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없는경건4] 순전함, 그 경건의 열쇠 2
야고보서3:13~18,
13 여러분 가운데서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한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하여 그의 행실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그 일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14 여러분의 마음속에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마십시오.
15 이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게 속한 것입니다.
16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
17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18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
1.
마태복음은 예수의 생애를 다루는 기록이자 그분의 가르침을 담은 복음서다.
마태복음은 3장까지 공생애 이전의 기록을 다루고 있고,
4장에서는 제자들을 부르신다.
그리고 5장부터 본격적으로 그분의 메시지가 선포된다.
그리고 10장에 이르러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내신다.
마태복음 10장은 이 땅에 파송되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격려사다.
2.
이 격려사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16절의 말씀이다.
마10:16, 너희는 뱀과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진해져라.
3.
이 구절을 대할 때 창세기 3장을 기억하는 이들은 의아하다.
우리는 뱀을 간교하고 간사한 존재로 여긴다.
그런 존재를 빗대어 지혜롭다고 말하는 것은 왠지 좀 거북하다.
우리 뇌리에 뱀은 지혜로운 존재라기보다 간사한 존재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은 요물이다.
그의 혀와 입술은 모두 거짓과 속임으로 가득차 있다.
그런 뱀이 지혜롭다는 구절을 들으면 우리는 간혹 우리도 그렇게 상황에 민감하고, 자기를 위해 거짓과 속임을 통해 성공하는 것이 지혜인 듯 들리기도 한다.
4.
창3:1에서 성경은 뱀을 간교하다고 표현한다.
창3:1, 뱀은, 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서 가장 간교하였다.
5.
“간교하다”라는 부정적인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문은 [아룸]이다.
그야말로 ‘교활하고’, ‘간사하고’, ‘음흉하며’, ‘약삭빠른’의 의미다.
그런데 이 [아룸]이라는 단어는 잠언에도 나온다.
잠12:23, 슬기로운 사람은 지식을 감추어 두어도, 미련한 사람의 마음은 어리석음을 전파한다.
6.
놀랍게도 여기서 ‘슬기롭다’라고 번역된 단어가 바로 [아룸]이다.
그 단어는 경우에 따라 슬기롭기도, 또는 간교하기도 한 단어다.
우리에게 있는 지혜는 본래 이렇다.
똑똑하고, 비상하고, 민첩한 것이 지혜가 아니다.
때론 그것이 간교하고, 간사하고, 약삭빠름이 될 수도 있다.
[아룸]이 [아룸]다워질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머리 회전이 잘 되어도 지혜가 아니다.
오히려 간교한 뱀이 될지도 모른다.
7.
우리들은 제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격려사를 곧잘 곡해한다.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세상사람들과 비견될 똑똑함이 있어야 된다고 느낀다.
민첩하고,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느낀다.
마치 문제가 생기면 유능하게 대처하여 문제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 뱀과 같은 지혜라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의 다음 격려사를 들으면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이어지는 17절을 보면, 사람들에 의해 고발당할 것을 말씀하신다.
마10: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법정에 넘겨주고, 그들의 회당에서 매질을 할 것이다.
18절에는 예수님 때문에 재판정에 끌려나오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하신다.
마10: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나가서, 그들과 이방 사람 앞에서 증언할 것이다.
8.
한번 생각을 해보라.
당신이 생각하는 지혜를 발휘했다면 고발당하고, 재판정에 끌려 나가겠는가?
아마도 당신이 생각하는 지혜라면 고발될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것이고,
당신이 생각하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재판정에는 나가지 않을 대비책을 마련해 놓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나를 반대하지 않도록 그 사람을 내 편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재판정처럼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을 만큼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일하는 것을 우리는 지혜라고 말한다.
9.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지혜롭게 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지혜는 그런 지혜가 아니었던 것이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요리조리 말을 돌리고 회피하는 임기응변이 지혜가 아니다.
10.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혜가 무엇인지 분명히 하셨다.
그것은 같은 본문 19~20절에 나와 있다.
마10:19~20, 사람들이 너희를 관가에 넘겨줄 때에, 어떻게 말할까, 또는 무엇을 말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 때에 지시를 받을 것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11.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하고, 말씀 따라 사는 것이 지혜다.
우리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하나님 말씀이 없으면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지혜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12.
야고보도 오늘본문에서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지혜가 있다고 분명히 말한다.
시기심과 경쟁심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잘못된 지혜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다고 했다.
약3:15~16 이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게 속한 것입니다.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
13.
