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주신 하루를 인정하고 감사로 문을 여는 자들에게 보여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께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처음으로 복을 주시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그 복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 본문을 읽을 때 우리는 한가지 부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녀 출산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출산이 축복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생육과 번성이 인간에게 주신 첫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면 보다 포괄적인 해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저는 개인적으로 해 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이 축복이 다시 언급되는 창세기 9장에서 조금 더 강해집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와 같이 말씀하시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는 창세기 1장과 똑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두 말씀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첫 사람 아담은 이제 삶을 시작하는 이였다면, 노아는 이미 600살이나 먹은 노인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미 자녀들까지 있었죠. 자녀 출산에 대한 축복으로 이해하기는 좀 어색한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 둘 사이에 공통점이 존재했는데요. 뭐라고 할까요? 허허벌판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요. 마치 리셋된 상태처럼 백지와 같은 시작하는 시점이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이 이제 천지를 창조하여 이에 대한 관리와 다스림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면, 창세기 9장은 홍수로 인해 모든 것이 소멸된 이후 새로 시작되는 시점이었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를 큰 틀에서 해석해 본다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시작하고 도전하라는 명령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저는 더 강하게 듭니다. 마치 이제 너희가 해야할 차례다라고 말씀하시듯 말이죠.
하나님께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당신의 대리인으로 이 땅에서 일하기를 바라시죠. 그리고 그렇게 당신을 대신하여 일하는 우리를 도우시고 축복하십니다. 거기에 우리의 믿음이 필요하고 순종이 필요한 것이죠. 제 3자의 입장에서 이런 패턴을 보면 정말 꿀 알바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마치 하나님이 마련한 일터에서 하나님이 맡긴 일만 잘 감당하면 안정된 자리와 재물이 채워지는 시스템이니까요. 이걸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우리가 못하죠. 어떤 이가 이런 제안을 한다면 아마 우리는 의심부터 할지도 모릅니다. 또 어떤 이는 그 일터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거나 월급이 적다고 느껴서 거부할지도 모르죠.
우리 뇌에는 부정 편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의심하고 보는 거죠. 이는 우리의 안전한 방어를 위해 꼭 필요한 의식입니다. 그런데 뭐든지 과유불급이죠. 지나치면 없느니만도 못하게 되는 법입니다. 우리가 어릴 적 가장 많이 듣는 단어는 ‘안 돼’라는 것에 이견을 다는 분은 없으실 거예요. 수없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라죠. 물론 이 또한 연약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방법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육은 아이들에게 어떤 도전의식보다는 의심을 먼저 하게 만드는 습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패턴이 되었죠.
사회를 유지하는데는 질서가 필요합니다. 그 질서의 기초는 아마도 법일 거예요. 그런데 그 법이 주로 하지 말라는 것으로 가득찼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법으로 하라고 말하는 법은 없죠. 주로 안 되는 것,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잘못된 것들을 기반합니다. 그것을 기준으로 이 사회는 질서를 잡아가죠. 그런데 하나님의 질서는 이와 다릅니다. 그분은 하지 말라가 아니라 하라고 하시죠. 그 질서가 우리에게 처음 하신 축복에 담겼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이는 황무지에 나무를 심고, 사막에 강을 내는 도전을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도전하는 자를 도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마태복음서 7:7) 이 말씀은 도전하는 자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여실히 보여주시는 말씀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무언가를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낫습니다. 도전하는 것이 가만히 있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이제 생각은 그만하세요. 뭐라도 하세요.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차라리 도전하다 실패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 실패의 길에서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죠. 언제까지 ‘기도해야지…’ 하고 있을 건가요? 언제까지 ‘공부해야지…’ 할 거죠? 해야 답을 얻습니다. 한발짝 내딛여야 길을 찾을 수 있어요.
발을 담궈야 홍해가 갈라집니다. 바위를 내리쳐야 물이 나와요. 광야로 떠나야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우리의 도전에서 나옵니다. 기적은 예수님께 찾아갈 때 일어납니다. 그러니 뭐든 지금 하세요. 하지 말라는 말에서 벗어나세요. 이제 하라는 말씀에 도전하세요. 구하는 자에게 주님이 함께하시고, 찾는 자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만 엄습합니다. 차라리 뭐라도 하세요. 안 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하는 자가 더 평안합니다. 용기내 문을 두드릴 때 우리에게 평안이 임합니다. 여러분의 용기와 도전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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