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를 보면 참 신기합니다.
옛말에 애들 앞에서는 냉수도 못 마신다는 말이 있죠.
어느 때는 아이가 인형을 등에 업고 담요로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나타날 때도 있고요.
소꿉놀이 할 때 보면 부모의 말투를 그래도 따라 하는 경우도 허다하죠.
그들은 모방의 천재들이고 따라 하기 대장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의 모방 행동이 본능적으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슨 의도와 생각에서 나온 것인지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생각이나 판단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죠.
교육방송 EBS에서 만 2세 이하의 아이들을 실험한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책상 위에 누르면 불이 들어오는 벨이 놓여 있습니다.
실험자는 아이들 앞에서 그 벨을 이마로 누르는 행동을 반복해서 합니다.
이제 아이들 차례입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아이들이 이 같은 행동을 다 따라 했습니다.
역시 모방의 천재들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상황의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자가 담요를 몸에 둘러 손이 보이지 않게 하고
이마로 벨을 누르는 똑같은 행동을 한 겁니다.
실험자가 몸에 담요를 둘렀다는 것만을 제외하고는 앞서와 다르지 않은 행동입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행동도 같을까요?
놀랍게도 이마로 벨을 누르는 행동을 따라 한 아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그냥 손으로 벨을 눌렀죠.
전혀 다르지 않은 행동인데 왜 아이들의 반응이 달랐을까요?
여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요.
손으로 벨을 눌러도 되는 상황에서 이마로 누르는 실험자를 보며
아이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구나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자기도 이마로 벨을 누른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손을 가리고 이마로 벨을 누리는 행동을 보았을 때는
아이들은 손이 자유롭지 못해서 이마로 벨을 누른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이마로 벨을 눌러야 한다는 의도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이마를 사용한다는 것을 안다는 거죠.
그래서 손이 자유로운 자신은 손을 사용한다는 것이죠.
놀랍지 않습니까?
아이들, 특별히 2세 이하의 아이들인데 그런 것까지 생각한다는 것이 신기하죠?
이어지는 실험에서는 아이들의 행동은 상대방의 마음까지 읽으면서 취하는 행동인가에 대한 실험이었습니다.
아이 앞에서 실험자가 무거운 책을 들고 나타납니다.
그 앞에는 책장이 하나 있는데요.
실험자는 닫힌 책장 문을 열려고 노력합니다.
그때 이를 보는 아이들의 행동을 살펴보는 실험인데요.
실험에 참여한 아이들 모두는 어김없이 책장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18개월 아이가 말이죠.
심리학자들은 아이들에게 상황과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소위 공감 능력인 것이죠.
사람에게는 본래 공감의 능력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누군가의 어려움을 같이 느끼는 감정이 있죠.
저는 하나님께서 심어 놓으셨다고 믿습니다.
그 능력으로 인해 사랑이 꽃피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며 주권자이십니다.
모든 만물이 그분의 소유고, 그분의 심판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분에게 우리의 마음을 읽으시고 공감하시는 형상이 있으시기 때문이죠.
오늘 바울은 데살로니가교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에게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기를,
그리고 그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지기를 위해서 말입니다.
사랑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사랑이 편식하기 시작하면 사랑은 권력이 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의인이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 많고, 말 안 듣고, 이기심과 욕심에 찌든 나까지도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을 가리시지 않았듯
그 사랑의 전달자인 우리도 사랑에 관해서는 사람을 가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사랑에는 진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사랑에는 이해관계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박해하고, 조롱하는 사람들까지도 결국 사랑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나의 사랑은 모든 이들에게 풍성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숙명이고, 은혜이고,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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