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서 1:8 여러분은 스스로 삼가서, 우리가 수고하여 맺은 열매를 잃지 말고, 충분히 포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는 비가 내렸는데요. 잔잔한 비지만 왠지 반가웠습니다. 비가 좀 눅눅한 기분을 들게 하잖아요? 그런데 어제 비는 포근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왜 그럴까? 싶은 생각을 하던 찰나, 이런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내 마음이 포근하면 눅눅한 비도 포근하게 느껴지는구나! 하는 생각 말이죠. 불교 경전 가운데 하나인 화엄경에 보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이죠. 다시 말해 다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요즘은 이런 말이 잘 통하지 않죠? 마치 정신승리처럼 호도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것이 틀리지 않은 말이라는 것을 인생을 살아보면 느끼는 것은 저뿐일까요? 아무튼 오늘도 내 안의 따스함으로 세상을 녹이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오늘은 어제와 같은 본문으로 다시 묵상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제 '스스로 삼가서'라는 말씀을 나눴죠? 이번에는 그다음 구절입니다. 이것도 어제처럼 구문 분석을 통해 묵상을 나눠보죠.
'우리가'라는 말에서 우리는 누구일까요? 아마도 여기서 '우리'는 초대 기독교의 길을 닦았던 제자들이나 사도들을 비롯한 복음의 일꾼들을 가르치는 거죠. 거기에는 사도 요한도 포함되었을 겁니다. 그들이 했던 일들을 우리는 사도행전 등의 성경을 통해 알고 있죠. 이를 사도 요한은 '수고'라고 표현했습니다. '수고'의 뜻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애를 쓴다는 의미로 우리는 알고 있죠. 여기에는 어려움이라는 감정도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어요. 사도들이 힘들게 일했다는 뜻으로, 그리고 어떤 성취에 대한 일로서의 수고를 뜻하는 것으로 말이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는 뜻으로 해석하기 쉽죠. 게다가 이 말이 다음에 등장하는 열매와 결합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결실에 대한 의미로 수고와 노력을 했다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이 '수고'라는 단어는 조금 강조된 측면이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에 보면 이 단어는, 단순히 '일하다', '어떤 일에 종사하다'는 뜻을 가진 [에르가조마이]가 사용되었죠. 개역성경에는 이 구절을 '일한 것을'이라는 심플한 번역을 해 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수고'라는 단어는 뭔가 강조된 느낌을 받게 되죠. 그렇다면 왜 새 번역은 그렇게 번역했던 것일까요? 그 내면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유추는 가능합니다. 이 [에르가조마이]라는 단어가 타동사로 쓰일 때는 '창조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단어는 신약성경 전반에 고루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모두 일반적인 '일하다'는 의미로 쓰이죠. 생계를 위해 일하는 대부분이 이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사도 요한도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죠. 그런데 사도 요한의 사용법은 조금 다릅니다. 이 단어를 일반적인 해석이 아닌 자신만의 특별한 해석을 담아서 쓰고 있죠. 가령,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요. 이때 일하다는 뜻의 단어가 [에르가조마이]죠. 또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이런 구절도 나와요.
요한복음 9:4, '우리는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곧 온다.'
이때 '일'이라는 부분도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일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부분에서 이 단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죠. 이것이 일반적인 '일'과는 다른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라는 겁니다.
설명이 좀 복잡했죠? 쉽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사도들의 일은 우리가 아는 어떤 자리나 명예를 얻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세계를 주님 발 앞에 꿇리는 일도 아니었고, 종교적 통일을 이루는 일이 아니었어요. 그들이 한 일은 이 땅에서 주님의 마음을 창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분의 생각을 품는 일이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일이었어요. 하나님의 생기를 온전히 호흡하는 일이고, 주님의 의를 기뻐하는 일이었죠. 초대교회 교인들이 기뻐서 자신의 것을 나누고, 이웃을 사랑하듯이, 바울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담장밖을 넘었듯이, 내 안에 주님의 생각으로 채우는 일, 내 몸에 주님의 호흡을 담는 일, 내 입술에 주님의 좋은 말을 선포하고, 내 마음에 주님이 행하실 꿈을 꾸는 일이 그 일이었죠.
나무는 열매를 맺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그저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려고만 할 뿐입니다. 더 깊이 뿌리를 내릴수록 나무는 더 높이 자랍니다. 더 깊이 뿌리를 내릴수록 열매는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뿌리만을 생각하는 나무에게 하늘은 열매를 허락하죠.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오직 주님께 뿌리는 두는 자에게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 깊이 속한 자는 원하지 않아도 열매가 맺는 법이죠.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주님께 뿌리를 내리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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