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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서묵상 94 - 예레미야와 시드기야. 우리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예레미야 3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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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대상 시드기야의 이야기가 또 이어집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레미야를 죽이라고 했다가 살리라고 했다가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그 마음을 알 수 없는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불러 또 묻습니다. 이번에도 솔직히 말해달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처음에 거절하죠. 예레미야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 말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간혹 이런 사람들이 있죠. 솔직히 말해 달라고, 있는 그대로 말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며 삐지고, 상처받고, 미워하고, 심지어 저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럴 거면 왜 말해달라고 했을까 싶기도 하죠. 이는 말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충고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고, 말씀을 들을 힘이 없기 때문이죠. 갈망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고 다가 아니에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으면 주님의 음성이 들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의 음성에 순종할 준비, 받아들일 준비, 그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요즘에 제가 운동 이야기 많이 하죠.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영성을 지킬 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즐길 건강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고난이나 역경은 영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의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를 견딜 육체의 건강도 있어야 하는 것이죠.

시드기야는 그런 힘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보면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 소화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결국 예레미야에게 입을 다물라고 말하기도 하죠. 그 이유가 있습니다. 어제 본문에서 시드기야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말씀드렸죠? 고관들이 예레미야를 죽이자고 할 때, 수긍합니다.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경들의 뜻대로 하시오.’ 이 같은 모습은 오늘 본문에도 나옵니다. "나는 바빌로니아 군대에게 투항한 유다 사람들이 두렵소. 바빌로니아 군대가 나를 그들의 손에 넘겨주면, 그들이 나를 학대할지도 모르지 않소?" 시드기야는 백성들을 두려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관들의 눈치도 보죠.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주위의 시선들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 가운데도 있죠. 진리보다는 평판을 더 중요시하고, 순종보다는 자존심을 더 앞세우는 사람들 말입니다. 언제나 모든 결정의 중심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사회적 시선인 사람들, 주님의 음성보다는 수군거리는 소리에 더 민감한 사람들, 그들이 시드기야 인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오늘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소리와 평판, 남보다 뒤처질 것 같고, 비교되어 떨어지는 자존감, 사람들의 수군거리고 손가락질하는 태도, 이것들이 하나님의 진리보다 더 두려운 것은 아닐까요? 예레미야와 시드기야의 차이는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주위의 시선과 시대적 흐름에 순응보다 하나님 말씀을 더 두려워하며 순종했던 예레미야와, 주님의 말씀보다 고관들의 의견, 백성들의 심리에 더 두려워하며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 했던 시드기야. 우리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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