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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이사야서묵상

오늘도 주님의 약속을 나의 삶으로 만드는 하루이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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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1:17-29 오늘도 주님의 약속을 나의 삶으로 만드는 하루이길 빕니다.

이사야서는 66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난주, 이사야서 묵상을 시작할 때,
이사야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39장까지가 1부이고, 40장부터는 2부가 됩니다.
이 두 부분은 저자마저 다르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구분됩니다.
1부가 심판에 대한 말씀이라면 2부는 구원에 관한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참 재미있게도, 이사야의 66장은 성경의 66권과 일치하죠.
게다가 39장까지가 마치 구약의 39권처럼 보이고요.
나머지 40~66장까지는 신약의 27권처럼 보이죠.

그래서 우리가 읽고 있는 2부는 구원에 관한 예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변 열강에 의해 점령당할 것이 예언되고,
또한 그 압제로부터 반드시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는 마치 죄로 인해 점령당한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원할 예언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사야 40장 이후의 말씀은 장차 올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예언은 보통 미리 정해지고 결정된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죠.
그러니까 운명처럼 정해진 미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예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언이라는 말의 한자어는 미리 예(豫)자를 사용하죠.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예언이라는 단어를 한자 사전에 찾아보면, 두 가지 단어로 표기 됩니다.
豫言과 預言이죠.
둘 다 같은 뜻으로 사용됩니다.
앞의 예(豫)는 미리 말씀드린 미리 ‘예’자이고요.
뒤의 예(預)도 미리 ‘예’입니다.
다만 뒤의 예(預)는 한 가지 뜻이 더 있는데, 맡기다는 뜻이 그것입니다.

같은 뜻의 글자이지만 사용법을 보면 확연히 구분됩니다.
미리 예(豫)자는 ‘예정’, ‘예산’ 등의 단어에 쓰이죠.
미리 정해진 것들입니다.
맡길 예(預)자는 ‘예금’이라는 말에 쓰이죠.
이것은 나의 돈을 맡겨 두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언은 미리 예(豫)에 해당하는 의미라면,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맡길 예(預)자에 해당하는 의미가 됩니다.
예언자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 ‘나비’는,
미리 정해진 시간과 상황을 예언하는 자가 아니라
우리가 이루어가야 할 미래에 대해 선포하는 자를 뜻합니다.
그래서 예언자라고도 하고 선지자라고도 말하죠.
선지자란, 사전적 의미로 ‘남보다 먼저 깨달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고도 하셨습니다.
메마른 땅에 물을 내시고,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에 길을 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연약한 우리에게 살 힘을 주시고,
낙망하여 쓰러진 우리의 무릎을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힘이 되는 약속의 말씀이죠.
그러나 그 약속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죠.
그 약속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정해진 미래처럼 내가 가만히 있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맡겨둔 말씀이어야 합니다.
마치 맡겨둔 예금처럼 우리가 기억하고 사용해야 되는 것들이죠.
그래서 우리는 그 약속을 바라보며 걸어야 합니다.

말하는 대로 된다고 하죠.
그것은 그 말을 내가 맡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던지고 그 말대로 걸어가기 때문이죠.
예언은 그런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이 내 것이 되려면,
오늘도 그 약속을 기억하고 그 약속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금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해가 뜨고, 하루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오늘도 내가 눈을 뜨기에 하루가 됩니다.
오늘도 내가 주님의 마음으로 살기에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죠.
오늘도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살아내야 주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약속을 나의 삶으로 만드는 하루이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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