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여호수아서묵상일기 65 - "나는 그저 순종했을 뿐인데 주님의 강한 팔이 나를 이끄시더라"

반응형

여호수아서 10:16~21   아모리의 다섯 왕은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어 있었다. 누군가가 여호수아에게 그 다섯 왕이 막게다의 굴에 숨어 있다고 알려 왔다. 여호수아가 명령을 내렸다. "큰 돌을 굴려 그 굴 어귀를 막고, 그 곁에 사람을 두어서 지켜라. 너희는 지체 말고 적을 추격하여 그 후군을 치고, 그들이 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라. 주 너희 하나님이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아주 크게 무찔러 거의 전멸시켰다. 적 가운데서 살아남은 몇몇은 요새화된 자기들의 성으로 들어갔다. 여호수아의 모든 군대는 막게다 진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무사히 돌아왔다. 그 땅에서는 어느 누구도 감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헐뜯지 못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세상을 밝히는 거룩한 자녀로 사세요.

 

아모리의 다섯 왕이란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을 비롯한 가나안의 연합군을 이룬 다섯 왕을 뜻하는 것이겠죠? 구약성경을 읽을 때 어려움을 주는 것 중에 하나가 족속의 이름과 지역의 명칭들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아모리라는 단어가 나오고, 그 이전 본문에는 다섯 왕들의 지역들도 등장했죠. 기브온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명칭들을 들으면 이게 지역 이름인지 사람의 이름인지, 아니면 민족의 이름인지 헛갈릴 때가 많죠.

 

조금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성경에서 말하는 가나안 땅은 현재 이스라엘의 영토를 뜻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정착했던 약속의 땅이죠. 그런데 야곱 이후 이집트 노예 생활을 수백 년간 했습니다. 거기서 요셉이 총리를 지냈죠. 그리고 모세에 의해 출애굽 해서 지금 다시금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중이죠.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있었던 수백 년 동안 가나안에는 많은 민족들이 거주했습니다. 사실 가나안 땅은 기구한 운명을 가진 땅이죠. 지금도 그 땅은 분쟁의 땅입니다.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 이후 이번에는 수천 년을 떠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수천 년을 다른 민족들이 살았죠. 그리고 이스라엘 건국을 기점으로 분쟁의 땅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여호수아의 가나안 전쟁은 어쩌면 오늘날 이스라엘 분쟁과 비슷한 역사의 반복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 가나안 땅에는 여러 민족들이 살았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치했던 제국들의 흥망성쇠에 따라 가나안 지역도 지배 권력이 바뀌곤 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레 여러 민족들이 분포되었던 모양입니다. 우선 아모리라는 말은 민족의 이름인데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살았던 셈계 민족 중 하나죠. 그들은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을 세운 민족이기도 하고요. 함무라비가 아모리 혈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 다섯 왕들 앞에 붙은 명칭은 다 지역 이름이고요. 기브온도 지역 이름이죠. 우리가 부르는 기브온 족속은 정확히는 히위족속입니다. 그러니까 기브온은 지역이름이고 히윗이 민족이름인 거죠. 히윗이라는 말은 생소하지만 세겜이라는 말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들이 바로 히위족속이죠. 뭐 꼭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가볍게 상식적으로 알아두자고요. 

 

다시 오늘 주시는 말씀을 찾아 본문으로 돌아가면, 전쟁은 일사불란하게 치러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군대는 단번에 적군을 격퇴시킨 것 같죠. 여기에는 여호수아의 기막힌 전술전략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세가 기운 가나안 연합군은 전열이 흩어진 모양이에요. 보통 퇴각을 하게 되면 왕부터 피하는 법이잖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왕들이 동굴로 숨어들죠. 이스라엘의 동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습니다. 마치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죠.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동굴에 숨어든 적이 있었는데요. 사울의 군대가 동굴을 수없이 뒤져도 찾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동굴에 피했다는 것은 후일을 도모할 계략인 셈이죠. 그런데 여호수아는 왕들을 추적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동굴의 입구를 막는 전략을 폈어요. 그리고는 왕을 잃은 적군의 군사들을 추격했죠. 지휘관과 떨어진 병사는 오합지졸일 수밖에 없죠. 그렇게 군사들을 모조리 무찌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데는 우리의 용기만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실이 있어요. 어떤 일을 할 때 우리는 그 일의 힘듦만을 생각합니다. 그 일을 하려면 힘을 써야죠. 그래서 내가 쓸 힘을 계산하면 벌써 숨이 막힐 때가 있죠. 그리고는 늘 불평을 합니다. 왜 나만 그런 고생을 하느냐고 말이죠. 그러고 보면 믿는 사람들이 훨씬 일을 많이 할 때가 있어요. 일을 하는 사람만 하고, 참는 사람만 참죠. 꼭 어려운 길은 나만 갑니다. 양보하고 손해 보고 뒤치다꺼리는 다 더 많이 믿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의 몫이죠. 이게 참 공평치 못한 불만거리기도 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하나님의 명령에는 나의 힘만 있지 않다는 사실 말이죠.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듣고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용기를 냅니다. 또한 죽기를 각오하고 뛰어들죠. 그런데 그 순종에는 우리의 용기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죠. 그분의 섭리가 깃들고, 그분의 손길이 임합니다.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갈길을 열어주시며, 힘도 주시죠. 어려움을 피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너끈히 이기고도 남을 힘을 주시죠. 적들을 없애주시는 것이 아니라 승리할 능력을 주시는 겁니다. 내 앞에 태풍을 사라지게 하시기보다 그 태풍을 뚫고 올라갈 강하고 담대한 독수리의 날개를 주시죠. 그것이 그분의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명령 앞에서 내가 할 수 없다고 하지 마세요. 나는 그저 용기를 내었을 뿐인데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니까요. 나는 그저 순종했을 뿐인데 주님의 강한 팔이 나를 이끄시니까요. 주님의 명령, 따르세요. 주님께서 거뜬히 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거예요. 주님의 사명, 이루세요. 주님께서 넉넉히 이룰 도움 되어 주실 겁니다. 주님의 마음, 품으세요. 그 마음이 날개 되어서 저 높은 곳으로 나를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728x90
반응형