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서1:5~7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야곱의 죄 때문이며, 이스라엘 집의 범죄 때문이다. 야곱의 죄가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더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더냐? "내가 사마리아를 빈 들의 폐허로, 포도나 가꿀 밭으로 만들겠다. 그 성의 돌들은 골짜기에 쏟아붓고, 성의 기초가 드러나게 하겠다. 새겨서 만든 우상을 모두 박살내고, 몸을 팔아서 모은 재물을 모두 불에 태우고, 우상을 모두 부수어서 쓰레기 더미로 만들겠다. 몸을 팔아서 화대로 긁어모았으니, 이제, 모든 것이 다시 창녀의 몸값으로 나갈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명절이 가까워집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좋은 만남이, 어떤 분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만남이 될지도 모르는 명절이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함께 만나 축복하고 사랑과 은혜를 나눠야 할 명절이 무슨 음식 박람회로 탈바꿈해 버린 것 같은 안타까움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좋은 기대를 하자고요. 미리 기도하면 어떨까요? 이번 명절에는 너무 아름다운 덕담이 오가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축복하는 은혜의 시간들이 될 것을 상상하고 기대하며 오늘부터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 사마리아, 유다와 예루살렘은 모두 이스라엘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사마리아로 표현된 북 이스라엘의 멸망은 죄의 결과임을 분명히 하죠. 그리고 이제 남은 남 유다 또한 산당으로 표현된 우상숭배로 가득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웅장한 심판의 메시지가 펼쳐지죠. 그런데 날이 선 심판의 메시지라고 하기에는 표현이 너무나 문학적입니다. 사마리아를 빈 들의 폐허로 만드시겠다는 표현에서 등장하는 폐허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아이]입니다. 뭔가 떠오르시나요?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기사에서 등장하는 그 작은 [아이성]이 바로 그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성은 기원전 3,000년경에 세워졌다가 기원전 2,000년경에 멸망한 이후, 전혀 사람이 살지 않는 황폐한 땅이 되었습니다. 물론 가나안 정복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이성 정복의 기록은 역사적 기록이라기보다 문학적 해석의 기록이라는데 학자들은 의견을 모으죠. 그만큼 아이성은 유대인들에게 황폐한 땅의 대명사였습니다. 우리는 잘 몰라도 당시 유대 사람들은 이 말에 훨씬 더 오금이 저렸을지도 모릅니다. 아이성의 황폐함을 대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 표현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포도나 가꿀 밭으로 만들겠다는 표현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잘 이해할 수 없었어요. 포도밭이 된다는 것은 좋은 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싶더라고요. 다른 연구 자료들을 찾아보아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뜻밖에도 포도주 생산에 관한 자료에서 해답을 얻었습니다. 그 자료에는 이런 글이 있더라고요. 포도주 생산을 위해서는 좋은 땅이 필요 없다는 겁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비옥하고 좋은 땅에 포도를 심으면 포도가 성장에 집중해서 포도 열매는 잘 영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좋지 않은 땅에 포도를 심는다고 하더군요. 포도나무는 생명력이 강해서 좋지 않은 땅에서도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그런 생명력을 성장보다는 오로지 열매에 집중하여 좋은 포도 재배가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죄가 무엇인가?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죄는 우상숭배를 뜻하죠. 우상숭배 또한 한 문장으로 규정하기가 어려울 만큼 그 범위가 넓고 깊죠. 그러나 분명한 점은 있습니다. 그 우상숭배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소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우상을 숭배하는 이들은 없을 겁니다. 혹은 미신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들도 없을 거예요. 제가 알고 있는 한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오늘 본문이 우리와는 동떨어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들어야 하는 말씀은 아닐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에게 또 다른 우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걱정과 근심, 염려와 불안이죠.
하기도 전에 미리 걱정하고 안 될 것을 먼저 생각하는 습성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끄실 것보다는 나쁜 경험들이 먼저 생각나고, 주님의 예비하심보다는 수많은 세상의 태클들이 더 강하게 임하는 마음들이 그렇습니다. 결단을 하면서도 그 결단으로 이루어질 아름다운 미래보다, 잘 지켜지지 않을 수 만 가지의 이유들이 먼저 떠오르는 습관에 젖어 있고, 기도한다면서도 하기도 전에 벌써 안 될 자락들을 미리 깔아 두죠. 어떤 이들은 안 될 경우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라고 자위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양다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죠. 이미 안 될 것을 예상하는 자가 승리하기란 어렵습니다.
이게 우리의 우상일지도 몰라요. 버리지 못하는 우상, 하나님보다 더 믿는 우상,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중요하게 다가오고, 어디서도 빠지지 않는 우상 말이죠. 이 우상이 우리에게 정말 해로운 점은 다름이 아닙니다. 우리의 심령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점이죠. 늘 자신 없고, 늘 비굴하게 만들죠. 어디서도 결단하거나 한 가지를 선택하는 법이 없어요. 늘 갈팡질팡하죠. 그리고 하는 말, '내가 그럴 줄 알았다'하죠.
그 마음에는 씨가 자라지 않습니다. 황폐하기 때문이죠. 그런 마음에는 은혜가 깃들지 않아요. 마치 길 가에 뿌려진,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처럼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고, 그분의 손길이 부담스러워집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오히려 나를 옥죄는 것처럼 힘들고, 말씀대로 사는 것, 기도하며 사는 것, 심지어 찬송을 듣는 것조차 짜증 나게 하죠. 그렇게 나의 마음밭은 무너져 내립니다.
걱정! 할 수 있죠. 그러나 잠시만 하세요. 나쁜 생각! 떠오를 수 있죠. 그러나 빨리 멈추세요. 부정적인 혼잣말! 할 수 있죠. 그러나 빨리 좋은 혼잣말로 바꾸세요. 왜냐하면 반복되고 지속된 부정적 우상들은 나의 마음을 나도 모르게 황폐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좋은 음식, 좋은 운동, 좋은 습관처럼 나의 영에도 좋은 생각, 좋은 운동과 습관이 있어요. 주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주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질 영적인 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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