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배고픔의 자리로 들어가십시오.

2013. 2. 8. 18:10묵상하는말씀/마태복음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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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7.묵상(마9:14~17)
새로운 배고픔의 자리로 들어가십시오.



1. 
오늘 아침 바람이 찹니다.
건강에 유의하세요.
사랑합니다.

2.
어제 수요영성예배에서 장기려박사님에 대한 짧은 동영상을 봤습니다.
장기려박사님에 대해 하시는 분 많으시겠죠.
정부의 의료보험이 만들어지기 전
민간의료보험제도를 만들어 20만 명에게
수혜를 주셨던 분입니다.
의사로써 언제나 환자의 편에 서 계셨던 분이시죠.
그러고 보면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필요를 생각하고 채우는 사역이 그의 인생에
따르는 것을 봅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보고 헌신하듯이...
누군가의 필요를 위해 인생을 걸듯이...
누군가의 친구가 되고자 자신을 버리듯이...

3.
장기려박사의 인생에서 기억나는 두 마디가 있습니다.
"바보라고 불린다면 그것은 인생에 성공했다는 증거라네"
바보가 아니고서야 어찌 오른뺨을 맞고 왼뺨까지 돌리겠습니까?
바보가 아니고서야 어찌 십리를 가주고,
바보가 아니고서야 어찌 원수를 갚지 않고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과 똑같이 반응한다면 우리는 바보가 아닙니다.
세상은 자신들과 다르게 반응하기에 우리를 바보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거룩"입니다.
우리가 다르게 반응할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갈6:14)

4.
우리나라에는 배고픈 시절이 있었습니다.
보릿고개가 있었고, 굶주린 이들이 허다했습니다.
굶지 않기 위해 투쟁을 하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 형태는 달라졌지만 지금도 우리가운데는
굶지 않으려 투쟁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돈에 목을 매는 것은 그 근본이 굶지 않으려는 상처 때문입니다.
배고픔은 아픔입니다.
배고픔은 비참이고, 고통이고, 슬픔입니다.

5.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때론 나의 배를 채워야 할 것으로 남의 배를 채우기 일쑤입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나의 남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파야하고, 고통이며, 때론 슬프기도 합니다.

6.
오늘 저는 예수 믿어서 배고픔이 사라진다는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더 배고플지 모른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배고픔의 차원이 다르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나를 위한 배고픔은 낡은 가죽에 담은 포도주와 같다 십니다.
남을 위한 배고픔은 새로운 가죽에 담은 새 포도주와 같다 십니다.
우리더러 새 포도주가 되라고 하십니다.
같은 고통, 같은 아픔, 같은 문제를 겪더라도
새로운 고통, 새로운 아픔, 새로운 문제를 가지라 하십니다.
바로 ‘나를 위해서’에서 ‘남을 위해서’로,
바로 ‘나의 구원’에서 ‘남의 구원’으로,
바로 ‘나의 필요’에서 ‘남의 필요’로 말입니다.

7.
포도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새로워졌을 뿐입니다.
고통도 있고, 배고픔(금식)도 있는데 새로워져야 합니다.
기도도 새로워져야 합니다.
'나'에서 '남'으로 말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나에게 임합니다.

8.
새로운 영은 나의 옛사람에 담지 못합니다.
오늘 나를 새롭게 하사 새로운 영을 담는 부대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새로운 배고픔의 자리로 들어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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