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2:1-13 차별의 문제는 편견을 버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
이 유명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사울 왕이 주님으로부터 떠나자 하나님은 새로운 왕을 세우도록 사무엘에게 말씀하시죠.
사무엘은 새로운 왕을 찾아 이새의 집으로 갑니다.
그의 집에 갔을 때 이새의 아들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그중에 첫째 아들인 엘리압을 보는 순간, 그가 왕이 될 사람임을 직감했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압은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를 가졌기 때문이죠.
소위 왕의 기품이 흘렀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는 단순한 외모의 문제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제 착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사람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이 바뀌어도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렇게 사람이 바뀔 것이라는 예상 자체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험이 아니라 일상이라면 그럴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사람들의 뇌리에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죠.
그것을 편견이라고 하는데요.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싶어 하는 대로 생각합니다.
이미 '이렇다'라고 결론을 짓고 시작하는 거죠.
이런 결론은 자신이 겪은 많은 경험치와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적, 사회적인 고정관념으로 기인합니다.
이런 편견이 우리의 착각을 불러일으키죠.
사무엘은 엘리압의 외모를 보기도 전에 그가 장자임을 먼저 생각했을 것입니다.
유대의 오랜 전통은 계승자는 장자라는 원리가 작용합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이새의 집에서 왕을 세우신다고 하셨다면,
그것은 장자일 것이라는 편견이 판단의 중요한 도구가 되죠.
어쩌면 장자였기에 더 외모가 훌륭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나의 편견으로 그 외모를 더 멋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르죠.
사무엘에 그런 착각을 하고 계실 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서두에 적은 말씀,
하나님은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을 하시죠.
아마도 이 사건은 하나님의 의도가 깔린 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무엘이 누구입니까?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역대 선지자 가운데 가장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읽는 사람 중의 하나죠.
그런데 그런 사무엘조차도 사람을 판단하는데 외모가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선지자라고 해서 편견과 착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뜻도 되고요.
우리들 또한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편견과 착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뜻도 됩니다.
미국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죠수아 벨은
클래식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미국에서는 아이돌급 인기 스타입니다.
그의 연주회는 늘 성황을 이루고, 가장 빠른 시간에 예매가 끝나죠.
연주도 잘 하지만 잘 생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 죠수아 벨이 특별한 실험을 하나 했는데요.
평범한 의상에 야구모자를 쓰고 지하철역에서 연주회를 한 것입니다.
이 실험에 앞서 죠수아 벨은 혹시 지하철역이 인파로 인해 교통이 마비될까를 염려했데요.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그가 40여분동안 6곡의 명곡들을
몇 억짜리 악기로 연주하는 동안 그에게 잠깐 관심을 가지며 음악을 들어 준 사람은 6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낸 팁은 합쳐서 30달러 정도였죠.
미국인들의 음악적 소양이나 듣는 귀가 어두워서가 아닙니다.
미국인들의 문화 감수성이 낮아서도 아니에요.
유명한 사람이, 세계적인 사람이 이 곳에서 연주할리가 없다는 편견이
그들의 음악소리조차도 초라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같은 음악소리도 편견은 다른 소리를 만들죠.
옳은 소리도 미운 사람이 하면 고깝게 들리고요.
차별의 문제는 편견을 버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배운 사람이 더 인격적일 것이라는 편견,
못 배운 사람은 덜 인격적일 것이라는 편견,
잘 생긴 사람은 마음도 따뜻할 것이라는 편견,
못 생긴 사람은 마음이 삐뚤어져 있을 것이라는 편견,
돈이 있는 사람은 그래도 나을 것이라는 편견,
가난한 사람은 덜 된 사람이라는 편견...
하나님이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시는 것은,
그분에게는 편견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어제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생명 이외에는 어떤 편견도 가지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떤 반응이든, 어떤 짜증이든, 어떤 울음이든,
갓 태어난 내 자식은 사랑스러운 것과 같이 말입니다.
어떻게 생겼든, 어떤 모양이든,
그냥 생명 주신 것에 감사하듯이 말이죠.
생명 앞에서는 편견을 버리세요.
편견을 버리는 것은 물론 위험하기도 합니다.
편견이라는 데이터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니까요.
그러나 그 위험을 주님께 맡기고 생명 앞에서 편견을 버릴 때
주님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것이 사랑이니까요.
오늘도 만나는 사람들 많으시겠죠?
어제의 그 사람을 버리시고, 오늘 새로운 사람으로 만나보세요.
오늘도 똑같은 직장에 가시겠죠?
어제의 그 직장을 버리고, 오늘 새로운 직장으로 삼아 보세요.
그래야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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