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2: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깨어있는 자들에게 부으시는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죠. 설명하지 않아도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들 아실 거예요. 이 말이 우리 속담이라고 알고 있는 분 많으시겠지만 사실 이 말은 중국의 철학서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죠.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죠. 중국에서 가장 큰 강으로 알려진 황하는 늘 자신이 가장 길고 큰 물줄기라고 여기며 자랑을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황하는 바다를 보고는 놀라서 기절을 했다죠. 그런 황하를 보며 바다가 다음과 같이 3가지를 충고했다고 합니다.
1. 우물 속에 있는 개구리에게는 바다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다.(井蛙不可以語海) 그 개구리는 우물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拘於虛也)
2. 한여름에만 사는 여름 곤충에게는 얼음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없다.(夏蟲不可以語氷) 그 곤충은 자신이 사는 여름이라는 시간만 고집하기 때문이다.(篤於時也)
3. 편협한 지식인에게는 진정한 도의 세계를 설명해 줄 수 없다.(曲士不可以語道) 그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르침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束於敎也)
우물 안의 개구리 이야기는 어찌보면 우리에게 더 넓은 세계, 더 깊은 지식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배우고 나아가라는 교훈을 던져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최근 저는 이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는 계기가 있었어요. 제가 즐겨보는 방송 프로그램에 미국의 대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분이 출연했는데요. 특별히 관심이 있는 IT기업인데다 여성으로서 성공신화를 쓰고 있는 인물인지라 관심깊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죠. 그분은 한국에서 최고의 학부를 나와 굵직한 회사에서 전도 유망한 우리나라 웹디자이너 1세대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는데요.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보다 넓은 세계를 찾아 미국의 세계 최대 IT회사로 늦은 나이에 이직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거기서도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으니 완전 성공한 셈이죠. 그런데 뜻밖에도 그분은 이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더 넓은 세계를 꿈꾸며 더 넓은 곳으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자신이 그저 똑같은 사람, 똑같은 식당, 똑같은 교회에 살더랍니다. 어느 면에서는 한국에서보다 더 작은 무리 가운데 자신이 있더래요. 우물을 벗어나려고 했는데 더 작은 우물 안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분량이 한정되어 있다고 말이죠. 만날 수 있는 사람, 영향을 주는 사람, 교제를 하는 사람, 사랑을 하는 사람이 우리는 무한대가 아니라고 말이죠. 어쩌면 우리 모두 우물 안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떠오른 생각은 우물 안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죠. 몇 명을 더 만나고 어느 정도 크기의 성과를 내느냐의 문제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우리는 또 우물일 것이고, 무엇을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정작 중요한 문제는 그 우물이 어떤 우물이냐? 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무리 작아도 그 우물이 가치있고 의미 있는 우물이면 됩니다. 아무리 소소한 일이어도 잘 사용되는 것이면 뜻 깊은 것이죠. 어차피 그 작은 우물에서 사는 것이라면 정말 좋은 것, 감사한 것만 담고 살면 어떨까요? 그런 말 있죠? 우리는 사랑하기도 시간이 모자란데 미움, 다툼, 시기, 질투까지 하면서 살 필요가 있느냐?고 말이죠. 철이 드는 것이 이런 것일까요? 하고 싶은 수많은 일들 가운데 이제 내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고 해서 유익한 일들을 선택할 용기를 갖는 것, 그것이 철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내 마음에 담으려고 하지 마세요. 너무 많은 것을 내 인생에서 하려고 애쓰지도 마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도 인생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유혹과 관심 속에서도 이제 나는 내 인생을 살기로 정하는 것, 그 결정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결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나쁜 말들은 버리세요. 나쁜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은 내 우물에 담지 마세요. 온갖 가십거리나 세상의 문제들을 다 내 우물에 담을 생각하지 마세요.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이야기, 나를 화나게 하는 문제들, 나의 인상을 굳어버리게 하는 일들은 마음에 담지 마세요.
저와 게임을 하나 해 보실까요? 여기 많은 음식들이 있습니다. 최고급 부페죠. 좋아하는 음식들이 즐비합니다. 우리는 지금 배가 고픕니다. 이제 각자의 그릇에 음식을 담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음식을 담으시겠어요? 우문이죠? 물론 좋아하는 음식 담으시겠죠. 맛있는 음식들이죠. 그런데 그 그릇에 혹시 자기가 싫어하는 것들을 담는 이들 있을까요? 안 먹을, 먹고 싶지 않을 음식을 담는 이가 있을까요? 혹시 구색을 맞추기 위해, 혹은 다른 사람이 담으니까 나도 담겠다는 분 계실까요?
우리의 우물이 그렇습니다. 내가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는 것들만 담아도 모자랍니다. 이제 선택을 해야죠. 그 선택이 나의 실력이고 능력입니다. 평안은 그 선택에서부터 시작되죠. 여러분은 오늘 어떤 마음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기쁜 마음입니까? 슬픈 마음입니까? 어떤 이들과 만나시겠어요? 기분 좋게 하는 이들입니까?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이들입니까? 어떤 일을 하시겠어요? 나를 뿌듯하게 하는 일입니까? 그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일입니까? 그 선택이 미래의 내가 됩니다. 그 선택이 나를 평안으로 인도합니다. 여러분의 우물이 저 바다보다 깊고 저 하늘보다 넓은 평화로 채워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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