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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빌립보서묵상

[빌립보서13] 주님께 매인 인생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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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13] 주님께 매인 인생을 사십시오.

 

빌립보서4:1~5,

1    그러므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계십시오.

2    나는 유오디아에게 권면하고, 순두게에게도 권면합니다.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3    그렇습니다. 나의 진정한 동지여, 그대에게도 부탁합니다. 이 여인들을 도와주십시오. 이 여인들은 글레멘드와 그 밖의 나의 동역자들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나와 함께 애쓴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4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1.

요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인기라고 합니다.

1988년은 제가 대학원에 입학하던 해였는데요.

그런 추억 놀이를 기대어 말씀을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2.

저는 1992년 겨울, 12월에 결혼을 했습니다.

12월은 제게 잊지 못할 달이기도 한데요.

그 해의 1년 전, 12월에 아내를 처음 보았고, 1년 후 12월 결혼을 했으니 12월이 제 결혼 생활에는 뜻 깊은 월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할 당시 아내는 대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꽃다운 나이 23살에 제게 시집을 왔던 것이죠.

집사람이 처갓집에서 딸로는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이구요,

오빠까지 합하면 넷째 자식인데, 결혼은 첫째가 되었어요.

그래서 처갓집에서는 아내에게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갔다고 놀렸다는군요.  

 

3.

그 당신에는 그저 좋아서 결혼했다고 생각했는데요.

이후 젊은 청년들을 만나면서 생각해보니 정말 어린 나이에 시집왔더라구요.

물어보니 시집오기 전에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데요.

친구 만나고 놀러 다니고 맛난 것 먹고 할 나이에 제게 시집와서 6명 시누이 있고, 늙고 병든 시부모 모시고, 이상한 남편에, 위험한 중국에서의 생활과 가난한 개척교회 사모로 살아온 거죠.

여기서 돌발퀴즈...

그렇다면 아내가 착해서 그 모든 상황을 다 감당한 걸까요?

뭐 그게 아니라고 하기에는 제가 봐도 참 착한 아내이긴 합니다.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아요.

착하기만 하다고 이것을 다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답은 다른 것에요.

[올인]한 것입니다.

저에게 올인 한 것이고요.

이런 삶을 받아들이고 올인 한 것이죠.

그게 답입니다.

 

4.

요즘 수요영성예배에서 신앙기초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회개란, 단순히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회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어요.

내가 가던 세상의 길을 멈추고,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다른 곳으로 향하던 표적을 하나님으로 맞추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는 올인 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나의 길을 바꾸지 않고, 던지지도 않고, 말만 하는 게 회개가 아니란 겁니다.

올인이라는 것이 도박 용어여서 좀 그렇습니다만

올인에는 전제가 되는 것이 있어요.

퇴로를 차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돌아갈 길이 없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이죠.

그것이 올인입니다.

회개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내가 멀리서 구경하듯 할 수 있는 것도,

여차하면 다시 돌아올 구멍을 만들어 놓을 수도 없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에서 거짓말이란 말만 한다는 것이 아니예요.

회개에서 거짓말이란, 올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5.

부부의 갈등들을 많이 봅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났기 때문에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죠.

갈등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고, 더 나아가 탐욕입니다.

결혼이란 갈등을 전제로 그것을 극복하는 게임인 셈인데요.

사람들은 결혼을 자꾸 잘못된 행복으로 포장합니다.

여러분이 꿈꾸는, 알고 있는 행복은 신기루예요.

행복은 구름 위를 나는 것 같은 것이 아닙니다.

행복이 내가 편한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행복은 내가 변해가면서 서로 맞춰가고 맞아가는 기쁨을 맛보는 거예요.

그래서 행복은 만들어가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6.

그래서 부부는 갈등관리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행복한 부부는 늘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말하는 부부가 아니예요.

행복한 부부는 갈등관리를 잘 하는 부부입니다.

행복한 부부는 싸움도 잘~해요.

자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잘~~ 한다구요.

어릴 적 친구들을 보면 싸우다 더 깊은 친구 되잖아요.

