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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115 - 좋은 관계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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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31~3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멋진 하루를 그리며 기대 속에 시작하시길 빕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감시하듯 쫓아다녔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첫날부터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트집을 잡으며 신경전을 벌였죠. 오늘도 그런 신경전은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마다 딴지를 걸고 하시는 말마다 꼬리를 잡아 훼방을 했던 것 같아요. 우리 주변에도 그런 이들이 있죠. 무슨 일을 할라치면 꼭 반대를 하고, 잘못될 것들에 대해서 나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이들을 우리는 보통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부르죠. 또 하는 말마다 토를 달고 꼬리를 잡아 엉뚱한 방향으로 의미가 흐르게 하는 이들이 있죠. 신기하게도 이런 사람들은 뭘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는 것도 많고 논리도 있죠. 그래서 더 짜증 날 때가 있지 않나요? 

 

아마도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그랬을 확률이 큽니다. 툭하면 법을 들이밀고 전통이니 관행이니 하며 말문을 막히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중풍병자를 고칠 때나 어제 본문에서도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죠. 이미 유대인들은 세리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과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편에서는 세리들은 죄인이었기 때문이죠. 세리들을 사마리아인들과 견줄 만큼 멸시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은 외세에 굴복하고 더럽혀져 온 조선의 환향녀 취급을 했었죠. 그래서 그들과는 말도 섞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들과 잔치자리에 함께하는 예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하죠.

 

한마디로 이런 이들은 재수가 없어요. 함께하기 어렵죠. 심지어는 함께하면 기분도 나빠지고 괴롭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따라다니며 훼방을 하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내치셨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방해공작을 하는 것을 내버려 두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따라다니는 것만도 좋게 여기셨는지 모르겠어요. 그나마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말씀을 전할 기회라고 여기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전하죠.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

 

저는 이전에도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받아들였어요.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세리와 같은 죄인들을 위해 온 것이다.'라고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이죠. 맞는 말이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바로 죄에 묶인 이들을 해방시키시고 구원하기 위해서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달리 해석할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말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말씀이 달리 들렸습니다. 의미가 달라졌다기보다는 대상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예수께서 병든 자, 혹은 죄인이라 부르신 이들이 세리가 아니라 바리새인이라고 대비해 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그렇다면 이런 말이 되죠. 

 

"그래서 내가 너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니니? 그래서 너에게 이렇게 내 마음을 알려주는 거야!"

 

우리는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려고 하죠. 더 성공한 사람, 더 잘난 사람, 더 학식이 있고 가진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일 때 보면 아닌 것 같지만 사실 끼리끼리 모이는 경향이 많아요. 자신도 모르게 나에게 걸맞은 사람을 찾죠. 말이 통한다는 것에는 은연중 신분이나 계급, 혹은 일정한 수준이 맞는다는 것을 전제할 때가 많죠. 그러니 나와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이들은 은근히 무시하고 멀리하게 되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그 만남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온전하다면 이웃을 만날 필요가 없겠죠. 우리가 완벽하다면 하나님께서 이웃과 사랑을 나누라고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함께하는 것이죠. 반대로 남이 나의 이웃이 되었다면 그것은 내 이웃이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부족함이 있고, 또 그 부족함을 채워줄 능력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내 이웃이 되는 거죠. 그렇게 관계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완벽한 이웃을 찾지 마세요. 좋은 관계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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