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뜬금없는 본문이 등장합니다. 갑자기 에벳멜렉의 이야기가 나오죠. 아시다시피 에벳멜렉은 38장에 예레미야가 웅덩이에 갇혀 늪에 빠지려 할 때 구해주었던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이 구절은 시간을 거슬러 또 올라간 셈이죠. 이를 두고 신학자들은 예레미야의 글들이 부분 부분 짜깁기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하죠. 어쩌면 조각난 글들이 이어질 때 틀어졌거나 혹은 후대에 첨언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에게는 별반 흐름에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다소 늦었지만 주님의 말씀이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이때,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에 대한 축복의 말씀이 나오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에벳멜렉이라는 이름은 파자하면, 에베드(종) + 멜렉(왕)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왕의 종이라는 뜻이죠. 이것이 실제 인물의 이름이었는지, 혹은 그의 직책을 말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이름처럼 인간이 아닌 하나님을 왕으로 삼아 실천했던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는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때 ‘노’라고 말한 인물입니다. 진리를 위해서, 옳음을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죽음을 각오한 데에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에는 반드시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없는 순종은 없습니다. 만약 믿음이 배제된 순종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옳은 것을 쫓는 것은 믿음의 행동이 아니라 경험의 행동입니다. 믿음의 행동은 그래서 위험하기도 합니다. 믿음의 순종은 때론 앞이 보이지 않기도 하죠.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은 앞의 ‘어떤’ 일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것이 믿음이죠.
에벳멜렉은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그 복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보다 나의 뜻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게 더 나아 보여서나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의 뜻보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훨씬 두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순종이 방해받기 시작한 것은 우리 안에 두려움이 생기면서부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수없이 “두려워 말라”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몰라요. 두려우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두려움이 엄습하면 주님의 뜻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두렵다면 할 수가 없습니다. 진짜 믿음은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두려움을 접어두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움은 늘 앞날에 있습니다. 오늘 있을 일이 두렵습니까? 앞으로 미래가 두렵나요? 그 두려움은 우리의 손발을 묶고, 우리의 의식을 묶어서 조금도 도전하고 용기 갖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믿음을 가져라’ 같은 어려운 말 쓰지 않겠습니다.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방법, 그것은 좋은 일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하신 좋은 일들을 생각하고, 앞으로 나에게 주실 좋은 것들만 꿈꾸는 것입니다. 아무리 풍파가 있어도 여러분은 잘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니 꿈을 꾸세요. 자꾸 어려울 것이라고, 안될 것이라고 자신을 두려움 속에 빠뜨리지 마세요. 여러분이 바라는 대로 내 생각을 만들면, 꿈꾸는 대로 우리의 몸도 따라갈 것입니다. 그렇게 미래가 만들어지는 것이에요. 걱정을 품지 마세요. 소망을 품으세요. 한숨으로 한날을 보내지 마세요. 한 걸음씩 잘 되는 것을 기대하며 한날을 보내세요. 그것이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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