오늘날, 지혜는 마치 경쟁자를 물리치고, 남보다 나은 길을 가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온갖 아부와 아첨과 줄타기가 마치 지혜처럼 포장되고 있다.
14.
지혜는 진정으로 경건에 이르는 가장 귀하고 소중한 열쇠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지혜가 그것은 아니다.
뱀처럼 지혜로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아니냐에 달렸다.
그러니까 그것은 귀에 있는 것이지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머리가 아니라 귀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진짜 지혜는 뱀처럼 슬기로움이 아니다.
우리를 진짜 지혜롭게 만드는 것은 비둘기 같은 순전함이다.
15.
레위기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동물은 3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만민들을 위해 배정된 동물들, 우리가 먹을 수 있도록 정한 동물들,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데 사용되는 동물들이 그것이다.
제사 동물들에는 소와 양, 염소가 있고, 나는 것으로는 비둘기가 유일하다.
그 비둘기를 마태복음은 “순진하다”고 표현했다.
이때 쓰이는 헬라어 [아케라이오스]는 ‘순결’, 혹은 ‘순전’이라는 뜻이다.
16.
야고보도 위에서 내려오는 지혜는 순결이라고 말한다.
약3:17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17.
경건으로 들어가는 열쇠는 똑똑함이나 재능이 아니다.
순전함이다.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함이다.
세상은 다 바보 같고, 밥그릇 챙겨먹지 못한다는 그 순전함이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똑똑함도, 지식도, 재능도, 판단도 아니다.
정말 회복해야 하는 것은 바로 순전함이다.
많은 것을 알고, 복잡한 사회 속에서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회복해야 할 것은 뛰어난 머리가 아니라 순전한 마음이다.
18.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순전한 삶”인가?
첫째는 비둘기에서 그 삶을 찾을 수 있다.
제물을 드릴 때 돈이 많은 이들은 소를 잡아 제사를 드렸다.
그 다음은 양이나 염소를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비둘기를 잡아서 제물로 바쳤다.
너무도 보잘 것 없는 비둘기를 드리는 것이어서 그들은 새벽같이 나왔다.
마음이라도 주님께 드리고 싶어서 그들은 마음을 다했다.
19.
제물을 받아 주께 드리는 제사장의 입장에서는 비둘기 제물이 가장 힘들다.
커다란 소나 양과 다르게 비둘기는 작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비둘기를 가를 때 각별히 조심하도록 명령하셨다.
게다가 비둘기는 털과 함께 태웠는데 그 냄새가 이루말할 수 없이 고약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향기나는 제물이라고 하셨다.
제사장의 입장에서도 비둘기 제물은 정성이 필요한 제물이었다.
20.
하나님은 당당하게 자신의 소를 바치는 이들보다 마음을 드리는 이들의 제사를 더 기뻐하셨다.
당당하게 자신의 기득권을 주장하는 이들보다 무릎을 꿇은 가난한 과부의 렙돈 두 닢을 더 귀히 여기셨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21.
다림사역을 하다보면 눈물 나는 일들이 많다.
한국에서 제일 바쁘다는 고등학생들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먹을 것을 사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을 보노라면 눈물이 난다.
또 다림에서 누군가 어려움을 당하면 득달같이 뛰어와 주는 분들이 있다.
필요할 때마다 모여서 힘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다.
같이 걱정해 주고, 같이 눈물 흘려주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외람되게도 거의 대부분 교인들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후원금만 내고 “나는 누구를 돕네...” 뽐내는 나의 모습,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한없이 부끄럽다.
22.
예배에 참여해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당당한 그리스도인이 많다.
내가 헌금하는 것으로, 밥 한번 사는 것으로 당당한 교인들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을 찾으신다.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그 곳에 하나님이 거하신다.
지금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신가?
순전함을 회복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거기서 경건함이 나온다.
23.
구약성경의 아가서는 연애이야기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솔로몬이 술람미여인을 향한 사랑의 고백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솔로몬왕은 술람미여인을 여러번 이렇게 부른다.
아5:2, 나의 누이, 나의 사랑, 티없이 맑은 나의 비둘기!
24.
이런 고백도 있다.
아1:15 아름다워라, 나의 사랑. 아름다워라, 비둘기 같은 그 눈동자.
25.
사슴의 눈망울도 아니고, 왜 비둘기의 눈동자라고 했는지 의아했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나는 비둘기의 특징을 바로 찾아보았다.
그런데 뜻밖의 지식을 얻었다.
비둘기의 눈은 오직 한 방향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둘기는 목적도 오직 하나요, 보는 것도 오직 하나다.
