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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사사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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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묵상59 - 나의 생각과 마음을 주님의 채널에 맞추세요. 사사기19:10~21 오늘 본문은 어제의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도 내용은 간단합니다. 장인의 대접에 며칠을 묵었던 레위인은 이제 장인의 권유를 뿌리치고 길을 나서죠. 그러다 해가 저물어 유숙한 곳을 찾았습니다. 때마침 한 노인이 그들을 맞아들이죠. 이 내용을 보면 마음씨 좋은 노인과 레위인의 만남처럼 보입니다. 제목을 붙인다면, 나그네를 돌보는 마음을 가져라 정도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저는 이 본문이 정반대로 들립니다. 이왕 삐딱하게 이 에피소드를 보기로 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이 에피소드를 보는 원칙을 말씀드렸죠? 그 관점에서 보면, 이 이야기가 단순히 나그네 대접하는 마음씨 좋은 노인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나그네를 대접하지 않는 당시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
사사기묵상58 - 그리스도인이 하루를 사는 방법은, 수많은 삶의 우연 속에서 수많은 잔잔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사기19:1~9 사사기의 막바지에 다 달았습니다. 남은 세 장의 본문에는 사사기 마지막 에피소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저는, 남은 구절들을 묵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글로도 대하기 힘들 만큼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일들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도저히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들입니다. 그래서 묵상도 힘들어요. 그러나 이해할 수 없어도, 나의 생각과 달라도 주시는 말씀이 있음을 기대하며 정독하기를 원합니다. 최대한 침착하고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묵상을 시작하죠. 사사기의 마지막 이야기를 읽을 때 저는 몇 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그 첫 번째 원칙은, 1절의 말씀입니다. 1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 때에, 또 등장하죠? 마치 우리에게 지금 벌어지..
사사기묵상57 - 우상숭배는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사사기 18:14-31 단 지파는 전투를 앞두고 미가의 집을 찾아갑니다. 이유가 있죠. 아무래도 이들은 미가의 집에 있는 제사장이 영험하다고 느꼈던 모양입니다. 그의 축복으로 자신들이 거할만한 땅을 발견했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쟁을 앞두고는 다시 찾은 것이겠죠. 이번에는 아예 모든 신상과 우상들, 심지어 제사장까지 데려옵니다. 무력으로 진행된 이 사태에 제사장은 작은 저항을 해 보지만 단 지파의 제안에 금세 수긍하고 말죠. 그 제안이란, 작은 개인의 제사장보다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스카우트 제의인 셈이죠. 마치 작은 교회에 있는 목회자에게 큰 교회 청빙을 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제사장이 그 제안을 바로 받아들인다는 점이죠. 불의한 방법의 탈취임에도 그 제안에 마음이 녹아, 한 패거..
사사기묵상56 -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더니… 사사기 18:1-13 오늘 본문은 단 지파가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은 조금 설명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성경을 읽을 때 그리 재능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글을 읽을 줄 안다면 성경을 이해하는 데는 크게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성경을 오독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것은 지식이나 이해의 차원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글이 어렵거나 고차원적인 방정식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죠. 성경을 읽는 우리를 괴롭히는 오독은 오히려 우리 안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성경을 읽느냐는 것이죠.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인생을 사는데 필요한 설명서쯤으로 이해해 보죠. 설명서라는 것이 주로 어떤 제품을 잘 사용하도록 돕는 것이죠. 거기에는 어떻게 사용해야 고장을 일으키지 않고 잘 사용할 수 있는지가 적..
사사기묵상55 - 온전한 신앙이란, 내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사사기 17:7-13 사사기 17장부터는 사사 없는 사사기를 읽게 됩니다. 얼마나 뒤죽박죽의 영성을 가지고 있는지 미가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들려주죠. 오늘은 특별히 레위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레위인이란 큰 의미에서 목회자를 뜻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유다 지파의 땅 베들레헴에서 온 레위인이라고 되어있는데요. 보통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각자의 땅을 분배받았죠. 그런데 레위인은 땅을 분배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각 지파의 땅에 흩어서 살아야 했죠.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율법을 가르치는 역할을 하며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영적인 기준을 세우며 인도하는 지도자로 세워진 것이죠. 대신 땅을 분배받은 각 지파는 레위인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레위인이 있을 곳을 찾아 에브라임 땅까지..
사사기묵상54 - 내가 말씀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만지게 하세요. 사사기 17:1-6 지난주까지 12명의 사사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아직 사사기의 기록은 끝나지 않았어요. 사사기 17~21장까지는 사사 없는 사사기가 이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사사가 없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죠. 그 이야기 가운데 첫 번째 이야기가 미가 이야기입니다. 오늘 등장하는 미가는 선지자 미가와는 다른 인물이니 주의하시고요. 오늘 이야기를 간단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미가는 집에서 돈을 훔칩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어머니는 온갖 저주를 품었던 모양입니다. 이에 겁을 먹은 미가는 자신의 도둑 행위를 고백하고 가져간 돈을 토해내죠. 엄마의 저주에 겁을 먹을 정도임을 가만하면 얼마나 심한 말들이었는지 짐작이 가시죠? 범인이 아들임을 알게 된 엄마는 놀라서 뱉어낸 저주를 주어 담으려고 하죠. 그런..
사사기묵상53 - 머리가 자라듯, 회복할 기회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사사기 16:23~31 오늘 본문은 삼손의 최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전의 반전이라고 해야 하나요? 정말 드라마틱한 이야기 전개가 펼쳐지죠. 삼손은 머리털이 잘리고 모든 능력을 잃은 후,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블레셋의 조롱거리가 되죠. 그들은 삼손의 두 눈을 뽑고, 감옥에서 연자 맷돌을 돌리게 했습니다. 연자 맷돌이란, 주로 당나귀가 돌리는 맷돌인데요. 그를 나귀 취급했다고나 할까요? 굴욕적인 모습을 만방에 보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참 재미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왜 그의 눈을 뽑았을까요? 물론 눈이 보이지 않으면 힘도 못 쓸 테니까 그렇겠죠? 그러나 다른 의미로 보면 삼손의 눈은 자신의 능력을 잃게 만드는 기초였습니다. 안목의 정욕이라고 말씀드렸죠? 그의 실수는 늘 눈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까요. 연자 맷돌을 돌리는..
사사기묵상52 - 반복될수록 죄는 나의 영적 감각을 잃게 만듭니다. 사사기 16:4~22 어제 묵상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삼손의 행동들을 보았습니다. 오늘도 이해 못할 일들은 계속되네요.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어제 본문에서 이해 못할 것이 삼손의 행동이었다면, 오늘은 삼손의 정신상태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삼손의 이야기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삼손과 들릴라의 사랑이야기라고 해야 하나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죠. 그런데 사실 자세히 읽어보면 이 이야기가 사랑이야기가 맞나 싶어요. 내용인즉슨, 삼손이 또 여인에게 빠집니다. 이쯤 되면 습관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네요. 삼손이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들릴라가 삼손을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녀가 삼손에게 한 일은 그저 그의 힘의 원천이 어디인가를 알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