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2:18-25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복되고 기쁜 소식을 여러분께 전합니다.
그분의 오심이 깨지고 상한 우리 마음과 삶에 평화로 임하시기를 빕니다.
이사야서 42장은 이 땅에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보좌를 버리고 낮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자신의 몸으로 몸소 실현하셨고요.
우리의 삶의 모델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런 예수 그리스도와 대비되는 우리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 말이죠.
오늘 본문에는, 이렇게 대비되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관통하는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종’이라는 신분입니다.
약간의 우스갯소리인데요.
우리나라처럼 건축에 있어서 설계도를 잘 따르지 않는 나라가 없답니다.
보통 설계도면이 나오고, 그것을 현장에서 전문가들이 그대로 실현해서 집을 짓죠.
그런데 현장에서 사람들이 설계도와는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허다하답니다.
‘이것은 이렇게 해도 돼!’
‘이것은 현장에 안 맞아.. 내 경험상 이렇게 해도 괜찮아!’
이렇게 자체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이래서 10미리 철근을 쓸 것을 5미리 철근만 쓰고, 시멘트 10센티미터 바를 것을 5센티만 바르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
유독 우리는 모든 일에 자신이 주인이 되고자 합니다.
종이라는 말만 들어도 숨이 막혀 하죠.
마치 종은 못 살아서, 가치 없어서 하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언젠가 꼭 주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꿈처럼 자리 잡고 있죠.
그러나 종의 삶이 얼마나 자유하고 기쁜지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하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광야가 고난이고, 벗어나야 할 삶으로 여기지만 정작 생각해 보면 광야만큼 좋고 자유로운 시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 주시니까요.
먹을 것도, 가는 길도 주님이 다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죠.
그런데 우리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우리의 죄가 시작한 그때를 기억해 보세요.
그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살지 못해서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다시 말하면 자신이 종에서 주인이 되고자 한 그때가 죄의 시작이었던 셈이죠.
종이 귀가 먹고, 눈이 먼 이유는 무엇일까요?
종이 듣기는 들어도 딴생각을 하고, 보기는 보아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들은 대로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종이지만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기 때문이죠.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의 모습을 보면, 주님이 주인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든지 해석은 스스로 내리려고 합니다.
힘든 것은 적당히 하려고 하고, 이로워 보이는 것은 과하게 더 하려고 합니다.
조금만 자리를 주면 마치 자신이 주인인 양 권력을 휘두르고요.
조금만 권리를 주면 마치 자신이 왕인 양 심판과 정죄를 일삼죠.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종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권리, 그의 자리, 그의 생각, 그의 뜻을 다 접고,
오직 나보다 크시고, 나보다 높으신 그분의 생각에 자신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주인이 되려는 꿈을 버리고, 이제 하나님의 종이 되려는 시도에서 출발하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종에게는 결정권이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괴로움은 내가 주인 되려고 하는 데서 발생하죠.
내가 내 삶의 주인이어서 이렇게 되어야 하고, 저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 결정들이 남과의 비교의식을 갖게 하고, 자신의 자부심과 연결시키죠.
그러나 종의 삶은 주인이 결정합니다.
그분이 이 길을 가라고 하면 이 길을 가고, 저 길을 가라시면 저 길을 갑니다.
남이 어떤 길을 가든 상관이 없고, 내가 어떤 길을 가든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바로 나에게는 가장 적절하고 필요한 길이니까요.
오늘 성탄절은 주님께서 종이 되시기로 결정하신 날입니다.
우리도 종이 되기로 결정하시면 좋겠습니다.
가정의 종이 되기로 결정하면 종처럼 부려지는 것이 오히려 기쁨이 되죠.
주인이 되고자 하니까 싫은 소리 듣기 싫고, 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교회에서 종이 되기로 결정하면 내가 힘든 일을 다 해도 오히려 행복합니다.
그것이 종의 권리이고, 의무이니까요.
그러나 내가 주인이 되고자 하면 내가 일해야 할 것보다, 함께 일하지 않는 사람들만 보입니다.
그리고 불평하고 투정하면서 나의 일도 잊고 놓쳐 버리죠.
그렇게 우리는 종의 삶을 부정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의 종들인 우리가 진짜 종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인 되려고 하는 인생에 필요한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주인 되고, 하나님이 종이 되는 현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가 주인 되려는 시도 때문에 말씀이 왜곡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 되려는 시도 때문에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이죠.
오늘 성탄의 이 아침, 종으로 오신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다시 한번 하나님의 종임을 고백합시다.
그분을 내 삶의, 내 생애의, 내 인격의 주님이라고 고백합시다.
내 길의 모든 결정권과 주도권은 그분에게 있다고 고백합시다.
내 삶의 결과와 현재 자리 또한 그분의 인도하심임을 선포합시다.
그리고 만족하십시다.
그때, 주님의 음성을 온전히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왜 이 자리가 필요한지, 왜 여기까지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지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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