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묵상일기 74 - 아무리 잘못된 과거라도 그 위에서 새로운 역사가 쓰입니다.

2023. 12. 12. 06:50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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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 12:1~6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강 동쪽 해 돋는 쪽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부터 헤르몬 산까지, 동쪽 온 아라바를 무찌르고 점령하였는데, 그 땅의 왕들은 다음과 같다. 하나는 헤스본에 사는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이다. 그는 아르논 골짜기 끝에 있는 아로엘에서 골짜기 중간과 길르앗의 반쪽과 더 나아가서 암몬 자손의 경계인 얍복 강까지를 다스렸다. 그는 또한 아라바 동쪽 방면의 긴네롯 바다까지와 아라바의 바다, 곧 동쪽 방면의 사해, 벳여시못으로 통하는 길까지와 남쪽으로는 비스가 산기슭까지 다스렸다. 또 하나는 바산 왕인 옥이다. 그는 르바 족 가운데서 살아남아,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헤르몬 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과 길르앗의 반쪽과, 그리고 더 나아가서 헤스본 왕 시혼이 다스리는 땅의 경계선까지 다스렸다. 이 두 왕은 바로 주님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무찌른 사람들이다. 주님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쪽 지파에게 주어서 소유로 삼도록 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마치 요즘은 12월 같지 않은 봄날 같은 날씨죠? 따스한 기온이 너무 좋네요. 아무리 외부의 많은 일들이 추운 바람처럼 우리에게 다가와도 우리 공동체 가족들 마음은 늘 따스함으로 채워져 있기를 바랍니다. 따스한 말, 따스한 표정, 따스한 마음으로 우리 영혼을 채우는 오늘 되시길 빕니다.

 

12장에 들어서서 여호수아는 약간의 회고 같은 것을 하고 있는 듯 보이죠. 오늘 본문은 그간 정복한 가나안 땅의 경계를 조목조목 그리고 있습니다. 아르논 골짜기는 사해의 동쪽에 있죠. 지금은 요르단에 속한 곳으로 와디 무집(Wadi Mujib)이라고 불리죠. 이곳은 요르단의 그랜드 캐넌이라고 불릴 만큼 70km에 이르는 장대한 협곡입니다. 이곳에서 아르논 강이 흘러 사해로까지 가죠. 당시에는 아르논 강을 경계로 모압과 아모리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아모리 땅 위쪽으로는 바산이라는 나라가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그 땅은 북쪽 헤르몬 산까지 이어졌죠. 헤르몬 산은 현재 시리아와 레바논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시리아와 레바논 땅이지만 당시에는 바산의 최북단에 위치한 산이었고요. 이후에는 이스라엘의 지도상 최북단의 경계가 되는 산이 되죠.

 

이렇게 장황한 설명이 이어진 이유는 사해 동쪽 지역을 이스라엘이 다 차지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언급된 곳들은 지금까지 여호수아서에서 치른 전쟁과는 관계가 없죠. 이미 바울이 지도자로 있었을 때 정복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요단 강을 건너 본격적인 가나안 정복전쟁을 치르기 전에 이미 이곳은 르우벤과 갓, 그리고 므낫세 절반의 지파들에게 분배가 되었던 땅이죠. 물론 가나안정복전쟁이 이미 이집트를 탈출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뜻하지 않은 광야의 방황이 없었다면 그들은 곧바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겠죠. 어쩌면 모세 때에 가나안의 정복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모세 때의 가나안 정복 성과를 거론하는 것은 가나안 정복 전체의 결과 보고서를 쓰는데 하등 이상할 것이 없죠. 다만 저는 이 본문에서 의외의 한 가지 묵상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그것은 그것이 실패든, 성공이든, 그것이 내가 직접 이룬 것이든 아니든,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지나 온 과거의 시간을 통해 오늘의 결과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못된 과거라도 그 위에서 새로운 역사가 쓰입니다. 광야의 방황이 있었기에 그들에게 신실함이 생긴 것이고,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잃었기에 오히려 여호수아에게 더욱 충성하는 일들이 벌어진 거죠. 그 위에 새로운 일들이 이루어집니다. 아픔을 당한 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어요. 그러나 아픔이었기에 성숙해지고 변화된 나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슬픔의 눈물은 아쉽고 무겁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을 통해 누군가의 눈물을 이해하고 닦아주는 사랑이 우리 안에 꽃핀다면, 그것은 성장이죠. 

 

어떤 과거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과거를 어떻게 딛고 오늘 서느냐가 훨씬 중요하죠. 우리는 과거에 살지 않죠. 현재에 삽니다. 분명 과거가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영향을 좋은 것으로 만드는 것은 과거의 내가 아니라 현재의 나입니다. 아팠기에 건강을 챙길 수 있고, 넘어졌기에 다시 일어서는 용기가 생기죠. 실수를 해 보았기에 조금 더 신중할 수 있고, 실패를 경험해 보았기에 성취가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가를 압니다. 그렇게 나의 과거를 선용할 줄 아는 믿음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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