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6:1~5 한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었다. 그러자 몇몇 바리새파 사람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10월의 첫날을 축복합니다. 오늘은 새로운 하루이자 새로운 10월을 시작하는 날이죠. 새해가 되면 새롭고 기대와 다짐의 마음가짐을 갖는 것처럼 오늘도 새로운 마음으로 오늘을 여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이제 6장을 시작합니다. 시간도 흐르고 배경도 바뀝니다.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변함이 없죠. 여전히 예수님을 쫓아다니며 그의 행실에 트집을 잡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참 집요하죠. 어쩌면 우리에게도 이런 존재가 늘 함께 하는지도 모릅니다. 무엇인가를 하려고만 하면 제동을 걸고 딴지를 거는 생각들이 있죠. 부정적이고 안 될 생각들은 여전히 우리의 발못을 잡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지난 5장의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본문과도 연결되죠.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시장하셨던 모양입니다. 밀밭에서 밀 이삭을 잘라 비벼서 드시죠. 그런데 이 장면이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좀 이상하죠. 왜냐하면 밀 서리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법 테두리에서는 절도죄에 속하죠. 그런데 안심하셔도 됩니다. 당시 유대 율법에는 밀 서리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있는데요. 나그네들을 위해서입니다. 배가 고픈 이웃을 위해서죠. 마치 우리나라에 있는 까치밥 문화와 비슷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새들을 위해서 감나무에서 감을 딸 때 몇 개를 남겨두는 문화가 있었죠. 서양에서는 이를 버드 피딩(Bird Feeding)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아닙니다. 그날은 마침 안식일이었다고 하죠. 안식일 율법에는 여러 제약사항이 있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39가지나 된다고 하는데요. 대부분 일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그중에 추수에 대한 규정이 있었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께서 밀 이삭을 잘라 손에 비볐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게 추수에 해당하죠. 이를 두고 바리새파 사람들이 또 나서죠. 그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의 규정을 어겼다고 노발대발을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다윗의 이야기인데요. 다윗은 유대인에게는 누구나 존경하는 전설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세종대왕 이상의 위상을 가진 존재였죠. 그 기록은 사무엘서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사울왕에 쫓겨 도망 다니던 다윗은, 성소의 아히멜렉 제사장을 찾아갑니다. 너무도 배가 고팠던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을 부탁하죠. 그런데 아히멜렉에게는 성소에 차려진 진설병이라는 떡밖에는 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 진설병은 하나님께 제사할 때 올리는 떡으로 안식일마다 교체했습니다. 그리고 교체된 떡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었죠. 그런데 아히멜렉은 그 떡을 다윗에게 줍니다. 왜냐하면 율법보다 배고픈 자를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그 사건을 말씀하시면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알려주십니다. 율법은 우리가 온전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제정하신 삶의 길라잡이죠. 그런데 우리는 규정에 얽매여 진짜 해야 할 일, 규정으로 지키고자 했던 본질적인 가치를 잃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정해진 모든 법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그 법에 갇혀 살기 시작하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비인간적인 행위도 용납되고, 아무리 인격적이고 인간적인 가치를 말해도 법이 따라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집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빠지는 가장 큰 오류죠.
하나님께는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우리의 생명일까요? 우리를 위해 주신 율법일까요? 아무리 비싸도 자녀보다 자녀를 돕는 장난감이 더 귀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귀해도 생명보다 생명을 돕는 학교 졸업장이 더 귀할 순 없어요. 아무리 멋져도 주님을 향한 우리의 진실한 마음보다, 꾸며진 예배의 형식이 더 귀하진 않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본질을 아시죠.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주님에겐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생명이 더 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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