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로마서 14장에서 고백한 말이죠.
참 위대한 말입니다.
우리는 사느냐 죽느냐를 주로 논합니다.
마치 사는 것은 이기는 것이고, 죽는 것은 지는 것처럼,
양단간에 결단이 가장 큰 이슈가 되죠.
그러나 바울의 초점은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느냐였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본문에도 등장하죠.
살든 죽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요.
다만 살아도 무엇을 위해 살고, 죽어도 무엇을 위해 죽는지가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우리의 시선은 늘 ‘부유’ 혹은 ‘가난’입니다.
‘갖느냐’ ‘못 갖느냐’이고요.
‘누리느냐’ ‘못 누리느냐’의 차이로 행복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태도는 좀 다릅니다.
그는 ‘가져도 왜 가지게 되었는지’. ‘누려도 어떻게 누리는지’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반대로도 마찬가지죠.
못 가져도 못 가진 이유가 있고, 누리지 못해도 그 자리에서 할 일이 있었던 셈이죠.
이런 태도는 그를 환경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합니다.
다만 자신이 어떤 상태이든 쓰임 받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뿐이죠.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죽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그것이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는 조금 더 살기를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 또한 빌립보교회 교인들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이유를 밝힙니다.
바로, ‘성장’과 ‘기쁨’ 때문이라고요.
바울의 이런 결정을 뒤집어 생각하면,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 두 가지가 지금 없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왜 이 2가지가 중요할까요?
우리에게는 매일매일 새로운 시간이 주어집니다.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 시간이죠.
이 시간은 앞으로 나갑니다.
이 시간에 생명력이 결합하면 변화를 일으키죠.
어제보다 우리는 오늘, 조금 더 큽니다.
어제보다 오늘, 우리는 조금 더 늙죠.
이것을 성장이라고 부릅니다.
시간이 흐르는데 성장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가 나이를 먹으면서 크지 않은 채 그대로라면요?
육체적으로는 나날이 크는데 생각은 멈춰있다면요?
아마도 누구나 이를 심각한 장애로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영성에도 이런 장애가 있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회 생활에 익숙할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의 영적 인지력은 그대로라면?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영성은 제자리라면요?
식탐이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10살이 되어도, 20살이 되어도 여전히 양손에 먹을 것을 쥐고, 누구에게도 주지 않으려고 버둥거리고 있다면요?
서른이 넘고 마흔이 되어도 곁에 있는 친구 장난감을 탐내며 싸우는 어린아이 같다면요?
흐르는 시간을 산다면 우리는 자라야 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시간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성장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장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나도 모르게 장애를 갖게 되기 때문이죠.
오늘 바울은 그 성장의 비결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비결 말이죠.
그것이 ‘기쁨’입니다.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어요.
그만큼 기쁨에 대한 철학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기쁨이 성장의 비결인가를 생각해 봐야겠죠?
어제 백남성집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미 공지했지만,
아직 태중에 있는 아이에게 결핍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겁니다.
심실중격결손이라는 진단인데요.
심장의 좌우 심실을 분리해 놓은 격벽에 구멍이 생기는 질병입니다.
이는 선천적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심장질환의 일종이죠.
이 연락을 받고 제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심장을 찌르는 통증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아픔과 슬픔, 걱정과 안타까움이 휘감기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마치 부모가 자식을 위해 제대로 해 준 것이 없는 것 같은 미안함과 부족함도 밀려왔습니다.
멍하니 잠시 앉아있다가 비로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세상 빛도 보지 못한 아이임을 생각하니 눈물부터 나더라고요.
그런데 기도를 하면서 점차 뚜렷한 주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그 음성은 마치 이런 것 같았어요.
“무엇을 염려하니?
무엇을 걱정하니?
오히려 기뻐했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이 아이는 태중에서부터 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세상 빛을 보기도 전부터 많은 사람의 기도에 쌓이게 될 은혜를 입을 것이고,
세상의 첫발을 주님이 주신 기적으로 시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지 마세요.
옛것은 지나갔고, 이제 새로운 것이 올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기대하세요.
그것도 기쁨으로 기다리세요.
여러분이 기쁨을 가지고 기다리면 기쁜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믿음을 가지고 기쁜 일을 기대하면, 그 일이 보여요.
성장의 비결은 이것입니다.
기쁨으로 내일을 사세요.
기쁘고 흥분된 내일을 기대하며 기도하세요.
염려한다고 키를 한 자라도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내 키가 크든 작든, 가졌든 못 가졌든,
나를 통해 일어날 아름다운 일을 기대하세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닫힌 마음을 여세요.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아내는 것처럼 슬픔 속에서 기쁨을 캐내 그것만 바라보세요.
그러면 어느덧 기쁨만 보일 것입니다.
내가 바라던 것만 내게 다가올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마음에 기쁨을 채우세요.
좋은 생각을 하고, 잘 될 것을 기대하고, 기쁜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세요.
그것이 성장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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