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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44 - 남을 위해 기도하면 주님의 복은 나를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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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2:28~33   시므온이 아기를 자기 팔로 받아서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 주십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므온이 아기에 대하여 하는 이 말을 듣고서, 이상하게 여겼다.


좋은 아침입니다. 한 주간을 시작하는 월요일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씀이 있죠? 새로운 시간에는 새로운 마음이 필요합니다. 어제의 지나간 시간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으니 오늘은 오늘에 맞는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시면 좋겠습니다. 다시금 기쁨의 능력을 믿고 오늘을 밝은 미소로 시작하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시므온과 아기 예수의 가족이 만났습니다. 신기한 것은 처음 만나는 것일 텐데요. 그런데 서로 알아본다는 거죠. 시므온은 시므온대로 아기 예수를 알아봅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처음 보는 시므온에게 선뜻 아기 예수를 내어주죠. 이게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특별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만나야 할 사람은 다 만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죠. 이들은 각기 말씀대로, 성령대로 걸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서로 만나죠. 그리고 각기 격려와 확신을 얻습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방법입니다. 좋은 관계는 서로에게 힘이 되죠. 그리고 서로의 길에 확신을 줍니다. 

 

아기 예수를 받아 안은 시므온은 하나님을 찬양하죠. 그의 찬양은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만난 기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앞서 26절에 시므온은 성령이 임한 상태임을 알려주었죠. 그리고 그에게는 그리스도를 생전에 만나게 될 것임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소망이 이루어졌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물론 이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을 여러 각도의 모습에서 증거 하려는 저자 누가의 의도가 다분한 기록이죠. 그런데 시므온 입장에서는 평생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니 감격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감격 너머에 있는 무언가입니다. 지금 시므온의 찬양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런 것입니다.

 

'주님, 이제 내가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을 보았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그는 기쁠까요? 그의 평생소원이 이루어져서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이루고 싶은 소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게 뭐라고요. 그 소원으로 시므온이 좋아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시쳇말로 부자가 되었습니까? 집이 생겼습니까? 어떤 축복이 그에게 주어졌습니까? 제가 좀 말이 거칠죠?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대부분 소원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무슨 이득입니까? 

 

여기에 축복의 비결이 있습니다. 시므온은 자신이 아닌 모든 인류의 구원에 대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이것을 확장해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인류 구원의 역사에 대해 자신의 소원을 맞췄다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자신의 소원으로 정했다는 거죠. 마치 예수께서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했듯이 말이죠. 이게 왜 축복의 비결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면 인류에게 가장 좋은 일이 벌어지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바로 내가 가장 잘 되는 길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축복을 받는 자의 기도는 자신에게 국한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주님이 하고 싶은 일을 하시도록, 그분이 관심하시는 일에 나의 초점이 맞춰지길 기도하는 거죠. 그러면 주님의 뜻은 나를 향해서도 가장 좋은 것으로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간혹 우리의 기도 중에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한 기도가 있죠. 세계의 평화와 이웃을 위한 기도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불쌍해서요? 나에게 도울 힘이 있어서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이 주님께는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모든 인류를 위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류 가운데 내가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주님의 축복이 인류 가운데 임하시면 나에게도 그 축복이 임하는 겁니다. 그래서 중보기도가 나를 향한 축복의 비결이 되는 거예요.

 

남을 위해 기도하면 주님의 복은 나를 향합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하면 주님의 은혜는 나에게 부어지죠. 모든 나라의 평화를 기도하면 나에게 평화가 내립니다.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소원하면,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하시길 바라시는 주님의 뜻이 나에게 임하는 거예요. 그래서 중보기도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겁니다. 주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잘 되기를 소원하는 이는 곧 주님이 나를 위해 일하심을 소원하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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