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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묵상일기 20 - 인정하면 그때부터 치유가 시작됩니다.

누가복음서 1:46~48   그리하여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행복한 금요일 아침입니다. 지난 일주일을 잘 보내서 행복하고, 쉼이 있는 주말을 앞둬서 행복합니다. 우리 공동체는 또 주일을 기대하죠. 주님과 만나고 공동체 가족들과 사귐을 갖는 예배가 기다려져 행복합니다. 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도 내게 주신 복을 세어보며 감사하는 하루 되시길 빕니다.
 
누가복음 1장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오늘 본문에서부터 시작되는 마리아의 찬송일 것입니다. 이 찬송을 라틴어로 [마니피캇]이라고 부르는데요. 이는 마리아의 찬송 첫 단어를 따서 지은 이름이죠. 우리말로는 '찬양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찬양한다는 말이 우리에게는 익숙해서 이게 평범하게 들리지만, 사실 마리아의 입장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쉽게 여길 부분이 아닙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2,000년 전 유대의 연약한 한 여인이 감당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았을 상황에 놓인 마리아의 첫 고백이 '찬양합니다.'라는 것이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하게 하죠. 
 
왜 불평이 없었겠어요? 왜 저항이 없었겠습니까? 뭘 몰라서 그랬을까요? 이게 얼마나 자신에게 치명적이고 심각한 문제인지 깨닫지 못한 순진한 반응일까요? 그러기에는 그의 찬송 안에는 자신의 처지와 당면한 문제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애잔한 마음과 감동이 몰려옵니다. 
 
그녀는 주님을 찬양하고 좋아한다고 고백하죠. 찬양한다는 것은 주님이 하시는 일이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의 계획을 자랑한다는 뜻이죠.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감사하고 자랑까지 하고 싶다는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보다 더 깊고 크신 분임을 알기 때문이죠. 이것이 믿음의 출발이라는 사실은 이미 우리가 묵상한 바 있죠.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마리아의 놀라운 고백을 묵상하며 그 용기와 담대함을 역설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이 역사적인 기록 이전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편지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 말씀 속에 나를 대입해 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연약한 여인이 바로 나일 수 있음을,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나도 담대하고 용감하게 주님 앞에 찬양과 고백을 할 수 있음을 묵상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는 첫걸음, 주님의 도우심을 받는 첫 관문이 바로 '인정'입니다. 주님이 하신 일에 대한 인정이죠.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겪습니다. 어느 때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불평과 불만의 어려움들이 벌어지죠. 가끔 우리는 그런 어려움 앞에서 '저주'를 떠올립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일어난 듯 몸부림을 치죠. 그래서 온몸으로 그 일을 인정하려 하지 않죠.
 
그런데 우리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따지기 이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일을 인정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하셨는지, 사탄이 주는 고난인지를 따지기 전에 - 물론 사탄은 독자적으로 우리를 괴롭힘 권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로지 사탄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우리이기 때문이죠. - 우리 앞에 놓인 시간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에게 주어진 일임을 인정해야 하죠.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해결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도우심이 역사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인정하면 그때부터 치유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인정하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도우심이 임하죠. 해결이 늦어지고 회복이 더딘 이유는 우리가 저항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저항은 불평과 불만이죠. 변명과 남 탓입니다. 그렇게 저항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의 해결은 미뤄집니다. 저항이 강하면 강할수록 하나님의 일하시는 공간은 줄어들죠. 
 
먼저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왕 인정했다면 기쁘게 그 길을 가는 것이 필요하죠. 이왕 해야 하는 일이라면 기쁘게, 즐겁게, 멋지게 해 내는 겁니다. 세상의 일이 다 즐거워서 기뻐하라고 명하신 것은 아니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과도 같은 삶을 이왕 살아야 한다면 기쁘고 즐겁게 하라는 의미가 더 강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인정하고 찬양하는 것이 주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축복의 문을 여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잘 모르죠. 내가 원하고 바라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만 때론 그렇지 못한 순간도 있겠죠. 좋은 하루는 늘 내가 바라는대로만 되는 하루가 아닙니다. 당황스러운 순간에도, 원치 않던 일 앞에서도 저항보다는 인정을 먼저 하고, 이왕 받아들여야 한다면 기쁘고 즐겁게 받아들일 때 좋은 하루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힘주시고 능력 주시기 때문이에요. 오늘도 그렇게 행복한 하루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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