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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성경인물에서배우는영적원리

성경인물에서배우는영적원리 02]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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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 에녹

 

에녹은 성경에서 족보나 상황 등에 이름이 오른 것을 제외하면 그의 삶을 언급한 구절은 구약의 창세기5:24과, 신약의 히브리서11:5 딱 두 구절이다. 그것도 거의 동일한 언급이니 에녹의 삶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한 구절에 그치는 셈이다. 다시 말하면 분량에 있어서는 그리 비중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녹이 주목받는 점은 단 한가지다. 바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진 사실이 그것이다.


성경에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이는 에녹과 엘리야, 두 사람이다. 예수님도 하늘에 올라가셨으나 죽음을 보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신 것이기에 죽음 자체에 이르지 않은 이 둘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게다가 예수님은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에 비해 에녹과 엘리야는 죽음을 보아야 당연한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죽음을 보지 않는 영광과 축복이 그들의 삶에 있었기에 에녹과 엘리야는 특별한 하나님의 기쁨이었음이 틀림없다.


생각해보면 이 둘, 에녹과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졌다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삶의 차이는 극명하다. 한마디로 극과 극이다. 엘리야는 화려한 사역의 삶의 살았다. 수많은 기적과 일들이 그의 인생에 점철되어 있다. 놀라운 능력이 그에게 있었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은사들이 충분했다. 이스라엘 전래에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선지자로 불리는 존재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실 때 제자들은 엘리야라고 한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당시 최고의 칭찬이었다. 그만큼 엘리야는 성공한 사역자의 모델이다. 그에 비해 에녹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말 밖에는…


우리는 뭔가 놀라운 능력과 역사적 기록들이 있어야 위대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영적인 권세에 있어서도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결과와 표증들에 초점을 맞추기 십상이다. 교회에서는 숫자로 목회자의 능력을 평가하고, 얼마나 많은 기도 응답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이 전도했는지, 얼마나 놀라운 체험을 했는지가 신앙의 레벨 기준이 되어 버렸다. 무언가 사건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이에 비견하여보면 에녹은 정말 초라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았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고, 어쩌면 인간으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가장 놀라운 축복인 죽음을 맛보지 않는 영광을 얻었다는 점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아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이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이 동행이 참으로 초라해 보이는 시대에 살 뿐이다. 에녹의 인생에는 기적도 없고, 뚜렷한 사역도 없다. 그 흔한 지도자의 호칭도 없다. 그저 아들 딸 잘 낳고 잘 살았다. 그것이 전부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삶, 아들 딸 잘 낳고 잘 살았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신앙의 깊이를 평가받지 못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이며, 사명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식을 낳아보면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자녀들이 어릴 적에는 부모에게 가득찬 욕심들이 있다. 우리 자식들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들로 가득하다. 부모자식간의 문제들은 언제나 부모의 욕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노년의 지혜를 얻게 되는 순간 부모의 입장은 변한다. 이런 저런 자리나 상황이 아니라 나의 자식은 아들 딸 놓고 자신의 삶에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느냐 묻는다. 어떻게 하나님의 제자가 되느냐고 묻는다. 이러저러한 법칙과 방식들이 우리 주위에 깔려있지만 오늘 에녹에게서 듣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법,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은 단촐하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그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의 능력이 역사적 한 페이지를 장식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특별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나를 특별히 생각하신다. 그저 매일 하나님과 말씀 나누고, 그의 생각을 하고, 그분을 관심하고, 그분을 신경쓰며, 그분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그분의 생각을 쫓고, 그분의 꿈을 꾸며, 그분의 언어를 익히는 것, 그것이 동행이다.


오늘날 복음의 삶은 너무나 특별한 것이 되어 버렸다. 제자가 되는 일이 너무도 특별해졌다. 특별하지 않으면 제자인 줄도 모른다. 특별하지 않으면 자녀가 될 수도 없다. 예수 믿는 것이 특별해졌고,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예식과 특별한 방식을 따라야 만이 제자라 칭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의 언어와 제자의 언어가 다른 시대, 나의 사랑의 방식과 자녀의 사랑의 방식이 다른 시대에 살면서 이중생활을 하는 우리 자신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제자로서 나의 특별함을 과시하는 일들이 바로 믿음이 되어 버렸다.


동행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비결이 주어졌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를 향한 사단의 가장 강력한 공격은, 바로 우리에게 가장 쉬운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버리게 한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쉬운 것으로 사랑을 주셨지만 사랑이 가장 어려운 일 되어버렸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을 가장 쉬운 일로 주셨지만 지금은 가장 특별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저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생각과, 말씀과, 꿈을 꾸는 일, 그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어야 예수님인가? 예수님이 기독교의 우두머리 교주가 되어야 예수님인가? 세계에서 기독교인 수가 많은 것이 예수님을 평가하는 잣대인가? 교인 수가 많고, 많은 사람이 존경하며, 책을 많이 내야 좋은 목사인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아무 일을 하지 않으셨어도 예수님은 예수님이시다. 엘리야처럼 놀라운 일을 벌이는 것이나 에녹처럼 아무 일 없는 것이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같고, 또 받은 축복 또한 같다. 같이 하늘로 올리워 졌고, 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들이다. 내 능력이 출중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뭔가 이루어 놓아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은 아니다.


에녹은 창세기 노아 이전까지 인물 중 가장 짧은 인생을 살았다. 대충 오백세 이상 살던 시대에 그는 365년을 살았다. 사람들은 오래 사는 것도 축복이라고 하는데 그것에 비하면 그는 축복을 덜 받은 셈이다. 아마도 오늘날 에녹 같은 사람이 교회에 있다면 사람들은 다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교회는 에녹보다는 엘리야를 더 선호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왕이 되는 사울이나 솔로몬과 같은 캐릭터를 더 선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녹은 하늘에서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인물이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뭘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역은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특별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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