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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야고보서묵상

낮아짐을 자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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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2] 낮아짐을 자랑하십시오.


야고보서1:9~11,    

9    비천한 신도는 자기가 높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십시오.

10   부자는 자기가 낮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십시오. 부자는 풀의 꽃과 같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해가 떠서 뜨거운 열을 뿜으면,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져서, 그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집니다. 이와 같이, 부자도 자기 일에 골몰하는 동안에 시들어 버립니다.

 



1.

오늘은 주현절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2015년 사순절은 여러분에게 십자가와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시길 빕니다.


2.

얼마 전 유명 PD가 만든 여행에 관한 예능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이후로 여행에 대한 붐들이 일었죠.

여행에 관심이 없는 제게도 그 풍경들은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각종 매체에서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하는 여행지에 관한 내용들을 쏟아내 가뜩이나 삶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3.

한번은 세계에서 가볼만한 휴양지를 소개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거기서 터어키의 [파묵칼레]라는 곳을 소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기도 한 이곳은 유명한 온천지이기도 합니다.

더 기막힌 것은 온천의 광천수와 공기가 만나서 고드름 같은 하얀 석회봉과 석회층을 만들어서 성벽을 이룬 것 같은 장관이죠.

이곳은 성경에도 등장하는 곳입니다.

골로새서에 나와있는 히에라볼리가 바로 이곳입니다.  

우리에게는 관광지보다 전도자 빌립집사가 순교한 곳으로 더 유명하죠. 


4.

지금은 그저 작은 도시에 불과한 이곳 히에라폴리스는 예전에는 대도시였습니다.

대지진이 있기 전까지 비잔틴문, 로마목욕탕, 원형경기장과 신전들이 가득찼던 곳이죠.

이곳을 소개하는 이유는 온천이나 관광명소 때문은 아닙니다.

이곳에 그보다 더 유명한 곳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네크로폴리스]라고 일컬어지는 공동묘지입니다.

성스러운 도시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묻히고 싶어 했습니다.

도시는 폐허가 되었지만 지금도 이 공동묘지에는 천여개의 석관과 비석들이 남아있죠.

저는 이곳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이곳을 아는 이유는 이 공동묘지에 적혀있다는 문구 때문입니다.

“나 어제 너와 같았으나, 너 내일 나와 같으리라”


5.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1:22~23,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6.

기적은 참으로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것입니다.

기적을 통해서 우리는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습니다.

병이 고쳐지는 기적, 죽었다가 살아나는 기적들은 감명이 깊습니다.

지혜로운 것이 드러나면 참 보기 좋습니다.

누군가 합격하고, 누군가 만점을 받으면 아름다워 보이죠.

지적 능력이 드러날 때 멋져 보입니다.

그것이 유대인과 헬라인의 수준이죠.


7.

그에 비해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전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십자가라는 것이 지금은 악세사리로 쓰일만큼 평범하지만 실제 십자가는 형틀입니다.

어떤 분이 그런 말을 하시더군요.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은, 목에 단두대를 걸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요. 

단두대 아시죠?

단두대 모양을 여러분은 목에 걸고 다니실 수 있으시겠어요?

이것만 보더라도 십자가를 우리가 얼마나 낭만적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노예나 죄수가 걸리는 형틀입니다.

심지어 중동문화에서 나무에 달린다는 것은 저주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신으로부터 저주받은 자들이나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십자가를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입장에서는 미련해 보이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왕관을 쓰고, 천군천사를 대동한 강한 예수님으로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아들, 만군의 주로 오신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8.

요즘은 스마트 시대라고 해서 전자기기들을 많이 사용합니다.

개인전화기의 보급으로 일인 1 전화기 시대에 살죠.

편지나 전보대신 이메일을 사용하죠.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오는 분들도 거의 없습니다.

자동차와 지하철을 이용하여 이동합니다.

이런 시대에 마차를 타거나 걸어 다니고, 편지나 전보를 쓴다면 무슨 소리 들을까요?


9.

여러분이 목에 매고 있는 십자가가 나는 죄인이라는 주홍글씨라면 어떨까요?

“나는 억울한 죄를 뒤집어써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겠습니다.”라는 표현이면요? 

여러분이 붙이고 다니는 교회스티커가 “당신이 나를 함부로 하셔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표현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교인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나도 예수님처럼 당신을 위해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라는 표현이라면 여러분은 어떠세요? 

여러분은 지금 그만한 무게를 가지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까?

 

10.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이런 차이입니다.

유대인이 찾고 자랑하는 것은 기적이고, 

헬라인이 찾고 자랑하는 것은 지혜인데,

그리스도인이 찾고 자랑하는 것은 십자가라는 차이 말입니다.

이것을 현대적인 의미로 바꾼다면 아마도 이런 말이 될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일확천금을 얻고, 개천에서 용나서 벼락부자나 유명인이 되는 것을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가진 것마저도 나누고 베풀어서 더 가난해지는 삶을 사는 것이 기적이다.”라구요.

“세상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판사, 검사, 의사가 되는 것이 지혜이지만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 지혜다.”라구요.


11.

바울의 고린도인들을 향한 메시지는 2천년이 지난 지금,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대적 그리스도인처럼, 헬라적 그리스도인처럼 사는 삶이 지배합니다.

