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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179 - 내 이름을 걸고 오늘을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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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8:30~33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많은 귀신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귀신들은 자기들을 지옥에 보내지 말아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마침 그곳 산기슭에, 놓아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귀신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허락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니,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 달아서 호수에 빠져서 죽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품 안에서 평강을 누리시길 빕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때 '그'가 대답하죠. "군대입니다." 이는 엉뚱한 대답입니다. 이를 두고 성경은 그에게 많은 귀신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이름을 물으셨는데 그는 이름이 아닌 귀신의 수를 말한 거죠. 이를 우리는 동문서답이라고 합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이해 못 할 대화들이 나오죠. 지옥에 보내지 말아 달라는 간청과 돼지들 속에 들어가도록 요청하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해석이 필요한 대목인데요. 이 본문들을 조금 시간을 두고 하나씩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창세기 2:19   주 하나님이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드시고, 그 사람에게로 이끌고 오셔서, 그 사람이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보셨다.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물 하나하나를 이르는 것이 그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들의 이름을 붙이게 하시는 장면이 그려져 있죠. 이름은 참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하나의 생명에 대한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죠. 위 창세기 구절이 제게 감동적인 이유는, 수많은 모든 짐승들, 공중의 모든 새들, 이들에게는 이미 짐승이라는 명칭, 새라는 명칭이 있죠. 마치 오늘 본문에서 거라사 광인이 자신의 이름을 군대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짐승과 새들 하나하나에 이름이 붙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해당되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아시죠. 물론 우리는 사람이라는 명칭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 나 한 사람을 위해 당신의 이름을 붙이시고 그 이름을 당신의 손바닥에 새기시죠. 내 이름을 기억하시고 내 아픔을 아시며 내 신음에도 응답하십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 앞에 one of them(그들 중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 나는 점이 모여서 선을 이루듯 사랑하는 하나의 인격체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의 광인은 자신을 '군대'라고 지칭합니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표현이죠. 아니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치 우리가 스스로 '과연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시류에 흔들리죠. 누군가 하면 나도 따라가고, 누군가 주장하면 나도 동조합니다. 다른 사람이 무언가 옳다 말하면 마치 나도 옳은 것 같은 생각에 빠지고, 왠지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면 나도 모르게 그 행렬에 휩쓸리는 일들을 반복하죠. 

 

이를 군중심리라고 하죠. 군중심리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집단에서 고립되지 않거나 모욕당하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쉽게 영향을 받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마치 집단에 나를 맡기는 태도죠. 이와 같은 태도는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고유의 가치마저 집단에 던져버리는 우를 범하기 십상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나의 고유의 정체성을 잘 지키고 있을까요? 주님께서 주신 이름을 잘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주님께서 우리 믿음을 물으실 때 혹시 우리도 이렇게 대답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주님, 나의 이름은 아름다운주님의교회입니다.'

'주님, 나의 이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주님, 나의 이름은 교인입니다.'

 

교회도 중요하고, 그리스도인도 중요합니다. 나의 직책도, 본분도 중요하죠. 그런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교회 중의 하나요, 그리스도인 중의 하나이며, 교인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내가 교회고, 내가 그리스도인이며, 내가 대한민국입니다. 이는 말장난이 아니에요.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그 단체와 집합 뒤에 숨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이라 해도, 다른 사람이 어떤 태도를 갖는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리스도인 중의 하나가 아니라 내가 곧 그리스도인이면, 다른 이들이 도망친다 해도 지금 나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게 될 테니까요. 

 

내 이름을 걸고 오늘을 사세요. 주님이 기억하시는 나의 이름으로 오늘을 사시기 바랍니다. '나 하나쯤 빠진다고 아무 문제없겠지?'라는 생각은 내 이름이 아닌 군중의 이름으로 사는 자의 모습일 뿐입니다. 주님의 날에 우리가 주님 앞에서 설 때, 우리에게는 그때의 상황,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등의 환경으로 평가받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내 이름으로 산, 오직 나의 기록만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죠. 

 

오늘도 나답게, 주님이 주신 삶을 덤덤히, 그리고 담대하게 걷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군중 뒤에 숨지 않고 오직 주님이 주신 이름으로 뚜벅뚜벅 걷는 그 길에 주님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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