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는 고대 마케도니아의 주요항구도시였습니다.
현재는 그리스에 속해 있으며 이름은 테살로니키이죠.
그리스에서 아테네 다음으로 큰 제2 도시입니다.
비잔티움제국 때는 '공동황제수도'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화려한 역사를 가진 도시이고요.
경제적으로나 상업적으로도, 또한 정치, 군사, 지역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항구도시죠.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으로도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데살로니가(테살로니키)는 그리스의 마케도니아주 중심도시인데요.
마케도니아는 아시는 바대로 그리스 반도의 북방에 건설되었던 고대왕국의 이름이죠.
그런데 옛 유고연방 일부가 1991년 독립하면서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이 일 때문에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간에 27년간의 이름 분쟁이 있었죠.
최근 마케도니아가 이름을 북마케도니아로 개명하면서 분쟁이 일단락되기도 했습니다.
마케도니아(현재는 북마케도니아)라는 독립 국가와 테살로니키가 있는 마케도니아주는 다른 곳이라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장황하게 설명했네요.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에서 잠시 데살로니가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는데요.
그 씨앗으로 인해 교회가 생겼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그 교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보통 항구도시나 무역의 중심지들은 타 지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합니다.
그래서 변화와 새로움에 매우 개방적입니다.
반면, 각기 다른 자유로운 사상들과 이념들로 인해 반작용도 일어나기 쉽습니다.
보통 물질주의와 도덕적 타락, 이단적 철학들의 병폐들이 나타나는데요.
데살로니가가 바로 그런 지역이었습니다.
그런 지역에서 유일신 사상과 회개를 외치며 십자가를 전파하는 데살로니가교회는 안팎으로 고난에 휩싸이게 되었는데요.
물론 초대교회가 어딘들 어렵지 않았겠습니까?
익숙한 것들과 결별을 하고,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는 일은 늘 어렵습니다.
게다가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은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세상에서 언제나 공격의 대상이 되죠.
또한 자신을 버리고 주님의 종으로 살라는 메시지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욕망의 견고한 진을 친 세상에 도전장을 내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초대교회 중에서도 데살로니가교회는 그런 도전을 아마도 가장 먼저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그런 데살로니가교인들을 향해 바울은 용기와 힘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편지가 쓰이게 된 것이죠.
데살로니가전서는 신약성경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쓰여진 책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데살로니가교인들은 세 가지 중요한 덕목을 지녔던 모양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믿음 소망 사랑인데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손과 발에는 믿음의 행동이 있었고,
가슴으로는 사랑을 잃지 않았으며,
머리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산 그야말로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었던 셈입니다.
현대적인 항구도시는 세상의 흐름, 소위 유행이라는 것이 빠릅니다.
물질주의가 팽배하면 사람들과의 관계는 영락없이 물질로 엮이게 되고요.
삶의 목표는 쾌락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세상 흐름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믿음으로 지키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을 잃지 않으며,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살기란 어렵습니다.
오늘 바울이 소개하는 데살로니가교인들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은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환경이 좋아진다고 믿음이 나아지지 않고요.
환경이 원하는 대로 받쳐 준다고 믿음이 출중해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환경이 열악할수록, 힘겨울수록 믿음은 더 장성해지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이익과 필요성이 아니라는 사실이죠.
물질도, 이익도, 필요성도, 그저 잠시입니다.
오직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은 사랑으로만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나에게 이로운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랑 때문에 만나고, 사랑 때문에 교제하고, 사랑 때문에 돕고 기도하는 거죠.
마지막으로는 결국 그리스도인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나의 뜻이 목표가 아니라 그분의 뜻이 목표고요.
나의 꿈이 목표가 아니라 그분의 꿈이 목표인 거죠.
그래서 그분의 꿈을 위해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죠.
그런 그리스도인에게서 향기가 납니다.
아름다운 믿음은 향기가 납니다.
향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느낄 수는 있습니다.
어느 시인이 말했습니다.
소나무 위를 나르는 바람에는 솔 향기가 나고,
꽃밭 위를 나르는 바람에는 꽃향기가 난다고요.
여러분의 믿음 위를 나르는 성령의 바람에서는 어떤 향기가 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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