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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여호수아서묵상일기 109 - 고난 더할수록 기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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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 24:7b~10   너희가 광야에서 오랫동안 지낸 뒤에, 나는 너희를 요단 강 동쪽에 살고 있는 아모리 사람들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그때에 그들이 너희에게 대항하여 싸웠으나,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었으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하였다. 나는 그들을 너희가 보는 앞에서 멸망시켰다. 그때에 모압의 십볼의 아들 발락 왕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싸웠다. 발락은 사람을 보내어 브올의 아들 발람을 불러다가, 너희를 저주하려 하였다. 그러나 내가 발람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발람이 오히려 너희를 축복하였고, 나는 너희를 발락의 손에서 구출해 주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은 날이 좋고 해가 맑아서 좋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죠. 그런 상황과 환경과는 상관없죠. 오로지 좋은 아침은 내 마음과 생각이 만드는 거죠. 내가 오늘을 좋은 날 삼기로 작정하는 겁니다.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러나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지든 나는 기쁠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오늘 기뻐하기로 작정했으니까요. 믿음은 그렇게 작정하는 거죠. 오늘도 나의 오늘을 기쁨으로 작정하며 출발하자고요.

 

이스라엘은 오랜 광야의 생활 끝에 가나안에 당도합니다. 가까운 길을 버리고 돌고 돌아서 왕의 대로를 따라 요단강 동쪽으로부터 가나안으로 진격하죠. 그렇게 마주한 곳이 여리고인데요. 그 요단 강을 건너기 전의 땅이 바로 아모리 족속의 영토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이끌던 모세는 아모리의 왕 시혼에게 이스라엘이 아모리 땅을 지나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부탁하였으나 아모리 왕 시혼은 이스라엘을 두려워한 나머지 허락하지 않고 오히려 군사를 일으켜 전쟁에 나서죠. 오늘 본문은 그 전쟁으로 아모리를 물리치고 가나안에 들어갔던 일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방해를 받을 수는 있어도 그 계획을 꺾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죠. 우리가 올해 외치는 구호가 있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그 좋은 길로 걷는 여전에 방해와 훼방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어떤 일로 가로막히고, 어떤 문제로 지체되기도 하죠. 그러나 그런 방해에도, 그런 지체에도, 하나님의 계획을 결코 막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문제도 그분이 행하실 일을 꺾을 수 없고, 어떤 세력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어요. 가나안의 정복은 이런 영적 현실을 눈으로 보여주는 과정입니다. 

 

오늘 본문은 한 가지 사실을 더 언급하는데요. 모압 왕 발락과 선지자 발람의 이야기죠. 이는 민수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역사의 한 대목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모리 땅이 순식간에 이스라엘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목격한 이웃땅 모압은 자신도 그런 꼴이 될까 봐 두려움에 빠지죠. 그래서 계략을 꾸미는데요. 전쟁이나 군사적 작전으로는 이스라엘을 이기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래서 당대 꽤 이름이 나 있던 선지자, 그러니까 조금 더 정확히는 점술가인 발람을 먼 시리아 지방에서 불러오죠. 그리고 그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마치 우리가 사극과 같은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것이 있죠. 누군가의 모형을 만들어 주문과 함께 계속 침으로 찌르는 저주의식처럼 발람에게 이스라엘의 저주를 부탁하죠. 물론 발람은 몇 차례 그 부탁을 거절하지만 많은 돈을 주며 회유하는 발락의 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저주의식을 허락합니다.

 

그렇게 모압으로 가려고 나귀에 탄 발람에게 뜻밖의 일이 벌어지는데요. 나귀가 말을 한 것이죠. 동화에나 나올 일이 벌어진 겁니다. 주의 천사가 그들의 길을 막았는데 그것을 본 나귀가 땅에 주저앉자 발람은 나귀를 때리죠. 주의 천사를 나귀도 보는데 발람이 못 보는 겁니다. 그러자 나귀가 발람을 꾸짖는 말을 하죠. 이는 마치 우리가 찬양을 하지 않으면 돌들이 일어나 찬양을 할 것이라는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말 못 하는 자연이 보고 소리칠 수 있다는 거죠. 이런 놀라운 일로 인해 발람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고 맙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주시는 메시지를 듣습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방해들이 있죠. 내가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훼방하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집니다. 나의 길을 가는데 태클을 거는 경우들이 있어요. 때론 나의 교만과 불신앙이 그 훼방의 중심이 될 때도 있죠. 그래서 우리는 넘어지기도 하고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좌절을 맛보기도 하고 아픔을 당하기도 하죠. 그래서 온통 내 앞에는 저주가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아침에 이전엔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고난은 그저 지나가는 과거로만 여겼습니다. 고난이 거치고 새날이 오는 줄 알았죠. 아픔이 없어져야 기쁨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고난이나 아픔, 어려움이나 고통은 그저 재수 없이 당하는 쓸모없는 시간 취급을 한 겁니다. 그래서 그런 고난은 없으면 좋겠다 싶었던 거죠. 되도록 고난은 적게, 되도록 아픔은 가벼이 넘기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고난이 오히려 영광이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물론 그런 말은 많이 들었죠. 나의 아픔은 주님의 영광이고, 나의 고난은 단련된 인격이라고요. 그런데 그게 말이 그랬지 실제로는 고난과 영광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고난이 사라져야 영광이 오는 줄 알았죠. 그런데 고난이 곧 영광되고, 슬픔이 곧 기쁨의 시작이라는 생각은 못해 본 것 같더라고요.

 

하나님은 우리를 저주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듯 저주 또한 축복으로 바꾸시죠. 하나님의 사람인 나는 누군가의 저주,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는 이들의 공격에 떨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저주와 공격, 아픔과 상처를 기뻐해요. 왜냐하면 그런 온갖 억측과 오해, 공격과 저주를 은혜와 축복으로 바꾸시는 주님이 계시니까요. 우리의 좋은 생각과 상상은 캄캄한 현실에서도 결국 빛을 발견하고 따르기 때문이죠. 어두울 때 빛이 더욱 빛나는 법입니다. 그러니 고난 더할수록 기뻐하세요. 그 고난은 고스란히 축복이 될 테니까요. 싸움 치열할수록 더욱 기뻐하세요. 그 싸움은 반드시 승리의 기쁨을 가져다줄 것이니까요. 오늘도 그렇게 모든 것을 기뻐하기로 작정하고 출발하는 아침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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