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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여호수아서묵상일기 78 -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로운 시간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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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 14:6~15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다가왔을 때에,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주님께서 나와 당신에 대하여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알고 계십니다. 내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에, 주님의 종 모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그 땅을 정탐하게 하였습니다. 나는 돌아와서, 내가 확신하는 바를 그에게 보고하였습니다.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나의 형제들은 백성을 낙심시켰지만, 나는 주 나의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랐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날 '네가 주 나의 하나님께 충성하였으므로, 너의 발로 밟은 땅이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유산이 될 것이다' 하고 맹세하였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 일을 말씀하신 때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하며 마흔다섯 해를 지내는 동안,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나를 살아남게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나는 여든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나를 정탐꾼으로 보낼 때와 같이, 나는 오늘도 여전히 건강하며,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힘이 넘쳐서, 전쟁하러 나가는 데나 출입하는 데에 아무런 불편이 없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그날 약속하신 이 산간지방을 나에게 주십시오. 그때에 당신이 들은 대로, 과연 거기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은 크고 견고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는 그들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축복하고, 헤브론을 유산으로 그에게 주었다. 그래서 헤브론은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유산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른다. 그것은 그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랐기 때문이다.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아르바였는데,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 드디어 그 땅에 평화가 깃들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번주 내내 강추위가 예고되었네요.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시고 조금만 주위를 기울여 한파로 인한 피해와 건강상 문제들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시죠? 추우면 추울수록 조금 더 부지런히 몸을 데우고 마음을 너그럽고 따뜻하게 하는 방법을요. 오늘도 평안과 여유, 그리고 맑은 미소로 몸과 마음을 데우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혹시 이런 경험 있으세요? 나의 친한 친구를 다른 친구에게 소개해 주었는데 정작 나보다 그 친구와 더 친해져 버린 경험 말입니다. 이럴 때는 많은 생각이 떠오르죠. 괜히 소개해 주었다는 후회도 몰려오고, 쪼잔하게도 질투와 시기심도 생기죠. 이보다 좀 더 큰 일들도 있죠. 내가 먼저 길을 닦아 놓았는데 이익을 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일 때, 내가 먼저 개척해 놓은 방면에서 다른 사람이 더 유명해질 때, 내가 먼저 세워놓은 계획들을 가지고 다른 이들이 칭찬을 받을 때, 우리는 극심한 소외감에 빠지죠. 또 자신에게 환호하던 이들의 환호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몰릴 때, 나를 따르던 자들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을 따를 때, 그때 받는 충격과 몰려오는 외로움은 극심해지죠. 특별히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에게서 이 현상은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고, 마약 등에 기대기도 합니다. 많은 재능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소외와 외로움은 처절하게 그들을 망가뜨리죠.

 

성경에도 그런 이들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세례요한이죠. 세례요한은 예수님과 동시대의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보다 먼저 사역을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송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는 시대의 지성이었고, 영적지도자였습니다. 당연히 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죠. 물론 그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존재한 사람입니다. 당연히 예수님을 빛나게 하고 높이는 직무가 그에게 있었죠. 그는 예수님께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 주고도 남을 인격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례요한을 인간적 측면에서 보는 것을 놓치죠. 철저히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이 과정을 본다면 어떨까요? 어느 순간 자신이 다져놓았던 영적 지도자의 길이 예수께로 넘어갑니다. 그들 따르던 군중들은 예수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광야에 울리던 그의 메시지는 이제 없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자신을 스승으로 따랐던 제자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떠납니다. 물론 흔쾌히 떠나보냈겠지만 그의 심정이 여러분 같았다면 어땠을까요? 

 

이게 괜한 뇌피셜이 아니에요. 또 비현실적인 문제도 아니죠. 우리들도 그런 말을 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고 말이죠. 그런데 그게 진짜일까요? 나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을 진짜 바라시나요? 놀랍게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는 말은 보통 뭔가를 많이 얻은 사람들이 주로 하는 말이죠. 얻었으니 그런 말을 하는 거죠. 아무것도 얻지도 못하고 그저 수고만 했다면, 희생과 헌신만 했다면 어떨까요? 아무 박수도 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쉬울까요?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부분에서 가장 위선적인지도 모릅니다.

