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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49 - 내가 예배되고, 내가 교회 될 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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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2:42~45   예수가 열두 살이 되는 해에도, 그들은 절기 관습을 따라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그런데 그들이 절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의 부모는 이것을 모르고,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생각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 뒤에 비로소 그들의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그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찾아다녔다.


좋은 아침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월요일, 밝은 마음으로 하루를 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12살이 되셨습니다. 유년기에 이어 예수님의 소년기를 소개하는 복음서는 누가복음이 유일하죠. 12살이 되던 해에도 예수님의 가족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이는 매년 빠지지 않고 유월절을 지켰다는 의미죠. 이미 자녀를 위한 부모의 교육은 오직 지속적이고 규칙적인 신앙생활, 더 나아가 늘 감사와 기쁨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묵상한 바 있죠. 

 

그런데 오늘 본문은 좀 이상합니다. 예루살렘에 갔던 예수님의 가족은 그만 예수님을 잃고 말죠. 마치 유원지나 거리에서 아이를 잃은 부주의한 부모처럼 묘사가 됩니다. 이게 얼마나 황당한 일이냐면 글쎄 하룻길을 가도록 자녀가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대가족이라 할지라도 이건 좀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게다가 찾는데만 3일이 걸렸습니다. 이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죠. 

 

제가 궁금한 것은 이런 기록을 왜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누가는 부모의 부주의에 대한 책망을 하고 싶었을까요? 사실 그런 의도가 아니라면 굳이 이런 기록을 이렇게 상세히 쓸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물론 이로 인해서 예수께서 12살의 어린 나이에도 성전에서 랍비들과 토론을 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연출을 위해 이렇게 상세히 부모의 황당한 실수를 부각할 이유는 없어 보이죠. 의도가 있지 않고서는 말이죠. 사실 이 말씀을 그냥 '그렇구나'하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자세한 기록이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이 기록을 적어 놓았을까요? 그리고 그 의도는 무엇일까요? 또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뚜렷한 단서가 등장하지도 않죠. 제가 아는 한 어떤 주석가도 여기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궁금한 것을 참을 수는 없잖아요? 말씀을 읽다가 마음에 걸리고 눈에 밟힌다는 것은 그 말씀이 나에게 말을 걸어 온다라고 저는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여러 차례 읽었습니다. 어떤 생각 없이 그저 가볍게 말씀을 반복해서 읽었어요. 그러느라 오늘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렴풋하게 제게 주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전적으로 저 개인에게 주신 생각을 나눕니다. 아마도 누가는 이걸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다고 말이죠. 그 구체적인 말씀은 이어 나오는 본문에서 묵상하기로 하죠. 아마도 무언가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표현을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오는 발걸음과 성전에 거하는 예수의 차이처럼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똑같은 일을 해도 그 내면에는 전혀 다른 관점이 자리하죠. 말씀을 읽지만 지금까지 내 생각대로 하는 이들이 있고, 말씀을 내 가슴에 새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곳으로 존재하는 이들이 있고, 자신의 가슴에 교회를 세우는 이들이 있어요.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기념하는 이들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직접 유월절이 되셨죠. 주님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그분의 놀라운 능력을 노래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주님을 따라 직접 그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걸으며, 부활의 능력으로 살기를 소망하는 이들은 적습니다. 불의한 사회를 보며 많은 사람이 욕을 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 불의에 대항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촛불을 드는 이들은 적습니다. 삐뚤어진 가치관을 보며 비판과 비난을 하면서도 내가 온전한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데는 소홀히 합니다.

 

세상은 단번에 바뀌지 않습니다.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뀌죠. 바라보는 데만 그치지 않고 참여할 때, 꿈만 꾸지 않고 행동할 때, 생각만 하지 않고 움직이고, 예배만 하지 않고 내가 예배가 될 때, 비둘기나 양으로 제물을 드리지 않고 내가 제물이 될 때, 그때 세상이 바뀝니다. 그때 하늘이 열리고, 그때 천지가 개벽하죠. 그렇게 내가 예배되고, 내가 교회 될 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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