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117 - 매일 여러분 마음에 잔치를 베푸세요.

반응형

누가복음 5:33~35  사람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파 사람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는군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혼인 잔치의 손님들을, 신랑이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하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날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느덧 9월도 저무네요. 이제는 제법 가을날씨 같습니다. 높은 하늘처럼, 시원한 바람처럼, 여러분의 마음도 해맑고 기분 좋은 하루되시길 빕니다.

 

어제 사람들의 말은 뭔가 비꼬는 듯한 말이었다고 말씀드렸죠? 그들은 비교하며 사는 데 익숙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비교의 달인이죠. '비교의식'이라는 말이 있죠. 이것이 나쁜 것이라는 말을 우리는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이 비교의식이라는 것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마치 나보다 잘난 사람과 비교하거나 경쟁의식에 의한 비교가 전부인 줄 압니다. 그런데 진짜 비교의식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부부가 곧잘 싸우죠. 그런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싸움의 발단은 아주 사소한 것들입니다. 가령 이런 것이죠. 내가 설거지 어제 했는데 오늘 또 내가 해야 하는 것으로 싸우죠. 자기는 맨날 뒹굴면서 내가 누워있으면 뭐라고 한다고 투정합니다. 그런 싸움이 커지는 거죠. 그런데 그 속에 비교의식이 존재하죠. 너는 몇 번 했는데 나는 몇 번 하고, 너는 이렇게 했는데 나는 못했다는 것이 비교의식입니다. 설거지 더 하면 안 됩니까? 청소 더 하면 안 되나요? 제가 늘 말씀드리죠? 혼자 있을 때는 혼자서도 잘하다가 같이 있으면 꼭 반띵정신이 용솟음친다고요. 그것을 공평이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이것은 공평이 아닙니다. 공평은 주는 만큼 받고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 공평입니다. 많이 뿌린 자가 많이 거두는 것이 공평이죠. 그러니 똑같이 해야 한다는 비교의식은 공평과 상관이 없는 거예요.

 

비교의식 안에서는 끊임없이 '내가 손해 보는 것이 무엇인가?'를 계산합니다. 지금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보러 이곳까지 온 목적은, 기실 예수라는 존재 때문에 자신들이 손해를 보지 않을까? 자신들의 권력이나 권리를 침해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노파심 때문인지도 모르죠. 그들은 그렇게 한평생을 '내가 손해 볼지도 모른다'는 강박 속에서 살아온 이들이죠.

 

우리도 그렇습니다. 뭘 해도 내가 손해를 보거나 권리를 침해당할까 봐 전전긍긍하죠. 아주 작은 일조차 '이것은 내 손해 아닐까?' '왜 나만 이래야 하는데?' 이런 생각으로 대하기 일쑤죠. 그러다 보니 모든 일에 신경이 날카롭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죠. 우리가 때로 마음이 따뜻하고 넉넉해질 때가 있죠. 그럴 때 우리의 행동양식은 달라집니다. 자신이 더 일해도 괜찮고, 자신이 조금 손해보아도 개의치 않습니다. 이는 그저 마음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너그럽고 좋으면 우리도 모르게 창조의 원리가 작동하죠. 그것은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즐겁다는 하나님의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또한 그렇게 남을 낫게 여기는 사람에게 주님의 은혜가 흐르고 낮은 곳에서 섬기는 이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죠. 이게 복음을 품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제자들과 늘 먹고 마셨던 이유는 그분이 본래 유쾌한 분이셨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너무 근엄하고 무거운 분으로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야 권위 있어 보인다는 생각 때문이죠.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매우 유쾌하시고 또 유머가 풍부하신 분이셨습니다. 재치도 있으셨고 때론 아재 개그도 서슴지 않으셨죠. 그런데 그렇다고 그분이 유쾌하신 것만으로 늘 즐거우셨던 것은 아니죠. 그분께서 자유롭고 여유로우셨던 이유, 늘 기쁘고 즐거우셨던 이유는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심을 온전히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꿉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잘못하나 지켜보자'가 아니라 '이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가'가 되는 거죠. '내가 받을 손해는 무엇일까?'가 아니라 '내가 받을 이익은 무엇일까?'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잔치는 바로 우리의 의식입니다. 비록 아프고 슬프고 어려운 일이 앞에 놓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일로 나에게 어떤 복을 주실지, 나는 얼마나 성장한 사람이 될지, 내 주변에서 어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지를 기대하고 꿈꾸는 믿음의 상징이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의 마음은 잔치의 자리입니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우리의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질 거예요. 주님이 나에게 신실하고 인자하심을 믿는다면 우리의 걱정도 사라질 겁니다. 그 자리가 잔치의 자리인 거죠. 

 

매일 여러분 마음에 잔치를 베푸세요. 우울이 몰려올 때마다 더욱 성대한 잔치 자리를 마련하셔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고 힘든 일이 가로막힐 때마다 혼자 동굴을 찾지 마시고 사랑하는 이웃과 함께 나눔의 잔치 자리를 펼쳐야 합니다. 나의 마음을 기대와 소망으로 채워야 해요. 오늘도 넉넉한 마음으로 하루를 기대하며 출발합시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