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21:3~6 다윗이 기브온 사람에게 물었다. "내가 당신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소? 내가 무엇으로 보상을 하여야, 주님의 소유인 이 백성에게 복을 빌어 주시겠소?" 기브온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사울이나 그의 집안과 우리 사이의 갈등은 은이나 금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다윗이 그들에게 물었다. "그러면 당신들의 요구가 무엇이오? 내가 들어주겠소." 그들이 왕에게 말하였다. "사울은 우리를 학살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영토 안에서는, 우리가 어느 곳에서도 살아 남지 못하도록, 우리를 몰살시키려고 계획한 사람입니다. 그의 자손 가운데서 남자 일곱 명을 우리에게 넘겨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택하신 왕 사울이 살던 기브아에서, 우리가 주님 앞에서 그들을 나무에 매달겠습니다." 왕이 약속하였다. "내가 그들을 넘겨주겠소."
3년간 이어진 흉년의 이유를 다윗은 찾았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무고한 생명을 죽인 사울의 피의 대가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 것이죠. 가나안 정복 당시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위세에 압도되었던 것 같아요. 그들의 진격에 자신들이 상대가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마치 자신들은 가나안 지역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속이고 이스라엘에 투항한 것이죠. 여기에는 기브온 사람들의 지혜도 동원됩니다. 여호수아서에 보면 그들이 이스라엘을 무서워했던 이유를 스스로 밝히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들은 이렇게 말하죠.
여호수아서9:24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그렇게 속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주 하나님이 그의 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이 참으로 사실임을 우리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뭐가 두려웠겠습니까? 그들에 무슨 군사적으로 강력했겠어요? 그냥 오합지졸이었죠. 오랜 여행으로 피곤에 쩔고 지쳐있는 이들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렇다 할 거대한 전쟁도 치르지 않았습니다. 여리고성은 그냥 행진만 했을 뿐이고요. 심지어 아이성은 한 주먹 거리도 되지 않는 쉬운 상대였는데도 패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무서웠을까요? 이것이 지난 주일 말씀드린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고 어디서나 당당했던 그 자존감이 그들을 보는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고 두려워하고 도와주고 베풀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던 거죠. 저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뭘 잘해서도 아니고요. 뭔가 훌륭해서도 아닙니다. 어떤 고난에도 의연하고 어떤 실패에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그 안에 주님이 함께 하시고, 그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실 것이며, 언제나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임을 스스로 아는 영적 자존감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그 믿음 하나로도 세상을 다스리는 능력이 나오고, 그 자존감 하나로도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스라엘에 편입된 기브온 사람들을 사울이 죽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사울은 유대인들이 그랬듯 자신들만의 유일성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으로 보여요. 쉽게 말해 일종의 인종차별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방인에 대해서는 극도의 경계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여요. 그런 마음이 자신과 다른 기브온 사람에게 이르렀던 것이죠.
여기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의구심이 떠나지 않죠. 하나님께서는 왜 그때 사울에게 그 죄를 묻지 않으시고 이제 와서 그 피의 대가를 요구하시는 것일까요? 왜 시간이 흘러서 부모 시대의 문제를 자녀 시대가 책임을 느껴야 합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해결의 방법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왜 자식들이 대신 죽어야 합니까? 사람을 죽인 잘못을 사람의 목숨으로 대신하는 피의 복수가 이어지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해결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그런 일이 버젓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럽습니다만 이 또한 고대시대 왕정국가임을 고려하면 이해해 줄만 합니다. 다만 우리는 이렇게 늦은 하나님의 해결방법에 대해서는 의문부호를 지울 수 없어요. 왜냐하면 이것이 사람의 역사 속에서 어떤 해결의 방법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할 수 있어도, 하나님의 원칙은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성경의 난제에 속하죠.
저는 성경의 난제들을 풀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 실력도 없고요. 다만 오늘 아침 떠오르는 생각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문제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가정을 이루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생기죠. 그렇게 믿음이 흐르고 사람이 사람을 만드는 시간들을 보냅니다. 꼭 가정이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마치 스승과 제자가 있듯이 누군가에게 배워서 또 누군가를 가르치는 흐름이 사회를 만들고 역사를 만들죠.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서 길을 내면 또 새로운 세대가 그 길을 걷곤 합니다. 그것이 역사의 흐름이죠. 그런데 가끔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부모가 되어서 자녀를 가르칠 때 나도 하지 못하는 것들을 강요할 때가 있다고 말이죠. 가령 흔한 예로 자녀들에게 공부하라는 소리 많이 하는데 그런 말 하는 부모는 공부를 안 합니다. 자기도 하기 싫은 것을 자녀에게 말하죠. 정직하라고 하고 거짓말하면 못쓴다고 하면서 자신은 뻔뻔하게 거짓말을 밥먹듯이 합니다. 자녀에게 약속한 것들을 쉽게 어기고, 자녀들 보는 앞에서 쉽게 거짓말을 하죠. 자녀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혀를 차며 이런 말을 하죠. '제는 누굴 닮아서 저러냐?' 그게 날 닮은 겁니다. 나의 모습이에요. 내게 배운 것이고, 내가 가르친 것입니다. 그것을 부모가 알지 못할 때가 많아요.
본문은 부모의 잘못을 자녀가 대신 대가를 치르는 과정을 보여주는데요. 이를 다른 시각으로 보면, 부모의 그릇된 가르침이 자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그 잘못의 대가를 자녀들이 지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자녀에게 신앙생활을 강요하기 이전에 내가 신앙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기 이전에 내가 생명을 소중히 생각해야 하죠. 내가 하는 행동, 내가 하는 생각, 내가 하는 모든 육적 영적 일들이 누군가에게 전해집니다.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일들이 다 전해져요. 숨긴 감정조차 다른 이들에게 다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또 나에게 돌아옵니다. 내가 분노를 주면 그 분노가 화가 되어 나에게 돌아옵니다. 내가 차별과 경계, 의심과 불만을 주면 그것이 고스란히 돌아오죠. 그렇게 내 작은 행동이 퍼지고 자라 돌아와요.
자녀들이 게임하는 것이 싫으신가요? 그러면 어떻게 하시나요? 게임하지 말라고 혼내시나요? 그렇게 혼내면 말을 듣습니까? 오히려 아이들의 화가 더 올라오지 않던가요? 부모님이 내는 화를 다시 돌려주지 않던가요? 차라리 게임하지 말라고 다그치지 마세요. 대신 놀아줘 보세요. 그게 보기 싫으시면 그 시간을 아이와 함께 놀아주세요. 그것 할 수 없다면 아무 말하지 마세요. 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좋은 것을 주세요. 내가 받고 싶은 것을 주세요. 내가 되돌려 받고 싶은 일들을 하세요. 감사하단 말을 듣고 싶다면 계속 감사하다는 말을 하시고요. 내가 칭찬을 받고 싶다고 만나는 이들마다 칭찬을 하세요. 사랑받고 싶다며 다른 생각하지 마시고 사랑해 주시고요. 위로를 받고 싶다면 지금 곁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세요. 주는 대로 돌아옵니다. 행하는 대로 받게 되죠. 그것이 영적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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