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2:8-15 그러므로 나는, 남자들이 화를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이 없이, 모든 곳에서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여자들도 소박하고 정숙하게 단정한 옷차림으로 몸을 꾸미기 바랍니다. 머리를 어지럽게 꾸미거나 금붙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치장하지 말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에게 어울리게, 착한 행실로 치장하기를 바랍니다. 여자는 조용히, 언제나 순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 사실, 아담이 먼저 지으심을 받고, 그 다음에 하와가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아담이 속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임을 당하고 죄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 살면,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오늘날 여성인권에 비추어 많은 공격을 받는 구절입니다.
'조용히 하라'든지, '순종하라'든지 하는 바울의 말은 여성 폄훼적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바울의 말을 빗대어 남성의 우월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
굳이 이런 명칭을 붙이자면 그냥 휴머니스트입니다.
저는 남자고, 이 땅에서 나 자신도 모를 남성우월적 신분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구분된, 아니 차별된 여성의 고통을 다 알지 못합니다.
남성의 평범한 일상과 말이 여성에게는 아픔과 상처가 된다는 것도 압니다.
이것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생각보다 뿌리가 깊습니다.
남녀평등의 문제는 역할이나 신분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사랑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남녀에게는 분명히 역할이 나눠져 있고, 다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월적인 역할도, 차별된 재능도 아닙니다.
남녀가 다른 이유는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사랑이란 자신을 나누며 서로 공평과 균등을 이루는 것입니다.
다른 역할이 서로 하나가 되고, 구분된 재능들이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사랑입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여자를 "돕는 배필"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마치 남자를 위하여 창조하신 듯 해석이 되는 이 말은,
연구해보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돕는베필'로 번역된 히브리말 '에제르 케네그도'인데요.
'케네그도'는 '짝'이라는 뜻이고, '에제르'는 '돕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에제르'라는 단어가 그저 종속적인 단어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우실 때도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저 단순히 부분부분을 돕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어쩌면 불가피하고 요즘 많이 사용하는 단어, 불가항력적 도움입니다.
게다가 배필이라는 말은 단순히 하인처럼 돕는 존재도 아닙니다.
이미 말씀드린 '케네그도'라는 단어는 짝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단어는 3가지 요소가 합성된 말이죠.
'케'는 "...같이"라는 뜻의 전치사이고요.
'네그도'는 '마주하다' '맞상대'라는 뜻의 '네그드'와 소유격 어미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단순 배필이 아니라 인격적 동등함과 상호존중함의 "마주하는 관계"라는 뜻이 됩니다.
너무 복잡하게 설명드렸나요?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보죠.
그런데도 바울은 왜 이렇게 여성에 대한 차별된 소리를 하는 것일까? 싶은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마치 여성은 나서지 말라는 뜻으로 비치는 이 본문을 조금만 음미해 보죠.
왜 바울은 여성에게 주의를 주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단순하게 생각하면 지금 여성들이 뭔가 드러내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겠죠?
조금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여성들이 그전보다 소리가 커진 것이죠.
구약시대에는 여성은 말도 못했습니다.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와서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여성들이 제자로서의 리더십을 인정받았고, 초대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급속도록 증가했습니다.
왜냐하면 남녀의 구분은 역할이나 우월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였기 때문이죠.
이런 의미라면 오히려 바울의 오늘본문은 여성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 아니라 여성의 달라진 위상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마치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듯, 새로운 위치, 새로운 역할을 감당하는 여성들에게 당부와 부탁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이 본문을 차별이나 우월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부탁과 당부의 차원에서 한 말로 읽어보면 여러분들의 해석은 어떻게 될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로마서8:28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남녀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로 구분됩니다.
우리는 재능이나 역할이나 힘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분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생명은 누구도 위아래가 없습니다.
생명은 누구도 귀천이 없습니다.
다만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룰때 비로서 빛나는 존재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전통과 경험으로 생명을 대하지 마세요.
오늘도 하나님과 협력하고, 이웃과 협력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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