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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사사기묵상

사사기묵상60 -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머무셔야 합니다. 사사기19:22~30

아~ 엽기적이라는 말이 이런데 사용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 한꺼번에 일어납니다.
본문을 읽노라면 정신이 없을 정도죠.

내용은 이렇습니다.
기브아에 온 레위인은 가까스로 노인의 집에 유숙하게 되죠.
아무도 그를 대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레위인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기브아 사람들이 노인의 집에 찾아와요.
그리고 다짜고짜 레위인을 내놓으라 하죠.
아마도 이 분위기가 심각했던 모양입니다.
이는 레위인을 해코지하려는 것이 틀림없었던 것 같아요.
이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궁금증이 가시기도 전에 노인의 행동은 우리를 더 깊은 궁금증에 빠뜨리죠.
갑자기 레위인 대신 자신의 딸을 내놓겠다고 합니다.
아니 이건 뭔가요?
레위인이 누구길래, 그리고 자신의 딸은 어떤 존재길래 이럴까요?
마치 자신의 딸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태도입니다.
이런 경우가 있을까요?
혹시 여자를 단순한 도구로 생각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충격입니다.

그런데 충격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삼단 콤보로 우리의 의식을 멘붕에 빠뜨리는데요.
노인과 동네 사람들이 입씨름을 하는 사이에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그들에게 내어줍니다.
아니, 이건 또 뭔가요?
지금 아내를 찾아 모시고(?) 가는 길 아닙니까?
그런 것 빼고요.
위험한 상황에 여자를 지켜주지는 못할 망정, 아내를 불구덩이에 던져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한 가지 팩트체크 하나를 하겠습니다.
이 본문이 의외로 많이 회자되는 본문이기 때문이죠.
기브아 사람들이 레위인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과정에서 나오는 말이 중심이죠.
바로, 그와 ‘관계’를 해야겠다는 말입니다.
개역성경에는 ‘상관’이라고 표현되어 있어요.
이것을 ‘동성애’와 관련된 문제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래서 이 본문을 동성애 반대 문제와 결부시키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물론 지금 이스라엘 민족들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저도 이 본문의 묵상 중심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동성애를 즐겼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정신이 아니니까요.
그러나 사실은 사실대로 읽어야 성경을 온전히 읽을 수 있겠죠?
그래서 조금은 과한 성경의 배경을 잠깐 언급할까 합니다.

사사시대는 왕이 없었다고 말씀드렸죠?
이는 좋은 말이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잃은 표현이니까요.
그러나 지도자가 없었음은 분명합니다.
출애굽부터 모세와 여호수아로 이어지던 지도자가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각각 지파별로 살았는데요.
그때 큰 형 노릇을 하던 지파가 있었어요.
그것이 ‘에브라임’ 지파였습니다.
물론 혈연적으로는 큰 형이 될 수 없지만 에브라임은 당시 가장 힘이 셌습니다.
마치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처럼 에브라임도 다른 동맹의 경찰노릇을 했죠.
그러다 보니 다른 지파의 불만들이 많았습니다.
사사들 가운데 에브라임과 갈등을 빗는 장면들을 보신 적 있으시죠?
그때 사사는 비 에브라임 출신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에브라임은 언제나 자신이 지도자 행세를 했던 셈이죠.
그러다 보니 다른 지파 사람들이 에브라임에 좋은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죠.
그러다 베냐민 지파가 점점 에브라임을 대항할 신흥세력으로 등장합니다.
사사시대를 마치고 왕정시대가 시작할 때, 첫 왕인 사울이 베냐민 지파죠.
지난 본문을 보면 기브아 사람들은 베냐민 지파라는 사실을 가로 치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레위인은 공교롭게도 에브라임 출신입니다.
이제 그들이 레위인을 요구한 이유가 좀 이해가 가시나요?
그들은 어쩌면 동성애를 하겠다는 것보다 그를 희롱하고 모욕 주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첩을 내주었을 때 물러갔던 것이죠.
그의 첩을 모욕 주는 것이 그를 모욕 주는 것이라고 여겼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 본문을 굳이 동성애 문제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싶어요.

요즘 가짜 뉴스 많은데요.
우리는 분별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성경도 그렇죠.
사실 가짜 뉴스를 마음먹고 유포하면 그것을 분별할 재간이 없어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능력이 있죠.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그냥 사랑의 눈으로 보세요.
대적하고, 적대하고, 미워하고, 나누고, 편 가르고, 싫은 사람이 안 되기를 바라고 하는 마음에 가짜 뉴스가 싹이 트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죠.
정말 제정신이 아닌 모습들의 연속이죠.
정치적인 경쟁으로 사람을 모욕 주고 죽이려는 마음도,
여자를 마치 물건 다루듯 생각하는 마음도,
하나님이 없는 영혼에게 뿌리내리는 몰상식과 탈인격의 전형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차는 이유는 하나님이 없어서입니다.
우리가 사람과 영혼을 멸시하고 가볍게 여기며, 나만 살면 된다는 마음 또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없어서예요.
우리가 우리 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머무셔야 하고,
그분의 성령의 입김이 우리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영이 여러분과 삶의 자리에 함께 하시는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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