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세계 선교의 장을 연 인물입니다.
그는 3차례의 선교여행을 통해 많은 교회를 세웠죠.
물론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는 데는 바울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선교여행을 하기도 전에 이름 모를 전도자들에 의해 많은 곳에 이미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도 세워졌죠.
그 중 대표적인 곳이 로마였습니다.
로마에 복음이 전해졌다는 것은 상징성이 큽니다.
당시 로마가 세계의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기독교 신앙이 가장 부정되는 곳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곳에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났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죠.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일제 강점기 시절, 대한독립을 꿈꾸는 이들의 단체가 일본 도쿄에 세워진 것과 같다고나 해야 할까요?
그래서 바울은 그 로마에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세계의 중심부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신기하고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한 로마교회를 보고 싶었던 마음이 훨씬 더 컸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바울로서는 로마방문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텐데요.
그러나 매번 그 길이 막혀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소원대로 로마에 가게 되죠.
문제는 그가 로마에 가는 신분이 죄수였다는 점이죠.
그는 죄수로 로마에 압송되어 갔습니다.
때로는 소원이, 내가 생각지 않는 방향으로도 이루어집니다.
마치 바울이 선교사나, 지도자, 혹은 선생으로 로마에 간 것이 아니라 뜻밖에도 죄수로 로마에 가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럼에도 바울은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우리의 기도는 나의 생각에 딱 맞게 응답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만으로 응답이 되지도 않죠.
뜻밖이고, 생소하며, 때론 반대로 응답이 되지만 결국 결과는 같은 것을 낳을 때가 있습니다.
결국 바울의 소원은 그의 신분이 아니라 로마에 가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은 소아시아 교회 교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중 하나가 지금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빌립보서죠.
이를 우리는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옥중에서 쓴 바울의 서신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서신을 보낸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중에서 오늘 본문에 비추어보면,
바울이 옥중에 갇히자 어떤 이들은 그를 옹호하며 도왔는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바울을 비난하거나 폄훼하며 자신들의 사역을 높이는 이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꼭 그런 사람들 있죠.
남을 낮추어서 자신을 높이는 사람들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폄훼하며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사람 말이죠.
이것을 저는 '뺄셈가치관'이라고 말합니다.
마치 젠가처럼 밑 장을 빼면서 자신이 승리자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어요.
또한 자신은 낮아지고, 늘 섬기는 자리에 있기를 권면하시죠.
저는 이를, '덧셈가치관'이라고 부릅니다.
'뺌셈가치관'이 마치 경쟁과 시기, 누군가를 누르고, 상대방의 실수를 덧입어 내가 앞서나가는 것이라면,
'덧셈가치관'은 남을 칭찬하고 배려하며 높임으로 자신도 높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마태복음23:12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런 상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힙니다.
18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거짓된 마음으로 하든지 참된 마음으로 하든지, 어떤 식으로 하든지 결국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앞으로도 또한 기뻐할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에게 2가지 메시지를 던지죠.
첫째는, 뺄셈의 가치관이 아니라 덧셈의 가치관을 가지라는 메시지입니다.
남을 낮춰서 자신을 높이지 말라는 말이죠.
남을 비방하거나, 남의 실수를 부각시켜 자신의 이득을 채우지 말라고요.
그런데 의외로 우리는 이런 일에 익숙합니다.
자신은 의식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남의 잘못을 보며 자신의 우월함을 곧잘 드러냅니다.
남의 실수를 지적질할 때는, 실수를 알려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마음 깊은 곳 가운데 '나는 너보다 낫다'는 마음이 도사리기도 하죠.
남의 잘못을 덮어주지 않을 때는, 그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이라고 합리화하지만, 사실은 그 잘못을 통해 잘못하지 않는 나를 드러내려는 경우가 훨씬 많기도 하죠.
마치 죄인을 부각시키며 나의 의를 드러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하죠.
우리는 남의 잘못을 지적할 권리가 없습니다.
오직 남의 잘못을 덮어주고, 해결해 줄 의무만 있어요.
그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덮으시고,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잘못을 헤집어 만방에 고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죽기까지 자신의 보혈로 덮어주셨죠.
그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메시지는, 뺄셈이든 덧셈이든 어떤 것이든 결국은 한 가지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경쟁심으로 복음을 전하든, 섬김으로 전하든, 복음은 전해질 것이라는 뜻이죠.
첫째 메시지가 내 중심에서의 판단이라면, 둘째 메시지는 바라보는 자로서의 자세입니다.
그러니까 뺄셈의 가치관을 가지고 설치는 사람을 바라볼 때, 흥분(?)하지 말라는 말이죠.
아무리 그래도 결국 그런 태도를 통해서도 복음은 전해질 것이기 때문이죠.
굽어 흐르든, 곧장 흐르든, 결국 강물은 바다로 흐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 앞에서 절망하거나 분노하지 말라는 뜻이겠죠.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보는 태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뺄셈의 가치관으로 살지 마세요.
우리는 늘 덧셈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또한 비록 누군가 뺄셈의 가치관으로 소리를 높여도, 그들 대하는 태도는 늘 여유롭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정면교사든 반면교사든, 결국 남는 것은 그리스도일 테니까요.
그렇게 기도하면 됩니다.
아픔이 없기를, 슬픔이 없기를 바라죠.
그러나 언제든 아픔이 오고, 슬픔도 깃듭니다.
아픔이 없으면 좋겠지만 설혹 있다고 할지라도 낙망하지 마세요.
아프지만 결국 선하게 사용될 것을 기대하세요.
슬프지만 결국 아름다운 성장을 이룰 것을 바라보세요.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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