곁눈질을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단순하다.
26.
볼링이라는 게임이 있다.
우리는 그 운동의 역사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볼링의 기본규칙을 세운 사람은 우리도 잘 아는 사람이다.
바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기치를 세운 이후 생명의 위협을 당했다.
그래서 여러 곳으로 피신을 다니게 되었는데 그때 볼링을 했다.
여러 위협으로부터 오는 회유와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 사탄으로 명명한 나무 핀들을 세워 놓고 공을 굴려 깨뜨리는 규칙을 정했다.
27.
볼링은 10개의 핀을 넘어뜨리는 게임이다.
그런데 10개의 핀을 넘어뜨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일 앞의 1번 핀을 쓰러뜨려야 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1번 핀을 넘어뜨리는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1번 핀을 킹핀이라고 한다.
10개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1개를 조준하는 게임이 볼링이다.
28.
사람들은 여러 가지 수를 품는 것에 도전한다.
많은 계략과 방법, 더 많은 수읽기를 알아야 이기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천수의 사람, 만수의 사람이라고 부른다.
역사에서 승자는 늘 수많은 계략과 방법을 터득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기기 위해서 우리는 수많은 경험과 방법을 익히려 노력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은 수 만가지 방법을 가지고 나에게 도전하는 이들을 이기는 방법으로 ‘단순함’을 제시한다.
29.
구약의 전쟁을 기억하는가?
수많은 전략을 가지고 공격하는 적군을 대항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단순하다.
전략과 무기로 공격하는 자들 앞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성가대로 맞선다.
천혜의 요새로 닫힌 여리고성 앞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행진으로 맞선다.
얼마나 미련한가?
얼마나 단순한가?
가공할 무기들 앞에서 성경은 오직 하나님 이름만 붙들라고 하신다.
넘치는 전략들 앞에서 성경은 오직 하나님만 믿으라고 하신다.
30.
솔로몬은 단순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축복 앞에서도 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간구했던 사람이다.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왕위에 오르고, 뛰어난 교육과 천재적 식견을 가지고서도 그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며 일천번제를 드리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왜 말년에 넘어지고 깨졌을까?
그것은 말년에 수많은 외교적 수, 군사의 수를 쓰다가 넘어진 것이다.
하고 싶은 일, 전략과 방법들이 많아지면서 단순함을 놓쳐버렸다.
31.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행20:24 그러나 내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하기만 하면, 나는 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얼마나 단순하고 무식한가?
그러나 그 단순함이 바울에게는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한 가지를 붙들고 끝까지 가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바울은 이 결심을 사역의 마지막까지 붙들고 갔다.
단순함은 인생을 강력하게 이끈다.
32.
킹핀을 잡아야 나머지 9개의 핀을 잡을 수 있다.
이핀 저핀을 생각하면 모두 놓친다.
킹핀을 붙잡는 단순함의 비결을 알아야 한다.
33.
수많은 문제로 복잡해질 때가 있다.
특별히 사역을 하다가, 주님의 일을 하다가 복잡해질 때가 있다.
이것저것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고 억울함이 몰려올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좋은 일하고 욕먹고, 위한다고 했다가 뒤통수 맞고, 도와줬는데 도둑으로 몰리는 일을 당하면 황당하기까지 하다.
그런 일을 당하면 으레 조금 더 약삭빠른, 조금 더 교묘한 방법을 찾게된다.
그러나 수 싸움으로는 세상의 권세를 이기지 못한다.
단순함은 언제나 복잡함을 이겨왔다.
미래에도 단순함은 여전히 복잡함을 이길 것이다.
34.
복잡하면 사랑하지 못한다.
이런 저런 일들과 상황들과 반응들을 보면 사랑하지 못한다.
여러 복잡한 일들이 뒤엉킬 때, 킹핀만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분노와 억울함을 이길 수 있고, 아픔을 견딜 수 있다.
그래야 평화를 지킬 수 있고, 친절과 온유함을 품을 수 있다.
하나님 앞에 단순해져라.
단순하게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삶을 회복하라.
그런 것이 무슨 소용? 이런 시대에? 그런 것 한다고... 이런 복잡한 생각들, 무슨 복잡한 논리들을 다 뒤로 하고... 오늘 단순하게 다시 하나님을 만나라.
단순함을 회복하라...
당신을 경건으로 이끌 것이다.
[마지막사진] - 응급실에서 오열하는 의사 – 19살 소년,
냉철하고 침착하고 유능하고? - 아픔에 함께 울 줄 아는 순전함을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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