그것은 싸워서 친구 된 것이 아니라 싸운 후 잘 회복했기에 친구 되는 거죠.

왜 소통이 필요하고 대화가 필요할까요?

왜 사랑이 필요하고 이해가 필요합니까?

다 갈등이 있고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당연히 소통과 사랑이 빛을 발휘하는 곳은 갈등과 문제가 있는 곳입니다.

가정은 그 사랑과 이해가 가장 빛을 발휘해야 하는 곳이잖아요.

그러니까 갈등을 이기고 넘어서야 하는 것이죠.

이것은 필연입니다.

행복한 부부는 안 싸우는 부부 아니고, 잘 싸우는 부부예요.

싸우는 것도 두려워 마세요.

싸움이 더 깊고 가까운 관계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7.

그런데 문제는 싸움으로 깊고 가까운 관계가 아니라 깊고 두터운 벽이 생긴다는 점이예요.

갈등 때문에 견딜 수가 없고, 갈등으로 인해 내가 쇠약해 진다는 점이죠.

그 이유는 연약해서도, 가지고 있는 성품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착각하기 쉬운 것은 갈등 문제가 성품 때문이라 여기는 선입견이죠.

착하면 견디고, 못되면 못 견딘다는 생각 말입니다.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심성이나 성품과는 관계없습니다.

착하든 못되었든 갈등은 다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갈등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갈등을 선용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바로 올인하지 않기 때문이죠.

 

9.

갈등하는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그 줄기는 하나입니다.

“나는 그렇게 못살겠다.” 이거거든요.

이제껏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못살겠다는 거죠.  

 

10.

결혼은 내 삶의 연장이 아닙니다.

결혼은 나에서 우리로 변하는 것이고, 여자에서 아내로, 남자에서 남편으로, 그리고 엄마와 아빠로 변하는 것이죠.

“지금까지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이라는 겁니다.

 

11.

아담에게 하나님은 하와를 주십니다.

단순히 외로워서일까요?

하나님이 계신데 왜 외로움을 걱정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걱정하신 외로움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외로움이 아닙니다.

바로 자식에서 남편으로의 변화가 필요하셨던 것이죠.

그리고 성경은 2가지 중요한 사실을 적습니다.

창2:23~24,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1)뼈중의 뼈, 살중의 살 - 새로운 신세계가 보인 것이고요.

2)부모를 떠나 -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이처럼 결혼은 내 삶의 연장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인 겁니다.

 

12.

그런데 왜 우리는 올인하지 못하죠?

왜 아직도 나의 삶에서 서 있는 것일까요?

왜 내 삶을 못 버리고 그 자리에 서서 상대방을 바라보는 거죠?

 

13.

바둑이나 장기를 두면 곁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훈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훈수 두는 사람들이 더 잘 봐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잘 보죠.

그런데 여러분은 훈수의 삶을 살 수 있어요?

나의 삶을 훈수처럼 살 수 있어요?

내 자리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 있어요? 

그런 훈수가 삶을 바꿔요?

 

14.

올인해야 해요.

들어가야 합니다.

내 몸을 담글까 말까 자리에서는 늘 걱정만 있어요.

 

15.

저는 물을 무서워해서 수련회 같은 것 가면 물가에 안 가요.

누가 와서 빠뜨릴까봐 늘 걱정해요.

도망 다니고, 숨어 다니고...

그러다 보니 늘 다 의심스러워요.

저 사람이 나를 빠뜨리려, 잡으러 오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일단 빠지고 나면, 그 물놀이를 즐길 수 있어요.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많은 젊은이들의 결혼 생활을 보면 그런 마음이 들어요.

내가 빠지면 어쩌나?

나의 삶이 침해받으면 어쩌나?

힘들어지면 어쩌나?

나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힌 적이 없는데 손이 망가지면 어쩌나?

언저리가 가장 걱정이 많은 자리예요.

빠질까 말까 하는 자리가 가장 염려가 많은 자리고요.

