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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서묵상 93 - 이미 우리는 하나님으로 마음을 확정한 사람들입니다. 예레미야 3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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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대상인 시드기야 왕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싫어한 사람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대신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백성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는 명목으로 예레미야를 죽일 것을 요구합니다. 이때 시드기야의 반응을 보세요. "그가 여기에 있소. 죽이든 살리든 그대들 뜻대로 하시오. 나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 그대들에게 반대하겠소." 마치 연약한 이처럼 행동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권리를 마음대로 휘두르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은 힘이 없다고 합니다. 이는 정말 힘이 없어서가 아닌 듯해요. 예레미야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강한데 자신은 피를 묻히고 싶지 않다는 뜻처럼 보입니다. 마치 자신은 원하지 않았는데 너희들이 죽였다고 변명하고자 하는 밑자락을 까는 듯 느껴집니다. 어떤 면에서는 무책임함의 극치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교활하기까지 한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늘 세상의 핑계를 대죠. 이래서 할 수 없고, 저래서 할 수 없고, 온갖 이유를 늘어놓습니다. 심지어 나는 하고 싶은데 남들 때문에 못 한다는 말도 서슴없이 합니다. 상황이 안 돼서, 그런 환경이 주어지지 않아서, 남들이 싫어해서 등등 이유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정작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남 탓을 하면서 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죠. 

시드기야 왕의 이런 모순적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웅덩이에 갇혀 죽을 고비에 있을 때 에티오피아 출신 환관 에벳멜렉이라는 사람이 등장하여 왕에게 예레미야의 구명을 요청합니다. 말이 좋아 환관이지 에벳멜렉은 왕의 시종을 드는 종입니다. 에티오피아 출신이라는 것을 보면 전쟁의 포로이거나 팔려 온 사람인 것으로 보입니다. 한 마디로 권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가 왕에게 간청합니다. 그것도 지금 왕뿐만 아니라 모든 고관들이 죽이고자 하는 예레미야를 구명하고 있죠. 이는 미친 짓입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왕이 예레미야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알 수 있는데 이런 구명을 하는 것은 눈치가 없거나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시드기야와 대비되는 모습처럼 보이죠. 자신의 뜻을 숨기고 우유부단한 모습처럼 남을 이용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왕과, 자신에게 옳은 것을 아는 대로 행동하는 종의 모습이 일정하게 대비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드기야의 또 다른 모순적 행동이 나옵니다. 조금 전까지 예레미야를 죽음에 이르도록 내던졌던 그가 이제는 또 살리라고 군대까지 내줍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행동도 이상하지만 종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고관들의 말에는 영향을 받았다고 치더라도 일개 종의 말에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또 다른 모습입니다. 그래서 시드기야가 연구대상이라는 거죠. 

저는 이 대목에서 어릴 적 TV에서 보던 만화가 생각났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디즈니 만화가 많이 방영되었었는데요. 피터 팬, 백설 공주, 톰과 제리 등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어요. 그중에 미키마우스는 독보적이었죠. 여기서도 여러 캐릭터가 나옵니다. 미키마우스, 미니마우스, 도널드 덕, 구피, 이런 캐릭터들이죠. 그중에 도널드 덕이라는 캐릭터는 다혈질에다 고집불통인 성질 급한 오리죠. 심술도 많고 자존심도 센데 겁도 많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 도널드 덕에게 유독 많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것은 그가 어떤 결정을 할 때마다 그의 머리 위에는 두 개의 이미지가 등장했어요. 하나는 하얀 가운을 입은 도널드와 검정 가운에 뿔이 달리고 삼지창을 든 도널드죠. 각각 선한 도널드와 악한 도널드의 형상입니다. 이 둘이 하나의 현안을 가지고 각각 싸우죠. 가령, 착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과 싸우고 때리고 부수라는 악한 심령의 충돌입니다. 

어쩌면 시드기야는 늘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검정 시드기야와 하얀 시드기야가 사사건건 부딪쳤는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도 그렇죠. 늘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이 부딪칩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상이라고요? 늘 그 둘이 싸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요?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닌 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결정했잖아요.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시편 57:7    하나님, 나는 내 마음을 정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확실히 정했습니다. 내가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정하지 않으면 늘 둘 가운데서 헤맵니다. 늘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늘 업다운을 반복하죠. 사건마다, 사안마다 우리의 반응은 늘 왔다 갔다 하기 일쑤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을 확정하세요. 우리는 세상과 주님 사이에서 헤매는 존재들이 되면 안 됩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으로 마음을 확정한 사람들입니다. 선한 반응과 악한 반응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들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선한 행동과 선한 마음,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선한 반응을 보이도록 확정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과거의 경험도, 선입견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관습도 우리의 선한 반응을 방해할 수 없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임을 잊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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