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묵상03 | 1:20~21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오래전에 중국 지린성의 조선족자치구인 룽징시에 간 적이 있습니다.
간 이유는 사역 때문이기도 했지만 꼭 보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제가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생가가 있었기 때문이죠.
윤동주시인은 1917년 중국 지린성 룽징시에서 태어나
오늘날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시샤대학교에서 유학을 했죠.
이미 숭실중학교 시절, 시작(詩作)을 했고,
연희전문시절 소년지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했을 때에는 처음에 릿교대학에 입학하였지만
몇 개월만에 도시샤대학으로 옮겼죠.
이유는, 가장 좋아하는 선배이자 친구인 시인 정지용이
그 대학에서 유학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시인 정지용은 우리가 잘 아는 향수의 작가이기도 하죠.
교토시에 위치한 도시샤대학은
13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일본의 최고 명문 사립대학입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정신으로 세워진 대학으로도 유명하죠.
윤동주시인은 이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가
항일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투옥이 되었습니다.
교토재판소에서 2년 징역형을 받고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복역을 하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하며 29년 짧은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저로 하여금 한 편의 시를 생각나게 합니다.
바로, 윤동주시인의 대표적 시 가운데 하나인 서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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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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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1월 20일에 쓰여졌다는 기록을 보면
이 시를 쓸 당시 윤동주의 나이는 24살이었겠죠.
연희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렘1:5,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그런데 그는 그 사명 앞에서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무능과 무력함을 드러내고 말죠.
렘1:6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
그는 길을 잃은 조국을 바라보면서
옳은 길을 인도할 지도자로써의 무능과 무기력에 눈물짓던 선지자였습니다.
렘6:10 제가 말하고 경고한들 누가 제 말을 듣겠습니까? 그들은 귀가 막혀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면 그들은 저를 비웃기만 합니다. 말씀 듣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윤동주에게서 그 눈물을 봅니다.
나라를 잃고 방황하는 조국에
지식인으로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신의 초라함을 고백하는 것이죠.
그는 결코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은 살지는 못했습니다.
창씨개명도 했고, 뚜렷한 항거의 행적도 없습니다.
어쩌면 용기 없는 지식인의 전형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곧 지식인을 세우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길을 제시하고 앞장서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지식인들은 자신의 지식을 사명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지식을 마치 자신의 밥벌이로 사용하죠.
권력에 가장 약한 그룹이 지식인이고,
불의에 가장 부화뇌동하는 그룹이 지식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시대마다, 체제마다, 권력마다 자신의 사명을 바꾸기 일쑤고,
연구한 지식은 권력의 시녀노릇하기 급급하죠.
저는 윤동주의 서시가 그의 신앙고백이라고 믿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시가 아닐까라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주어진 길”, 즉 자신의 사명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하늘에 부끄럽지 않은 삶이라고 고백하는 듯합니다.
저는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고, 사명을 감당한다고 다짐하지만
조금만 태클이 와도, 조금만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나의 마음은 밴댕이소갈딱지같이 쪼그라들기 일쑤고,
조금만 어려움과 고통이 와도,
동굴을 찾기 급급한 속마음이 언제나 부끄럽습니다.
겉으로는 점잖은 척, 담대한 척 여유를 부려도,
속으로는 조변석개하는 두 마음이 언제나 짓누릅니다.
용기없음에, 능력없음에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아름다운 삶은,
뛰어난 용기도, 놀라운 능력도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오직 “나에게 주어진 그 길”을 묵묵히 걷는 것 아닐까 싶어요.
남과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길”,
그 길을 걸음이 은혜이지 않을까요?
감옥에 갇히건, 자신을 누가 이용하건,
또 온갖 작당거리와 왜곡과 유행이 몰아쳐도,
심지어 자신이 살아도 죽어도 그것이 나의 길이라면
모든 것이 유익이라는 바울처럼,
저도 그저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만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는 삶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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