기분을 다시금 깨우는 아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악한 영에 사로잡힌 이를 마주한 사건을 어제부터 읽고 있습니다. 어제는 귀신도 예수님을 알아본다는 내용으로 묵상했죠. 오늘은 한 가지 더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귀신 들린 이가 예수님을 찾아왔던 목적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았으면 하죠. 단순히 예수님을 알아 찬양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님은 분명하죠. 그렇다면 왜 찾아온 것일까요?

 

그 대답은 그가 한 말에 들어 있습니다. 그는 예수를 자신이 안다고 말하기 전에 이렇게 말하죠.

 

"아, 나사렛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 말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담겨있기 때문이죠. 악한 귀신이 예수님을 알아보는 것은 그저 '저분이 그리스도시다.'가 아닙니다. 그가 알아본 것은 '그리스도는 악한 것을 멸하신다'였던 것이죠. 이는 죄를 멸하시고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는 그분의 사역 목적을 정확히 꿰뚫은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를 괴롭히는 죄와 악한 속삭임에서 나를 건져 해방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앞날이 캄캄한 두려움의 수렁에서 나를 꺼내어, 반드시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믿고 기대하는 자리로 옮겨주심을 의미하죠. 그렇게 내 주위를 감싸고 공중 권세를 잡은 자들의 공격으로 불안과 두려움, 늘 잘못될 것을 묵상하고, 안 될 것을 생각하게 하는 그 끈질긴 공격을 끊어내고 푸른 풀밭과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마음을 깨닫는 것이 바로 예수 믿는 자의 영혼입니다.

 

그렇다면 작은 의미의 해석도 나눠 보겠습니다. 큰 틀의 해석은 커다란 목표로서 의미가 있다면 작은 틀의 해석은 어쩌면 오늘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삶의 적용에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저는 이 묵상이 더 오늘 말씀에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어요. 그것은 악한 귀신 들린 자가 예수님을 찾아온 시점이 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지금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시죠. 그 가르침에 사람들이 놀랄 만큼 말씀을 잘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왜 놀랐을까요? 유창한 언변 때문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스타일 때문에요? 천만에요.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늘 했던 그대로 회당에서 율법을 가지고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런데 왜 놀랄까요? 이에 대한 저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같은 말씀이지만 그 말씀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가 적용하며 살아야 할 것들을 조목조목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말이죠. 이전에는 그저 옛 선지자의 말로 듣고 기억하는 것으로 말씀을 들었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그래서 너희는 이렇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게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감흥이 별로 없죠. 왜냐하면 그 말씀은 나와 별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에 적용되지 않는 말씀은 더 이상 말씀이 아닙니다. 나의 손과 발이 되지 않는 말씀은 생명력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 묵상을 하고 고백을 하고 내가 어떻게 살기 원한다고 기도하는 것이죠.

 

문제는 그때 악한 귀신 들인 자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다시 말해서 삶에서 말씀을 적용하며 살라고 하시는 말씀을 나눌 때, 그리고 그 말씀에 놀라 사람들이 가슴에 찔리고 회개에 나서는 그때, 악한 영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하죠. 

 

"왜 우리를 간섭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악함을 없애는 방법은 악함과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버리는 방법은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에요. 오로지 선함을 행하는 것이고,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악함은 나쁘니 악함을 없애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종교인의 모습이라면 '악함을 멸하기 위해 선함을 행해야지'라는 것은 제자의 모습이죠. '안 되는 것'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을 묵상하고, '잘못될 것'을 대비하는 것이 아닌, '잘 될 것'을 기대하는 것이 믿음인 거죠. 

 

나쁜 것을 이기는 방법은 좋은 것을 하는 것뿐입니다. 악한 것을 부수는 방법은 선한 것을 행하는 것뿐이에요. 주위를 평안케 하는 방법은 지금 내 입에 좋은 말을 담을 때이고, 거짓을 몰아내는 방법은 오직 오늘 내가 옳은 말을 할 때뿐입니다. 영적 전쟁은 악한 영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내 입에 선한 말과 마음에 거룩한 묵상과 머리에 밝은 기대를 매일매일 품는 것, 그것이 진짜 영적 전쟁임을 기억하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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