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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114 -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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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30   바리새파 사람들과 그들의 율법학자들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불평하면서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는 거요?"


좋은 아침입니다. 새벽 공기가 쌀쌀하네요. 벌써 늦가을의 기온입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요. 무엇보다 영적인 환절기를 잘 극복하시길 빕니다. 미리미리 건강 잘 챙기시고 먹을 것, 입을 것 주의하시며 지내시길 빕니다.

 

본문 5장의 17절 이후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을 쫓았던 모양입니다. 중풍병자의 죄 사함에 대해 시기를 건 이후에도 그들은 트집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죠. 옛 말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죠?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온통 그 색깔로 보이듯이 우리가 보는 세상은 객관적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보기 때문이죠.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그들만의 시각으로 규정하고 있죠.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단이고 불순분자이며 잘못된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모두 그런 시각이죠.

 

이것이 우리에게도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딱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걱정'이라는 것이 그래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우리는 걱정합니다. 왜냐하면 다가올 시간을 걱정이라는 틀에 묶어서 바라보기 때문이죠.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줄 아세요? 수많은 일들, 그러니까 좋은 일, 감사한 일, 은혜로운 일들 가운데 스쳐 지나가는 아쉬운 일만 보입니다. 걱정한 대로 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아무리 좋은 것을 보고 싶어도 걱정이라는 틀을 쓰는 순간, 우리는 좋은 것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눈은 걱정을 증명해야 하는 사명으로 사로잡히기 때문이죠.

 

바리새파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철학적으로나 종교적, 민족적으로 설명하기가 매우 복잡합니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이 분리주의자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바로 '차별'이죠. 너와 나를 나누는 구별이 그들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나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죠. 그리고 나와 다르다면 그것은 그들의 적이 되고 맙니다. 신분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계급이 다르고 신앙이 다르고, 그들이 말하는 중심에는 언제나 그 '다름'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이 다름을 가진 이들이 있어요. 나와 신앙이 다르면 나쁜 것이고, 나와 생각이 다르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죠. 그들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라고도 합니다. 어쩌면 그들의 뿌리가 바로 이 바리새파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나와 다른 것은 다 틀린 것으로 보는 것이죠. 하나님이 유일한 창조주이심은 틀림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 수는 없죠. 하나님만이 유일한 창조주시라면 오히려 모든 이들이 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녀임이 틀림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유일한 창조주라 믿으면서 타 종교인이나 타문화권의 사람들을 차별하고 저주하고 틀렸다 말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유일한 창조주로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릅니다.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만약 진리가 다르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일 뿐이에요. 우리는 모두 그분의 자녀입니다. 다르다면 알려주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죠. 틀렸다고 저주하고 차별하며 죄인 취급하는 것이 우리의 올바른 신앙은 아닙니다. 달라도 여전히 같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볼 때 나와 다른 것을 찾지 마세요. 그것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마세요. 오히려 나와 같은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으세요. 같은 생명이고, 같은 감정이 있고, 같은 슬픔이 있으며, 같은 연약한 존재임을 먼저 바라본다면 우리는 늘 연대하고 함께하고 서로 돕는 존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달라서 더 풍성한 공동체가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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