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서 1:9 지나치게 나가서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한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모시고 있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그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다 모시고 있는 사람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주일에도, 어제도 비가 내렸습니다. 지난주에 비는 눈이 섞인 겨울비 같았는데 이번주 비는 마치 봄비처럼 느껴지네요. 아직 쌀쌀함은 남아있지만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다는 듯 향긋한 봄내음을 풍기는 비가 촉촉하게 마음을 적시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몇 차례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마지막 겨울의 앙탈이 남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대세는 이미 기울었죠. 우리도 가는 길에 여러 방해가 있을 수는 있어요. 그러나 진리를 향한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나를 향한 사랑을 멈추게 할 수는 없죠. 그러니 안심하시고 믿음으로 오늘도 밝은 미소로 시작하세요.
사도 요한은 계속해서 이단의 가르침에 대해 경계하라는 경고의 말씀을 적고 있습니다. 그만큼 초대교회의 흔들림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반증이겠죠.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거짓 교사들에게 속고, 거짓 가르침에 넘어가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나가서'라고 표현하고 있는 점이죠. 이 말은, 반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지나치게 많아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뜻처럼 들립니다. 마치 너무 믿음에 심취해서, 혹은 너무 교리를 강조하다 보니 생기는 일이라는 것이죠.
이 대목에서 저는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의 이야기 하나가 생각이 났어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기 시작한 사람이 있었답니다. 가슴 벅찬 은혜와 감동이 그를 사로잡으며 연일 기쁘고 감사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죠. 보통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흥분과 기쁨으로 채워지죠. 보통 그렇게 일정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삶의 자리로 돌아와 벅찬 흥분감보다 삶에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단계로 변합니다. 그 책의 주인공도 그런 시간에 접어들었죠. 그런데 잠을 자려고 할 때마다 어디선가 그런 속삭임이 있더라는 겁니다.
'네가 잘 시간이 어디 있어? 성경을 읽어야지.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좋지 않니? 네가 믿음의 사람이라면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더 깊이 깨달아야지. 일어나 어서! 잠자는 시간도 아깝지 않니?'
사탄의 전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치밀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발목을 잡거나 우리를 가지 못하게 만드는 전략을 쓰지 않죠. 오히려 믿음이 굳건한 이들을 방해하는 방법으로 그들은 더욱 등을 떠미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마치 '너 잘한다 잘한다' 부추기면 오버하다 넘어지는 게 하는 전략이죠.
성경을 읽는 일은 좋은 일이죠. 교회에 봉사하고 남을 돕고, 헌신하는 일은 잘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하다가 상처받고 넘어지고 힘에 겨워 지칩니다. 뭔가 잘못된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믿음의 사람들이 지나친 편협이 있음에 가슴 아플 때가 많습니다. 이상하리만큼 신앙이나 믿음을 중요시하는 사람일수록 반대가 많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적이 많습니다. 이런 것은 틀렸고 저런 것은 안 되고, 이것도 문제, 저것도 문제, 트집 잡고 반대하고 거부하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서로 자기 교리가 맞고 주장이 맞다고 싸우고 힘 겨루기를 하는 경우들이 많죠. 신기하기도 사랑의 주님 이름으로 싸우고 척을 집니다. 긍휼과 자비, 용서와 용납의 주님 이름으로 정죄하고 미워하고 터부와 차별을 하죠. 이게 주님을 몰라서가 아니라 주님을 강조하려다 생기는 일이죠. 지나치게 나가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쩌면 매한가지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사도 요한은 주님의 가르침에 머물라고 말하죠. 주님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맥락상 이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미 1절부터 사도 요한은 '진리'라는 말을 사용하여 우리가 진리를 품기를 권면하고 부탁한 바 있죠. 이제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 공동체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수많은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멋진 말로 진리를 설명할 수 있지만 그 핵심은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진리죠. 그러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고, 그러기 위해 우리를 가르치시며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다릴 줄 알고 인내할 수 있죠. 고난의 시간에도 우리의 꿈은 진리에 있고, 힘겨운 걸음을 걸을지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거죠. 자녀들이 성장할 때 넘어지기도 하고 병마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힘든 사춘기도 보내죠. 그러나 자식을 포기하는 부모는 없어요. 정상적인 부모라면 말이죠. 왜냐하면 자식이 잘 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중간에서 평가를 끝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실 일이 아직 남아 있음을 알기 때문이죠. 그분이 반드시 옳고 바른 길로, 좋고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전쟁도 그치고, 아픔도 치유되며, 문제도 해결될 것을 알기에 오늘도 밝은 얼굴로 이웃을 대하고 자녀를 대하며 또한 나를 대하는 겁니다. 이게 이웃 사랑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근본이죠.
때론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때론 틀렸다 싶은 일들도 주변에 있죠. 그런데 우리는 압니다. 그 모든 일 가운데 주님이 계시고 역사하심을 말이죠. 그래서 걱정하지 않아요. 그저 내가 지금 해야 할 일만 할 뿐입니다. 내가 평가자가 아니고 내가 심판자가 아니니 우리는 누군가를 정죄하고 무언가를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다만 내게 맡겨진 일을 가지고 오직 사랑과 이해와 인내와 기대로 나아갈 뿐이죠.
그러니 기쁨을 잃지 마세요. 누군가를 평가하면서 내 즐거움을 빼앗기지 마세요. 누군가를 정죄하고 판단하면서 마음 상하는 일을 하지 마세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오늘 내 마음을 즐겁고 기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것이 믿음을 지키는 일이니까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뿌리를 내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지에 열매를 맺게 하실 거예요.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하면 나의 능력이 되시는 주님께서 나와 내 주변의 문제들을 변화시키시고 해결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결코 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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