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2:1-9 부드럽게 밀려오는 작은 소리에 반응하는 삶을 사세요.
우리가 잘하는 말 가운데 ‘나를 나답게’라는 말이 있죠.
나를 정말 나답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이런 말로 많이 합니다.
“네가 하고 싶은 것,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해”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오늘 일었다 내일 지는 그런 일은 아닐 테지요.
금세 피었다 금세 지는 그런 생각은 아닐 겁니다.
아마도 내가 평생을 걸어도 아깝지 않은 그런 일이길 바라지요.
우리는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다양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직업을 가졌지만, 근본 하는 일은 하나죠.
이미 말씀드린 바가 있지만, 우리의 모든 직업은 누군가를 돕는 일이죠.
교사의 삶, 의사의 삶, 환경미화원의 삶, 일용근로자의 삶…
각자의 직업을 가진 그들의 삶은 천태만상이지만,
결국 그들의 하는 일은 누군가를 돕는 일이죠.
선생님은 학생들을 돕고요.
거리를 청소하는 분들은 거리를 걷는 모든 이들을 돕죠.
제각각의 삶을 살지만 근본적인 결과는 같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인 우리 또한 제각각의 삶을 살죠.
어떤 이는 이렇게, 어떤 이는 저렇게, 어쩌면 그리도 다를까요?
큰 교회, 작은 교회, 이런 직분, 저런 직분, 비전과 추구하는 가치들이 다 다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서 있는 삶은 달라도 하는 일은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택하신 종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사야서 40장 이후는 구원하실 하나님의 손길이 적혀 있다고 말씀드렸죠?
오늘 말씀하실 하나님의 종은 우리를 구원하실 분에 대한 예언이죠.
자연스레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사야는 이를 설명하면서 그가 하실 사역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바로 정의죠.
그렇다면 정의란 무엇일까요?
아마도 정의란, 우리가 가장 우리답게 사는 상태일 것입니다.
가장 나답게 살게 하는 그것이 정의일 거예요.
죄로 인해 왜곡된 가치관, 오랜 노예 생활로 메마른 영성이 바로 서는 때,
그때가 정의가 이루어지는 때죠.
뿌연 안개에 눈이 가리고,
화려한 조명발에 시선을 빼앗겨 길을 잃은 우리를
본 모습으로 돌이키는 것이 정의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하신 일은
우리의 본 모습을 찾게 하신 것입니다.
죄로부터의 해방, 왜곡된 가치관의 재정립, 삶의 이유 등이죠.
그런데 그런 정의가 물리적인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목소리를 높이거나 소리치지 않는다고 하시죠.
언제 꺾일지도 모를 상한 갈대조차 흔들리지 않도록
권력이나 힘을 동원한 구현이 아니라는 말씀을 분명히 하십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는 너무도 조용히 오셨고,
너무나도 조용히 가셨습니다.
한때 제자들은 그의 능력으로 왕국을 뒤집을 줄 알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허망하다 싶을 만큼 조용하셨습니다.
우리는 뭐가 센 것을 맞아야 정신을 차리죠.
누군가 억지로, 강제로 나를 말려야 멈추기도 합니다.
때론 벌을 받고 심판을 받아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도 하죠.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는 그렇게 임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정의는 산들바람처럼 임하고,
그의 정의는 부드러운 솜처럼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군가 강제로, 힘으로, 권력으로 누르는 것에 반응하는 삶을 살지 마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늘 억압과 압제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부드럽게 밀려오는 작은 소리에 반응하는 삶을 사세요.
조용한 속삭임에 반응하는 삶 말입니다.
내 속마음의 조용한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삶 말이죠.
외부의 강한 외침에 반응하는 삶은 늦은 삶입니다.
이미 다른 이들도 다 알아버린 죄를 버리는 것은 늦습니다.
내 안에 작은 회개의 외침을 들을 줄 알아야 하죠.
기억하세요.
주님의 오심은 무척 작은 소리입니다.
가장 낮은 자리, 결코 머무시지 않을 것 같은 작은 마구간에 오신 것처럼
주님의 음성은 너무도 작고 부드럽게 임하십니다.
그 음성에 반응할 줄 알아야 내게 정의가 이루어지죠.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깁니다.
온유가 불같은 분노를 이기고요.
오랜 시간이 순간의 시간을 이깁니다.
한순간의 초능력은 오랜 시간 만들어온 능력을 이기지 못하죠.
요동치기 전에,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
작은 목소리에 반응하세요.
마치 소자에게 냉수 한그릇 대접하는 것처럼 말이죠.
모든 사람이 알만한 거대한 사역보다,
아무도 모르지만, 내 눈에만 보이는 자그만 사역에 반응하세요.
하나님의 정의는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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