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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119 - 내가 아는 것을 깨뜨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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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새 포도주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묵은 포도주를 마신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9월의 끝자락에서 지난 9월을 감사하고 10월을 기대하는 여러분이길 빕니다. 

 

어제 우리는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알려진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이 본문은 유명한 본문이죠. 다른 복음서에도 등장하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와 유달리 다른 누가복음만의 구절이 있는데요.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그러니까 누가복음에만 첨언된 본문인 거죠.

 

일단 이 말씀에 대해 설명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본문에는 오해할만한 구석이 있거든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나면 새 포도주를 원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아마도 모든 사람이 동의했을 텐데요. 왜냐하면 포도주는 익으면 익을수록 깊은 맛을 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래된 포도주가 더 값어치를 하죠. 와인의 포장지에는 당연한 듯 제작 연도가 적혀 있습니다. 그 년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이는 숙성에 따른 맛의 변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래서 이 문장이 우리를 헛갈리게 만든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낡은 것, 묵은 것 등에 대해 비판적이던 논조가 흔들리기 때문이죠. 마치 묵은 것, 오래된 것이 더 좋다는 말씀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술의 값어치를 따지는 방식이 더하여져서 더욱 우리를 혼돈에 빠뜨리죠. 

 

만약 저라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비유의 말씀에 이 말씀을 덧붙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저와 비슷한 생각으로 다른 복음서는 이 부분을 추렸을지도 모르죠. 아무리 예수님의 말씀이라도 말이죠. 그런데 누가는 굳이 이 부분을 첨부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자 하는 마음일 수도 있죠. 그러나 그런 것보다 누가의 의도가 다분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예수님은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굳이 좀 유식한 말로 하자면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을 요구하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생각을 뒤집고 계신 거죠.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인지도 몰라요.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 기회를 잡을 준비는 되어 있고?"

"새로운 은혜를 받고 싶다고? 그 은혜를 받을 그릇은 준비되었고?"

"새로운 꿈을 꾸고 싶다고? 그 꿈을 새롭게 꿀 새로운 생각은 하고 있고?"

 

그런 차원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의 폐부를 찌릅니다. 많은 사람이 오래된 포도주가 좋다고 말하죠. 그래서 표지에 생산연도만 보고 값어치를 따집니다. 그렇다면 과연 정말 오래된 포도주가 더 맛있을까요? 정말 값어치를 할까요? 우리와 다르게 와인의 전문가들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와인은 품종과 생산연도의 작황 상태, 그리고 제조와 보관의 차이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한 와인 경매 행사에서는 100년 된 와인보다 40년 된 와인이 훨씬 높은 가격에 판매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유는 100년 전 그 해의 포도 작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을 모르고 그저 오래된 것이 좋다고 여기죠. 

 

오늘 본문은 어쩌면 패러다임의 전환보다 더 강하게 우리에게 요구하는 메시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바로 '너의 상식을 깨라'는 말씀일지도 몰라요. 제가 인생의 모토로 여기며 사는 금언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인데요. 우리가 늘 고집부리고 우기는 이유가 바로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식적인 분이십니다. 그 말은 우리가 우리의 상식으로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우리 상식 안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죠. 그분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어, 우리보다 높고 크시고 넓고 깊은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더 알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상식을 깨뜨려야 합니다. 내가 아는 것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렇게 나의 아집을 부서뜨려야 하죠. 그래야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옥합을 깨뜨려 주님 발에 부었던 여인처럼, 오늘도 나를 깨뜨려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우리들 되길 빕니다. 내가 부서지고 깨져야 주님께서 나를 다시 세우십니다. 내가 무너지고 쓰러져야 주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일하기 시작하시죠.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은 자랑이 되고, 우리의 실패는 간증이 되며, 우리의 아픔은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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