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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디모데전서묵상

목적이 분명하면 거짓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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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1:1-7 목적이 분명하면 거짓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디모데전서와 함께 아침을 엽니다.
디모데전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에 묵상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몇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편지가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임을 알 수 있죠.(2절)
바울이 디모데와 함께 전도여행을 가다가 디모데를 에베소에 놓아두었다는 것도 알 수 있고요.(3절a)
그렇게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 한 이유도 알 수 있는데요.
그 이유는 올바른 신앙, 올바른 가르침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3절b)
아마도 에베소에는 잘못된 영적 교사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4절a)
그들로 인해 에베소교회 교인들 사이에는 다툼에 빠지는 경우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4절b, 6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왜 잘못된 가르침에 많이 현혹이 될까요?
우리는 왜 기복신앙에 잘 빠질까요?
우리는 왜 허망하고 미신같은 말에 혹할까요?
물론 기막힌 감언이설과 알 수 없는 권위로 현혹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의 말은 사람을 홀리기에 천재적이죠.
그렇게 주의를 주어도 우리 주변에는 보이스피싱이나 사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이 다 누군가의 천재적인 속임수 때문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5절, "이 명령의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직 신앙의 목적은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세요.
6절, "그런데 몇몇 사람은 이러한 목적에서 벗어나서 쓸데없는 토론에 빠졌습니다."
이 말씀은 신앙의 목적이 사랑이 아니라 다른 것이 되면 우리가 쓸데없는 토론에 빠지게 된다는 말씀이죠.

보이스피싱이 왜 성공할까요?
그 속임수의 스토리가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두려움'이 커서죠.
대형 경제 사기가 왜 가능할까요?
그 사기의 설계가 감쪽같아서요?
천만에요.
속임수에 완벽이란 없습니다.
다만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이 눈을 가리기 때문에 가능할 뿐이죠.

모든 사기, 모든 거짓, 모든 유혹은 우리의 두려움과 욕심을 근거로 접근합니다.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인간에게 다가온 유혹은 별로 힘이 없었습니다.
강압적이지도 않았고, 강력한 메시지도 아니었어요.
그저 속삭임정도였는데요.
그 유혹이 성공한 이유는 첫 인간 안에 '두려움'과 '욕심' 때문이었죠.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의 길은 사랑입니다.
그것도 내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이죠.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기고, 사랑이 모든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두려움이 생기면 사랑으로 내가 손해를 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사랑보다 더 큰 무엇인가가 있어야 할 것 처럼 여겨지죠.
사랑이 약해 보입니다.
우리 안에 욕심이 생기면 사랑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없어 보이죠.
사랑은 사랑이고, 그래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따지게 되고요.
그래서 신앙이 사랑보다 오로지 나에게 좋은 것, 더 많이 얻는 것, 더 높이 가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유혹을 당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이에요.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고, 명령입니다.
이 목적에서 우리가 벗어나는 순간, 우리에게는 어김없이 유혹이 찾아옵니다.

오늘 이 아침에 한번쯤 생각해 보시죠.
"내가 신앙생활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내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목적이 분명하면 유혹을 당하지 않습니다.
목적이 분명하면 거짓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유혹과 거짓에서 자유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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