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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빌레몬서묵상

사랑하기 때문에...

빌레몬서 1:1-7 사랑하기 때문에...

신약성서는 27권으로 되어있는데요.
그중,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복음서로,
사도행전은 역사서로,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예언서로 구분됩니다.
그 외, 21권은 편지들로 서신서라고 하죠.
저자에 대한 많은 논란이 아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로마서에서부터 빌레몬서까지 13권을
바울이 썼다고 해서 바울서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8권은 일반서신이라고 부르죠.

바울서신도 크게 3가지로 구분하는데요.
교리에 관해 쓴 편지는 교리서신이라고 하고,
목회 지도자들에게 쓴 편지는 목회서신이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 쓴 편지도 있는데요.
그것을 옥중서신이라고 하죠.
오늘 본문은 빌레몬서는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서와 함께
옥중서신에 속하는 편지입니다.

위 사실들을 특별히 외우거나 꼭 알아둘 필요는 없습니다.
마치 이런 용어들을 잘 알아야
믿음 있고, 신앙 있는 것 같은 착각은 하지 마세요.
이런 구분들은 성경을 읽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신학자들이 정해놓은 것인데요.
이런 구분이 진리도 아니고, 논쟁도 많습니다.
비단 바울의 서신만도 13개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바울이 이것은 목회서신, 이것은 옥중서신 하고 구분하면서
쓰지도 않았고요.
이런 신학적 구분들보다 우리는
그 메시지 안에 들어있는 주님의 숨결을 읽는데 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문자에 대한 이해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문자는 수많은 방향에서, 방법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죠.
똑같은 문자를 읽고도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똑같은 말을 듣고도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죠.
진짜 문자를 이해하려면,
진짜 말씀을 이해하려면,
주님의 마음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그분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로,
또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우리를 대하시는지를
이해해야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제 설교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해석이 다 다를 것이고요.
저를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또 다를 것입니다.
비판을 하자면 한정이 없을 것입니다.
어제 묵상만 해도 남녀를 가르는 차별적 묵상이라고
비판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요.
어떤 분들은 제게 인본주의적이라고 공격할지도 모릅니다.
영적인 세계보다 이 땅, 이 지역을 위한 생각을
더 많이 드러낸다고 여기시면 말이죠.

그렇습니다.
저는 이 땅의 변화, 이 땅에서의 할 일에 더 집중하죠.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언어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언어를 안다면 그것은
이 땅에서 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뜻 아닙니까?
영어를 배우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영어를 써먹기 위해 배우지 않겠습니까?
영어로 말하고, 읽고, 쓰기 위함이죠.
영어를 배우고, 머리에만 둘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언어를 배워서
머리에만 두려고 합니다.
자신의 하늘의 언어가 고급진 것을 기뻐하고요.
자신만 알아듣는 언어에 멈추어 있으면 되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하늘의 언어를 이 땅에 통역해 내는 것입니다.
세상의 언어를 세상에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를 세상에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언어를 세상의 언어로 말하고,
하늘의 가치를 세상의 가치에 심는 것입니다.

아마도 제가 어떤 마음으로 설교를 준비하는지,
제가 어떤 태도로 삶을 사는지 알지 못하면
설교로는 이해가 다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정반대로 은혜 받을지도 모르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이고요.
그 마음을 알려고요.
그래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분이 나의 창조주시며, 온전한 아버지라는 것을요.

오늘부터 읽는 빌레몬서는 짧습니다.
1장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내용도 간단합니다.
빌레몬이라는 사람의 집에 종으로 있던 오네시모가
주인의 집에서 돈을 훔쳐 도망쳤습니다.
당시 종이 주인의 집에서 도망했다는 것은 사형에 속하는 중범죄였습니다.
그런데 도망친 것뿐만 아니라 다른 죄를 지어
감옥에까지 갑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 감옥에서 바울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되죠.

마침 바울은 빌레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골로새교회에서 함께 사역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오네시모의 편에 편지를 한 장 보내죠.
도망친 종을 용서하고 받아주라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빌레몬서의 내용이죠.

그런데 이 짧은 빌레몬서는
그 분량에 걸맞지 않는 엄청난 파괴력이 있는 서신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느끼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당시의 상황과 현장을 잘 모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번 우리의 상황과 걸맞게 각색을 해 보겠습니다.
바울이, 아니 ‘주님께서’로 하죠.
주님께서 우리에게 편지를 하나 보내십니다.
우리 가게에서 알바를 하던 친구가 돈을 떼먹고 도주했습니다.
그 때문에 엄청난 충격과 타격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 친구를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단순한 용서도 아닙니다.
이제 알바도, 고용인도 아닌 친구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용서만 하지 말고 사랑까지 하라는 것이죠.

이 각색도 그리 적절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종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 당시 법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었거든요.
종을 친구 삼는다는 것 또한 그 당시 사회질서를 흔드는 일이었습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예수를 믿어서 그랬다고 생각합니다만
예수 믿는다고 뭐가 문제가 됩니까?
로마황제가 아닌 예수님을 믿어서 핍박 있었다고 하는 분도 계신데
초대교회는 로마인들에게만 핍박을 받지 않았습니다.
가장 많이 핍박한 이들은 동족이었던 유대인들이었어요.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초대교회가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종들을 풀어주고, 종이 아닌 친구로 대했습니다.
원수처럼 여기는 이방인들에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이 사랑은 유대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것이 핍박의 근거가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초대교회는 유대인의 관습을 깨뜨렸습니다.
사회적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오늘부터 3일간 우리가 빌레몬이 되어 보십시다.
그리고 바울의 편지를 읽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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