차라리 그런 자리가 아니면 좋겠는데 들어가야 하는데 못 들어가는 자리, 그 자리가 가장 문제 많은 자리라고요.

 

16.

저는 옷을 입을 때 아내가 다 챙겨줍니다.

아내가 입으라는 옷만 입어요.

결혼 초기에 옷 입는 것 가지고 다퉜어요.

10년간 혼자 살아오면서 옷 입는 나름의 패션감각이 있을거 아니예요?

그런데 아내가 별로라는 겁니다.

그게 아침 시간에 괜히 기분 상하고, 다투게 하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내가 훨씬 감각이 있어요.

어느 순간 저는 그냥 다 맡겨버렸어요.

패션에서는 바보가 되어 버렸어요.

왜냐면 아내가 있으니까요...

바보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겁니다.

믿는 분에게 맡겨버리는 거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는 관심 없습니다.

그냥 내 머리에 패션은 아내가 최고다는 공식만 있으니까요.

 

17.

예쁜 연예인이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연극, 드라마에서 하인역할을 하는데도 우아한 자태를 뽐내면 어떻겠어요?

그 자리에 들어가면 망가져야 합니다.

아내나 남편이 되면 자신은 없고 아내와 남편으로 올인해야 합니다.

엄마나 아빠가 되면 거기에 올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해결책이 나오는 것예요. 

퇴로를 차단하고 말이죠.

그래야 훈수 두듯 살지 않아요.

훈수는 늘 평가만 하거든요.

18.

오늘 본문의 주제는 한 가지입니다.

[주 안에서 굳건히 서라]는 것입니다.

어렵고 박해와 고난과 공격이 많은 시대에 그렇게 굳건히 서기는 쉽잖죠.

문제는 이들이 착해서나 인내심이 강해서 견딜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들이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견디고 굳건했던 것은 올인했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주님께 매인 삶을 산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주님을 신랑 삼아 혼인한 것으로 표현하죠.

이제 나의 삶에서 주님을 따르는 삶으로 나를 던진 것입니다.

이미 결정한 것이죠.

결혼 했다면 이미 결정한 겁니다. 그 삶을 살기로요...

그러면서 바울은 주님께 매인 인생이 주는 묘미를 소개합니다.

 

19. 주님께 매인 인생의 묘미1.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사건과 물위를 걷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영원한 생명의 빵과 말씀에 대해 이야기 하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 말미에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죠.

바로 제자 가룟유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요6:64,    그러나 너희 가운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부터 예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이 누구이며, 자기를 넘겨줄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 말씀에 의하면 가룟유다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이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제자가 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20.

우리의 갈등은 이렇게 출발합니다.

내가 그 곳에서, 그 사람에게 들어가고 올인하는 것, 사랑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의 목적과 나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시작한 관계에는 문제가 바로 드러나고 맙니다.

여기에 일치나 같은 마음을 품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 목적을 위한 결혼이나 만남에서 같은마음을 품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같은 마음을 품기 위해서는 같은 장소, 같은 올인이 있어야 합니다.

 

21.

부부에게 사랑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나는 너에게 올인했다는 거죠.

그 믿음을 심어주지 못하면 같은 마음은 불가능합니다.

부부들, 그 상대방에게 올인하셨습니까?

믿음의 사람들, 예수님께 올인하셨습니까?

착각하지 마세요.

나의 삶이 있고, 비즈니스가 있고, 할 일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안하고 그것만 바라보는 것이 올인이 아니죠.

올인은 나의 삶, 나의 비즈니스, 나의 할 일이 다 그를 위한 것, 이것이 올인입니다.

내가 바쁜 것, 내가 일하는 것, 그대를 위함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나의 삶, 내가 돈을 버는 이유, 바쁜 이유, 주님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22. 주님께 매인 인생의 묘미2. 진정한 기쁨이 있다.

 

세상의 가치관은 얻는 데 있습니다.

많이 얻으면 행복하고, 많이 가지면 기쁘다는 원리가 작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반대의 원리를 우리에게 제시하죠.

