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29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에게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많은 세리와 그 밖의 사람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서, 그들과 한 자리에 앉아서 먹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한순간이죠? 그렇게 덥더니 이젠 춥습니다. 간사한 우리는 또 추위를 불평하고 있네요. 우리의 마음을 딱 맞춰줄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이 늘 갈팡질팡이기 때문이죠. 인생은 우리의 마음에 맞춰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질서에 맞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이 감사합니다. 어떠해도 감사할 줄 아는 것이 능력이에요. 그 능력이 오늘도 충만하시길 빕니다.
마태는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소위 선택된 것이죠. 그래서인지 잔치를 벌입니다. 마치 대학 합격 마을 잔치처럼 보이죠.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가셨던 것을 기억하실 거예요. 누가는 마치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시기 위해 가신 것처럼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은 베드로가 제자 된 기쁨을 표현하는 초대로 인해 이루어진 방문이죠. 규모는 작았을지 몰라도 같은 잔치였음이 분명합니다. 사실 마태가 세리로 돈이 좀 있는 인물이었던 것처럼 베드로도 꽤 어부로 성공한 인물이기에 그런 잔치가 가능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이 잔치가 매우 중요합니다. 잔치라는 것이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을 말하죠. 베푸는 이는 자신의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고, 참여하는 자는 이웃의 기쁨에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시다시피 마태는 유대 공동체와 단절된 사람이었죠. 어쩌면 가족들과도 연이 끊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세리들이 외톨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삭개오를 통해서도 어렴풋 느끼게 되죠. 그랬던 마태가 지금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어쩌면 서로 상처가 깊었을 그런 관계들인데요. 그것을 깨고 마음을 열고 서로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죠. 우리는 관계에서 큰 상처를 받습니다. 그 상처는 마음을 썩게 만들죠. 그것을 복수심이라고 하죠. 그 복수심은 상대방을 특정하지 않습니다. 상처받은 자만을 향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 대상이 되죠. 그래서 늘 경계심과 적개심을 갖게 되고 걱정과 두려움으로 자리합니다. 혹시 나를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혹시 나를 속이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듭니다. 아주 사소한 것들은 시간이 흐르며 눈덩이처럼 커져가죠. 그래서 무엇 때문에, 무슨 일로 미움이 시작되었는지조차 잊고 철천지 원수가 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마태도 그랬을지 모릅니다. 그는 단순히 돈을 버는 직장으로 세리를 선택했을지도 몰라요. 누군가를 괴롭힐 목적은 전혀 없었을지도 모르죠. 어쩌면 자신만은 조금 더 정직하게 세리의 역할을 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자신이 잘하면 세리에 대한 편견도 깨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왠 걸요? 정직하게 세금을 거두고 정직한 대가의 몫을 챙겨도 의심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안타까운 처지의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감면해 줘도 고맙다는 말커녕 손가락질을 당하죠. 그렇게 점점 마음이 강퍅해지더니 차라리 당해보란 식으로 물불을 안 가리고 세금을 때려버리는 악덕 세무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마음에는 언제인지도 모르게 분노와 적대감으로 가득 차버렸죠.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다르게 자신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리로 보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문둥병자로 보지 않으셨어요. 그는 세리가 아닌 사람으로, 문둥병자가 아닌 생명으로 바라보셨죠. 로마인으로, 유대인으로, 정복자나 피지배자, 여자나 남자, 세금 걷는 자와 세금 내는 자로 서로를 바라보았던 자신의 시선이 씻기는 순간이었습니다. 네 편 내 편이 아닌 나와 같은 사람, 나와 같은 생명, 더 나아가 모두 하나님께서 지으신 보배롭고 존귀한 자녀로 사람이 보이는 순간, 이전의 문제들은 너무도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린 거죠.
그리고 처음 한 행동이 잔치를 벌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천국입니다. 모든 이들과 더불어 함께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참 행복이죠. 초대교회처럼 서로 나누고 내 몸처럼 사랑하며 섬기는 것, 내 것을 주어도 행복하고, 남의 것을 받아도 행복한 것, 그것이 영적인 삶의 시작입니다.
더불어 함께 사세요. 잔치를 베풀며 사세요. 진수성찬을 나누며 먹고 마시라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주님의 백성임을, 모든 이웃이 나의 형제요 자매임을 선포하며 사는 것, 내가 귀하듯 남도 귀하고, 내가 사랑받듯 남도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깨닫고 함께하는 삶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영적인 삶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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