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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한이서묵상일기

요한이서묵상일기 04 - 우리는 끝이 좋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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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서 1:4   그대의 자녀 가운데 우리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명절 연휴를 잘 보내고 계시죠? 여러분의 명절이 웃음과 평화가 넘치는 은혜의 시간들이기를 빕니다.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는데요. 요한이서의 수신자가 믿음의 자매와 그의 자녀라는 사실을 1절에서 밝힌 바 있죠. 오늘 본문은 그 자녀들을 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부분에서 조금의 예측과 상상력으로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는데요. 사도 요한이 편지를 보내고자 한 이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그 믿음의 자매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자녀들이 어떤 인물들인지 알려진 바는 없죠. 그래서 여러 가지 예측이 등장하는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들이 어떤 특정 인물이라기보다는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은 이들, 그 가운데는 또 그들의 증거로 인해서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혈연적인 자녀라기보다 복음의 자녀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훨씬 크다는 거죠. 거기에 자녀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아직 초신자로서 연약한 믿음을 가진 이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런 예측은 우리의 묵상에 그리 중요한 초점은 아니죠. 그럼에도 이런 예측 혹은 문학적 해석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 문장에서 어떤 아픔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읽을 때 가슴을 찌르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는 저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음을 먼저 말씀드리고요. 그 느낌으로 인해 오늘 본문을 묵상함에 지나친 편향이 있을 수도 있음을 주의드리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묵상을 강행하는 이유는 이 아침에 제게 주신 메시지를 그대로 전하고 싶기 때문임을 밝혀드립니다.

 

먼저 제 눈에 띈 부분은 '그대의 자녀 가운데'라는 말입니다. 이미 1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 서신의 수신자로 믿음의 자매와 자녀들을 지목한 바 있죠.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자녀들 가운데'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다수의 자녀들 중에 일부를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들을 축복합니다. 진리 안에 살면서 계명을 지키는 이들을 보며 기뻤다고 하죠. 그렇다면 그 다른 일부는 어디 갔을까요? 제가 예측한 자녀들의 의미가 초대교회에서 새로이 주님을 영접하고 믿음의 자녀가 된 이들이라면 그렇게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 가운데 그 일부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이어지는 본문은 진리를 품고 살아가는 믿음의 가족들을 보면서 기뻐하는 사도 요한의 모습을 그립니다. 이미 진리를 품은 이들이 풍기는 사랑의 향기를 말씀드린 적이 있기에 그들의 모습을 본 이들은 아마도 모두 그런 기쁨을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이 문장은 평화롭기까지 한 문장이죠.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아픔을 전제로 이 구절을 읽노라면 이전에 이 구절을 읽을 때와는 확연한 차이가 느껴지죠. 남아있는 자들, 수많은 거짓 유혹과 세상의 흐름에도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진리 가운데 서 있는 자들의 처절함이 느껴집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귀에는 거대한 스피커들이 많습니다. 그럴듯한 논리와 현실적인 문제들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꿈보다는 현실을, 믿음보다는 이기심을, 연역한 선보다는 강한 악을 선택하라는 요구들이 빗발치죠. 사도 요한이 이 서신을 쓰던 현실이 그랬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판을 치고 보이지 않는 믿음보다는 보이는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이 초대교회를 뒤집어 놓고 있었죠. 그런 문제는 초대교회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조바심을 일으키는 공격들은 계속되고, 기초부터 쌓아 올리는 인내보다 일확천금에 더 열을 올리게 하죠. 진리를 통한 사랑보다는 눈속임과 이미지만으로 권력을 얻으려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주님의 말씀 아래 거하며, 여전히 주일을 지키고, 여전히 그분의 이끄심을 믿으며 꿈을 놓치지 않는 우리를 하나님은 무엇보다 기뻐하십니다. 수많은 속임수 가운데서도 주님의 진리를 붙잡고 오늘도 소망의 빛을 바라보며 고난과 역경을 담담하게 헤쳐나가는 우리들을 누구보다도 사랑하시죠. 그리고 그 사랑은, 광야가 가나안으로 바뀌듯, 십자가가 부활로 거듭나듯 우리의 삶을 반드시 하늘의 결실로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끝이 좋은 인생을 살아야 하죠. 

 

모든 사람들이 잘 되기를 바라죠. 그런데 가장 좋은 것은 끝이 좋아야 합니다. 마지막이 좋아야 하죠. 우리의 인생 종착역이 가장 밝고 기쁘고 좋아야 합니다. 점점 강해지는 유혹들을 물리치고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에만 급급하는 세태 속에서도 주님의 사랑과 이끄심을 믿고 흔들림 없이 걷는 우리의 미래는 주님이 책임지실 것임을 저는 믿습니다. 그곳에 주님의 기쁨이 있고, 주님의 시선이 머무시기 때문이죠. 그곳에 주님의 마음이 있고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은 믿음의 여정을 걷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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