모양은 그리스도인 같으나 내용은 세상인에 진배없는 모습입니다.


12.

서두에 공동묘지 네크로폴리스에 대해 말씀드렸죠?

그곳에는 아직도 천여개의 석관들이 있다는데요.

그런데 그 관들의 뚜껑이 다 열려져 있답니다.

모두 도굴되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묻히고 싶었던 곳에 묻혔는데 시간이 지나고는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근사한 무덤을 원하죠.

그런데 여러분은 10대 조상의 묘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10대는 고사하고 고조부의 묘지가 어딘지는 아세요?

100년, 아니 수십년이 지나면 그 무덤은 소용도 없는 것이 되어 버리죠.

유대인이 무엇을 구하든,

헬라인이 무엇을 찾기에 갈급해 있든,

숨이 끊어지면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재물이나 명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여러분이 중요시하는 가족의 행복도, 사랑도, 죽으면 끝입니다.

그것들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죠.

천국에서 다시 만나지 못하면 끝입니다.


13.

아마 여러분도 또한 이렇게 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나 어제 너와 같이 돈도 명예도 중요하고, 가문과 가정의 행복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살았으나, 너 내일 아무 것도 손에 갖지 못하고 이 자리에 선 나와 같으리라”

 

14.

홍수로 인해 모든 인류가 멸망한 후 구원받은 사람은 노아의 가족뿐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십니까?

창5:32    노아는 오백 살이 지나서,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

보통 당시 성경은 100세를 전후하여 자식을 낳은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500살이 넘어서야 자식을 낳았습니다.

자식은 부의 상징이고, 축복의 산물입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당대에 뒤처져도 한참을 뒤쳐진 사람이죠.

다른 사람들이 귀한 게 여기던 것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하나님과 동행을 택했습니다.

구원은 우리가 지금 쫓고 있는 것으로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15.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부유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를 부자의 전형으로 보는 데는 동의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이 되니까 부자가 되었더라’는 말을 대비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6.

지난 수요일에도 말씀드렸는데요.

예수 믿으면 축복받고, 부자 되고, 잘 풀리고 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런 교회를 선호하고 또 차고 넘친다고 합니다.

지난 지상파 뉴스에 1년에 수천만원을 의류비로 쓰는 백화점 VIP 고객인 목사의 집질 횡포가 가슴 저리게 다가왔습니다.

어제는 기독교 신문에서 이런 기사도 보았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당신도 억대연봉과 벤츠를 타고 다닐 수 있다고 써 붙인 교회 이야기 말입니다.


17.

어떤 이는 예수님이 축복하시면 그럴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단호히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는 사람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순순히 그들을 편안하게 살게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 괴롭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처럼 말입니다.


18.

왜 우리는 이렇게 이단에 농락을 당하는 것일까요?

자신의 책을 읽으면 천재작가가 될 수 있고, 자신의 강의를 들으면 벤츠를 타게 될 것이라는 허경영급 목사가 버젓이 서울 한 복판에서 목회를 할 수 있을까요?

왜 우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질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자립도 없고, 세상에 나가 싸울 힘도 없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의 요구들을 구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19.

그들이 부자의 전형으로 말하는 아브라함이 과연 그 부로 구원받았을까요?

아브라함이 86세가 될 때까지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때, 사라가 자신의 몸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자고 제안했습니다.

몸종 하갈을 통해 자식을 얻는 방법은 부를 통해 얻는 것입니다.

부를 가지고 몸종을 사서 거기서부터 자식을 얻은 것이죠.

그러나 성경은 하갈의 몸을 통해 낳은 자식 이스마엘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스마엘은 불의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오직 그분의 약속을 기다리는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지금 쫓고 있는 것으로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20.

모세는 어떻습니까?

당대 최고의 가문, 최고의 학벌인 40년에,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걸 잃고, 광야에서 홀로 처가살이 하던 모세에게서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당시 모세에게 있었던 재산이라고는 달랑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

최고의 지성과 언변은 40년간 광야에서 녹슬었습니다.

그야말로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모세는 비로소 진정한 모세가 되었습니다.


21.

가끔 사람들이 수많은 민족가운데 하나님은 왜 히브리인들을 선택하셨냐고 묻습니다.

유럽도, 아시아도 아닌 왜 유대인일까요?

그 질문에 대답을 신명기에서는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신7:7    주님께서 당신들을 사랑하시고 택하신 것은, 당신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수가 더 많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들은 모든 민족 가운데서 수가 가장 적은 민족입니다.  


22.

세상은 높아짐을 자랑하지만 여러분은 낮아짐을 자랑하십시오.

오직 거기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과 낮은 자리와 겸손에 거할 때 우리는 절망을 맛봅니다.

마치 죽을 것 같은 고통과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맛봅니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 만큼 자존심과 기분이 상하고, 억울함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부유를, 사명보다 재물을, 하나님 나라보다 나의 나라를 쫓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진 어려움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23.

가난의 영향력은 그 자체의 어려움보다 가난이 주는 절망감에 있습니다.

포기하게 만드는 절망감 말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가난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빌4:12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비천에도, 풍부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유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통해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은 낮아지면 죽을 것 같은 흐름 가운데서도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셔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당신의 이름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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