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19-27 제아무리 깊은 사랑도 표현해야 사랑입니다.
교육방송에서 한 가지 실험을 했는데요.
실험이 좀 황당합니다.
길거리에서 지나 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습니다.
그때 준비한 스텝들이 커다란 간판을 들고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가죠.
간판이 지나간 사이에 두 사람은 간판에 가려 서로를 보지 못합니다.
그 순간, 간판 뒤에서 길을 묻던 사람을 바꿉니다.
이렇게 사람이 바뀌었을 때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아볼까?에 대한 실험이에요.
이해하셨어요?
바로 앞에서 길을 묻던 사람이 순식간에 바뀌었는데 여러분은 그 사실을 알아보실 수 있으실까요?
당연히 알아보신다고요?
그렇죠.
얼굴과 목소리, 신체적 조건이 다른데 못 알아볼 수가 없겠죠?
그런데 실험의 결과는 여러분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습니다.
길거리에서 10명 중 9명은 상대방이 바뀐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바뀐 이후에도 계속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20대 청년에서 50대 아저씨로 바뀌어도 알아보지 못했고요.
심지어 남자에서 여자, 여자에서 남자로 바뀌어도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는 길거리라서 번잡하고 분주해 그런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또 다른 실험을 했는데요.
이번엔 병원입니다.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왔을 때 의사를 대면하죠.
환자가 문진표를 작성할 때 의사는 일부러 볼펜을 떨어뜨리고요.
그것을 줍는 척하면서 책상 아래 숨어있던 다른 의사와 자리를 바꿉니다.
그러면 환자가 알아볼까요?
당연히 길거리와는 다른 조용하고 둘 뿐인 환경이기에 단번에 알아보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실험에서도 결과는 길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한 환자 앞에서 여러번 바뀌어도,
심지어는 세 명의 의사가 번갈아 바뀌어도 환자는 알아보지 못했어요.
실험 대상자들이 좀 멍청한 듯 싶으신가요?
이 실험은 인간의 착각에 대한 실험이었는데요.
사람들이 그렇게 앞의 사람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멍청해서가 아니라
지금 자신에게 묻고 있는 사람이 바뀔 것이라는 가능성을 전혀 염두해 두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착각이라고 하죠.
1990년대 초에 미국 LA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났었는데요.
이 일로 많은 한인들이 피해를 보았습니다.
한인들과 흑인들 사이의 격한 갈등이 야기되었죠.
이 폭동의 시작은 '착각' 때문이었습니다.
한인이 운영하는 마켓에 흑인 여성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음료수를 들어 자신의 가방에 넣었고요.
그것을 주인은 CCTV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단번에 도둑이라는 것을 알았죠.
이전에도 이 가게는 늘 흑인들에 의한 피해를 보곤 했습니다.
그 흑인 여성이 카운터에 왔을 때 주인은 가방을 움켜잡았습니다.
갑자기 가방을 가지고 실랑이가 벌어졌죠.
그런 와중에 흑인 여성은 주먹으로 가게 주인을 때렸습니다.
가게 주인은 쓰러졌고, 그 순간 그 흑인 여성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몰려왔죠.
그래서 늘 준비해 두었던 권총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서 가는 그 흑인여성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죠.
그 흑인여성은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음료수는 카운터 계산대에 놓여있는 상태였습니다.
사실은 그 흑인여성은 음료수를 계산하기 위해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는데요.
주인은 그가 가방에 넣은 것을 보고는 도둑으로 의심한 나머지
그런 행동을 보지 못했던 것이죠.
그렇게 가게 주인은 살인죄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재판의 결과는 무죄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착각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었다는 이유에서였죠.
이 재판의 결과는 흑인들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격분한 흑인들은 LA의 한인가게들을 찾아다니며 불을 질렀죠.
이 사건의 중심에 '인간의 착각'이 자리 잡고 있죠.
많은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착각에 대한 연구를 하는데요.
연구자마다 여러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이 하나같이 인정하는 진리와 같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큰 착각은 자신이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이라는 것이죠.
말이 어렵지만 그냥 인간은 착각을 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오늘 야고보는 그 착각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저는 거울을 자주 보는 편이 아닙니다.
남자들이 보통 거울을 자주 보지는 않죠.
그런데 거울을 보는 이유가 대부분
'얼굴에 뭐가 묻지는 않았을까?' '머리모양은 괜찮나?'하는 매무새 때문이잖습니까?
그렇게 거울을 보면서 단정한 매무새를 하죠.
그런데 여기서 착각이 있다는 거죠.
거울을 보기는 했는데요.
그래서 자신의 얼굴에 뭐가 묻었고, 옷매무새가 흐트러졌다는 것을 알았는데요.
바꾸지 않았어요.
그리고는 자신은 거울을 보았기 때문에 다 고쳤다고 느낀다는 겁니다.
말씀을 들었다는 것이 곧 내가 행동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했다는 것이 곧 기도했다는 것도 아니고요.
마음 먹었다는 것이 곧 실천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은 나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여야 말씀이고요.
나의 이상은 삶에서 적용되어야 살아있는 꿈이 됩니다.
마음을 먹었으면 그것을 실현해야 인격이 되는 것이죠.
신앙은 착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영성은 착각으로 성숙되지도 않아요.
제아무리 고결한 생각이어도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아무리 거룩한 신앙이어도 그것이 내 손과 발로 드러나지 않으면 거룩이 아니죠.
제아무리 깊은 사랑도 표현해야 사랑입니다.
고결하고 높은 경지의 생각보다, 작은 실천이 실력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실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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