  

신약의 세례요한 같은 이가 구약에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갈렙입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촉망받는 차세대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습니다. 성경을 세밀히 보면 갈렙은 여호수아보다 훨씬 용감했다는 인상을 받게 되죠. 광야를 지나 가나안의 문턱에서 모세는 정탐꾼을 보내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 중 의견을 달리했던 2명은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그 2명 중 의견을 주도한 사람은 여호수아가 아닌 갈렙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민 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진정시키면서 격려하였다. "올라갑시다. 올라가서 그 땅을 점령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그 땅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갈렙에 대해서 콕 집어서 말씀하신 부분도 있죠.

 

민 14:24    그러나 나의 종 갈렙은 그 마음이 남과 다르고, 또 전적으로 나를 따랐으므로, 나는, 그가 다녀온 그 땅으로 그를 데리고 가겠고, 그의 자손은 그 땅을 유산으로 받을 것이다.

 

그런데 다 아시다시피 갈렙은 지도자에서 밀렸습니다. 게다가 그는 성경에서도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지파들이 가나안땅을 지분으로 받을 때도 갈렙지파는 뒤로 밀리죠. 갈렙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나 같으면 모든 것을 그만두고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목숨 걸고 한 일인데 그것에 대해 가치롭게 여기지 않는다면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친한 친구가 다른 친구와, 그것도 내가 소개해 준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낸다면 나 같으면 그 친구와 연을 끊을지도 모릅니다. 본시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인격이지만 소외감과 외로움은 더욱더 나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버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갈렙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본격적인 가나안정복이 시작된 지 45년 만의 일입니다. 45년 동안 철저히 소외되었던 갈렙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그는 누구도 가지 않으려는 헤브론 땅을 위해 첨병으로 나섭니다. 헤브론땅은 그 옛날 10명의 정탐꾼들이 거민이라고 두려워했던 아낙자손이 사는 땅입니다. 그들 앞에서는 자신들이 메뚜기 같다던 그들입니다. 가장 힘들고, 가장 어려운 자리에 자청하고 나선 것입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게다가 드러낼 그만한 능력이 있는데도 그렇다면 더더욱 괴로움은 커집니다.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하고 넘어지는 것은 소외와 외로움 때문입니다. 박수소리가 없을 때, 우리는 일의 동력을 잃어버립니다. 사회와 사람의 격려 없이 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죠. 그런데 갈렙은 외로움과 소외 속에서 더욱 아름다워졌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광야라는 외로움과 소외 속에서 영성이 자랍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다윗이 그랬으며, 바울도 그랬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의 영성이란 외로움과 소외, 그 광야에서 아름다워지나 봅니다.

 

환호와 박수갈채 속에 아름다움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관심과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사람은 아름다워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성은 소외되고 외로워졌을 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장합니다. 내가 갈렙이었다면 45년간 무엇을 묵상했을까요? 소외감, 차별, 외로움, 이로 인한 분노, 좌절, 배신과 복수심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갈렙은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묵상했습니다. 아니 그 약속의 실현을 기다렸어요. 장장 45년 동안 말이죠. 철저히 혼자가 되었을 때, 광야에 내몰렸을 때, 외로운 동굴에서의 묵상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었다고요.

 

외로우세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하지 않나요? 그때, 여러분은 무엇을 묵상하십니까? 나를 버린 사람들에 대한 미움입니까? 한심한 처지에 대한 한탄입니까? 그런 것들이 결코 나를 새롭고 산길로 인도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하나님의 약속과 믿음의 역사를 불러오는 법은 없어요. 오로지 꿈꾸는 자가 꿈길을 가고, 씨앗을 뿌리는 자들이 열매를 얻는 법입니다. 외로운 그 자리에서 나무를 심는 자들이 푸르른 미래를 보게 되죠. 그렇게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로운 시간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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