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17 어느 날 예수께서 가르치시는데, 갈릴리 및 유대의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교사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므로, 예수께서는 병을 고치셨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이제 기온이 내려간다는 일기예보를 보았습니다. 이제 가을의 완연함을 느끼게 될까요? 어쩌면 이제부터 조심하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날씨든 생각이든 변화에는 그만큼 준비와 적응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옷도 잘 입으셔야 하고요. 특별히 먹는 것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더운 날씨에 적응되었던 몸이 이제 선선한 바람에 적응하도록 잘 다독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환절기에는 감기 조심하라고 하죠. 사랑하는 모든 공동체 가족들이 건강하게 가을의 정취를 즐기시길 빕니다.
오늘은 '어느 날'로 시작합니다. 느낌상 좀 시간이 지난 것 같아요. 제자도 부르시고 병고치시는 일들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계셨던 것으로 보이죠.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소문이 많이 퍼진 모양입니다. 갈릴리와 유대,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하는 것을 보면 말이죠. 이스라엘은 크게 북부 갈릴리와 남부 유대로 나눌 수 있죠. 거기에 모든 문화와 행정, 특별히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까지 곁들인 것으로 보아서 그 소문이 온 이스라엘에 퍼진 것을 알려주고 있죠.
그들이 왜 왔을까요? 예수님이 궁금해서일까요? 물론 궁금할 수도 있죠. 그러나 그 궁금증이 긍정적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무슨 트집이나 혹은 유대교에 어긋나는지 유무를 관찰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특별히 율법학자들까지 온 것을 보면 더욱 그 의심에 심증이 가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좀 이상한 부분이 있어요. 그것은 마지막 부분에 있는 구절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므로, 예수께서는 병을 고치셨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18절에 붙어야 어울리는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18절부터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부분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아니에요. 제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점은 이 구절이 생뚱맞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귀신 들린 자부터 열병환자, 나병환자 등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죠.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 치유의 능력이 생겼다는 구절을 대하니 어리둥절합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니죠? 그러면 그전에는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지 않았음에도 병을 고치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이 점이 좀 이상했어요. 이상하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생각해 봐야 하죠. 우리는 이상하다고 느낄 때 보통 두 가지 방향성을 갖게 되죠. 하나는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 틀렸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번역상이나 이해상 오류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대하는 기본적은 자세로,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뭘까?'라는 이유를 찾는 것이 묵상하는 자세라고 저는 믿어요. 그래서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이 부분을 여러 번 곱씹으며 읽었습니다. 그리고 어렴풋이 그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나눠보겠습니다.
앞서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이 좀 생뚱맞다는 말씀을 드렸죠? 적절하기는 다음 절에 붙어야 좀 더 어울린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이 오늘 본문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 때문이죠.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온 사방에서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라고 했습니다. 이 둘은 엄연히 구분되지만 그러나 일종의 같은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을 조금 설명하자면 지극히 자신의 의가 강한 사람들이에요. '바리새'라는 말이 '분리주의자'라는 말인 것을 보면 그들은 철저히 내편과 네 편을 가리는 이들이죠. 자신의 편이 아니면 적으로 돌리기 일쑤였습니다. 자신만 옳다고 믿고, 자신들이 선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이들에 대해 정죄를 일삼는 것을 보고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이라고 욕을 하실 정도였죠.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바리새적인 사고가 흐르고 있죠. 자신의 신앙은 옳고 남의 신앙은 그르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내 생각은 맞고 다른 이들의 생각을 틀리다는 아집들이 존재하죠. 그래서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정죄와 평가를 서슴없이 하며 선인과 악인을 나누고,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모습이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주님께서 치유의 능력을 주셨다는 말씀은 그들, 바로 바리새인들을 향해 치유의 역사를 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구절이 18절이 아니라 17절에 붙은 것이라고 말이죠.
복음은 남을 정죄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남과 비교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에요. 교리는 나의 신앙의 척도가 될 수는 있어도 남을 비판하는 도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나의 몸을 쳐서 복종케 할 수는 있어도 남을 비판하여 굴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남에게 행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남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도 오직 사랑뿐이에요. 우리는 칼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웃을 대해야 합니다. 비판이나 가르침이 아니라 이해와 기다림과 사랑으로 우리를 표현할 뿐입니다. 바리새적인 사고는 치유받아야 할 병입니다. 차별과 비판에서 떠나 이해와 사랑으로 오늘을 사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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