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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미가서묵상

미가서묵상일기 22 - 시련을 창조적 파괴로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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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 4:9~11   어찌하여 너는 그렇게 큰소리로 우느냐? 왕이 없기 때문이냐? 어찌하여 너는 아이를 낳는 여인처럼 진통하느냐? 자문관들이 죽었기 때문이냐? 도성 시온아, 이제 네가 이 도성을 떠나서, 빈 들로 가서 살아야 할 것이니, 아이를 낳는 여인처럼, 몸부림치면서 신음하여라. 너는 바빌론으로 가야 할 것이다. 거기에서 주님께서 너를 건지시고, 너의 원수에게서 너를 속량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많은 민족이 연합하여 너를 칠 것이다. 그들은 이르기를 "시온은 망해야 한다. 이제 곧 우리는 이 도성이 폐허가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시간들에는 수많은 일들이 있겠죠? 기쁘고 고맙고 행복한 일들뿐 아니라 마음을 긁고 평안을 깨뜨리며 부화가 치밀게 하는 일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 일들이 안 생기는 날은 없습니다. 나의 평안을 방해하는 악한 영들의 활동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그래서 오늘이 더 기대되는지도 모릅니다. 몰려오는 도전들을 어떻게 이겨낼지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시작하기 때문이죠. 이런 배포가 이 아침에 우리의 믿음으로 거듭나 자리하길 빕니다. 불의를 정의로 바꾸듯 아픔을 감사로, 분노를 웃음으로 대응하며 결과를 바꾸는 능력이 오늘도 우리 삶에 흐르길 기도합니다.

 

위로의 말씀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늘 본문에서는 아픈 예언이 등장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본토가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가야 하는 미래가 제시되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임하는지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렇게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나라 잃은 백성으로 머나먼 타국에서 노예생활을 시작하게 되죠. 그 기간은 70년 동안 이어지죠. 혼란과 전후 과정을 다 합하면 100년을 훌쩍 넘기고도 남는 시간입니다. 결코 위로가 되지 못하는, 아니 위로가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예언이죠.

 

그러나 이 말씀이 또한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모든 과정을 미리 알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지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가 절망하고 낙담하는 이유는 원인과 결과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할 때 우리는 답답하죠. 그리고 어떻게 될지, 그 미래와 결과를 모르기에 절망하고 쉽게 포기합니다. 그러나 미가 선지자는 그 이유와 결과를 분명히 우리에게 알려주죠. 이 심판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 시련의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결과 또한 알려줍니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녀를 훈육할 때 결코 그 결과가 훈육이나 체벌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들이 정색하고 혼을 내는 이유는 자녀가 미워서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 훈육의 결과는 사랑입니다. 분노의 결과 역시 사랑이죠. 그를 안다면 우리는 낙담하거나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와 기쁨일지도 몰라요. 

 

하나님의 심판이 그렇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를 버리시는 것도 아니고 우리를 저 무저갱의 어둠 속에 던져버리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다시 오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끝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시련은 더 귀히 나를 만드시기 위한 과정이 되는 것이죠.

 

창조적인 파괴라는 말이 있습니다. 파괴는 다 부수는 거죠. 그런데 그것이 창조라는 말과 연결되는 것이 의아스럽습니다. 창조란 새롭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존의 것을 부셔야 한다는 점입니다. 옛 것을 버려야 새것이 되는 법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죠. 그래서 파괴는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오늘 나의 아픔은 창조적인 파괴입니다. 아픈 만큼 성숙한 나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오늘 시련은 새로운 나를 위한 파괴입니다. 더 멋지고 근사한 나로 이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를 아는 우리는 오늘의 시련을 감사로 승화시키는 거룩한 사람들이죠. 오늘의 파괴가 파괴로 끝나면 상처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파괴를 창조의 시작으로 만들면 거기에는 우리가 상상 못 할 새로움이 임할 거예요. 그것을 기대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시련을 창조적 파괴로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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