 

23.

예수님은 부자청년과의 대화에서 가진 모든 것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마19:21~22,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고 하면, 가서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근심을 하면서 떠나갔다.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부자청년은 재물과 명예 등, 많은 것을 얻은 사람입니다.

세상의 가치로 보면 킹카이고, 본이 될 만한 인물이죠.

그러나 그 부자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에 고민하고 돌아갑니다.

 

24.

이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마19: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

 

또한 자신을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마16:2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25.

나를 내려놓으면 기쁨을 선물로 받습니다.

이 말씀은 다음의 내용과도 연결됩니다.

 

26. 주님께 매인 인생의 묘미3. 관용이 있다.

 

지지난 주, 저희는 추수감사실천 2탄, 독거어르신들 가정방문을 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마치고 마음이 좀 좋지 않았습니다.

가정을 방문하고 돌아온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희의 계획은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혼자 사시는 분들이 거의 없으셨어요.

어느 가정은 저희가 돕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물론 저희의 방문을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셨고요.

상황이야 어찌되었든 저희가 도우려는 의미가 많이 사라져버렸죠.

어쩌면 도우려 애쓰신 여러분들 가운데는 실망하시는 분들도 계셨을 거예요.

“여기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가정들이 많을텐데...” 하고요.

저도 좀 실망스러웠고, 굳이 우리가 돕지 않아도 되었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면 내년에는 더 어려운 지역을 찾아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7.

그러던 차에, 어느 젊은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모르는 분인데 다른 분의 소개를 받아서 연락을 주셨는데, 앞으로 교육과 관련된 목회를 하고 싶으시다는 겁니다.

영어도 잘하시고, 교육적 마인드가 있으시더라구요.

그가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신도시에 개척을 한 것입니다.

마침 그 신도시가 제가 사는 동네와 가까워 잘 아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도 뭐 잘하는 것이 없어 만남을 고사했는데 너무 간청해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곳에서 그런 일을 해도 될까요?”

아마도 부유한 동네에서 무료교육사업을 한다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뜻이죠.

나는 그 질문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대답은 명확했거든요.

“거기는 부자동네라 그런 일을 할 필요도 없어요.”가 제 대답이었으니까요.

한참을 주님께 의지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곳에 하나님이 당신을 보내셨다면 이곳에서 하세요. 나에게 맡기신 곳이 바로 가장 가난하고 어렵고 내 도움이 필요한 곳이니까요.”

 

28.

마치 그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이 제게 하시는 말씀 같았습니다.

“네가 도울 사람, 네가 해야할 일은 내가 정한다. 네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나보다 부자여도, 나보다 잘났어도, 하나님이 도우라면 돕는 겁니다.

내 생각에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고, 내 생각에 내가 더 초라해도 하나님이 붙이셨으면 돕는 것입니다.

내가 혹시 이용당해도, 내가 혹시 모욕당해도 하라면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냥 주님께 올인한, 매인 종이거든요.

 

29.

저는 종이라는 말 좋아합니다.

종은 맡긴 일, 주어진 일, 모든 일을 하며 순종하죠.

그런데 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의 특징은 자신의 의견이 없다는 것입니다.

종이니까요.

종이 무슨 자존심이 있고, 종이 무슨 의견이 있습니까?

우리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아직 종으로 나를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종에게 반말을 한들, 종에게 하찮은 일을 시키든 힘겨워할 것이 없죠.

종이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아직 내가 종으로 나를 던지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관한한 나는 종입니다.

그래서 어떤 말에도, 어떤 모욕, 어떤 박해나 간섭에도 자유해요.

왜냐하면 나는 복음에 빚진 이 땅의 종이니까요.

이것이 관용의 출발이죠.

 

30.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인은 주님께 올인하는 존재입니다.

주님께 매인 인생이죠.

경계인으로 살지 마세요.

언저리에서 살지 마세요.

괴로움과 갈등만 있을 뿐입니다.

신앙인으로 자신을 주님께 던지세요.

그 때, 주님의 축복이 임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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