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로니아의 침공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근위대장에게 예레미야에 대한 처우를 언급합니다. 근위대장이란 표현이 있지만 아마도 이는 전쟁의 선봉장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에게 느부갓네살은 예레미야를 선대 하라고 말하죠.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듭니다. 첫째는, 어떻게 예레미야를 느부갓네살이 알았을까 싶고요. 두 번째는 왜 그를 선대 할까 싶습니다. 상상이 되는 이유는 이런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의 대결이어도 전쟁은 전쟁입니다. 그 안에는 전략이 있고, 탐색이 있을 수밖에 없죠. 당연히 바빌로니아도 남유다 침공을 염두에 두었다면 탐색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예레미야라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가 눈에 띈 이유는, 그가 바빌로니아의 편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바빌로니아의 침공을 주장하고, 또한 바빌로니아에게 정복될 것을 예언했기 때문이죠. 그것이 상식적인 해석입니다. 바빌로니아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죠. 그래도 이름 있는 유다의 영적 지도자라는 사람이 그렇게 떠들고 다니니 바빌로니아의 입장에서는 고마울 수밖에요. 아마도 느부갓네살의 예레미야를 향한 선대는 그런 연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까지는 상식적인 추론입니다. 그리고 그런 추론이 맞다고 여깁시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우리의 입장에서도 그런 추론이 상식적일까요? 우리는 이미 압니다. 이 멸망은 느부갓네살의 위한 멸망도, 유다의 마지막 심판도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때론 세상이 돌아가는 일이 권력을 가진 자, 돈을 가진 자의 입장에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때론 전쟁의 승리가 나의 전투력에 있다고 느낄 때도 있죠.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는 기준이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계획이 있고, 역사(work)가 있죠.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현실이 있어요. 죽음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상식의 범위를 넘어 일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때론 반역 같은 예언이 오히려 애국이 되기도 합니다. 때론 아프고 쓰라린 경험이 나를 살리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요. 때론 원수 같은 적군들에 의해 목숨이 구명되기도 하죠.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나요? 정확히 말하면 인생은 우리와 다른 눈을 가지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니 작은 기쁨에 넋 놓지도 말고, 작은 슬픔에 끝이라고 생각지도 마세요.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우리의 역사는 그저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붙잡으면 됩니다. 그분의 손이 이끄시는 한, 우리의 절망이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하고, 우리의 슬픔이 약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도 눈앞의 이익에 눈멀지 마세요. 오늘도 눈앞의 상처에 내 마음을 저주로 물들게 하지 마세요. 어떤 사람의 말에 내 생각을 피비린내 나는 분노로 채우지 마세요. 세상이 나를 속여도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평안함이 깃들기를 기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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